알고리즘 노예 탈출기 -5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야심차게 스마트폰 없는 육아를 꿈꾼 적이 있다. 관련 책을 찾아보며 의지를 다졌고, 거실은 TV 대신 책장으로 채웠다.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 돌이 되기 전까지는 조부모님 집에 틀어 둔 TV 화면조차 보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의 고개를 돌릴 정도로 극성을 떨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식은 애초에 잘 하지 못했지만, 어쩌다 하게 되더라도 부부가 번갈아 가며 아이를 들고 마시느라 체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가 두 돌, 세 돌이 지나면서 결심은 흐려지고, 점점 영상 노출 시간은 늘어나고 말았다.
특히 아이는 우리의 복직으로 두 돌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린이집에서도 매일같이 '키즈노트' 사진을 올리는 게 의무화되어 있어 0~2세 영아반의 선생님들조차 늘 휴대폰을 손에 쥐고 일을 하시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사진을 좀 덜 봐도 좋으니 선생님들의 일지 작성 의무를 좀 덜어드리는 게 어떨까 싶지만, 모든 부모님들의 생각이 나와 같진 않을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원 후 아이를 돌봐 주시던 친정엄마도 체력에 한계를 느끼니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자주 틀어주셨다. 나이드신 엄마에게 육아 도움을 받는 것도 죄송스러워서 당시에는 신경이 쓰여도 별 도리가 없었다.
세돌이 넘어 영어 노출을 한다는 빌미로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면서도 타이머를 맞추고 아이와 실랑이를 했다. 와중에 설거지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면서 숨쉴 틈을 마련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타이머가 꺼지면 더 보여달라는 아이와 이젠 안 된다고 명령하며 옥신각신했다. 아이에게는 이제 영상을 끄고 역할 놀이와 클레이 놀이를 하자 해놓고 정작 나는 '긴급한 업무 연락이 올 지도 모르니'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이가 나도 좀 보자고 휴대폰에 관심을 보이면 "아냐 이제 배터리가 다 돼서 충전 시켜야 해"라고 둘러대며 황급히 충전선에 꽂으며 무마시킬 뿐이었다. 가끔씩 아이가 혼자 놀이에 빠져 엄마 아빠의 참여를 원치 않아할 때는 살짝 휴대폰을 보며 SNS 알고리즘 삼매경에 빠져있다가, 아이가 도움을 청하면 방해받는 느낌에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환영하는 척 했지만 아이도 어느정도 눈치채지 않았을까?
아이에게는 스마트폰을 만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단속을 하면서 막상 나는 눈 떠서 잠들 때까지 폰을 놓지 못하는 현실이 참 '웃펐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대부분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과 스마트폰 속 시덥잖은 가십거리를 보는 것 중 무엇이 내 인생에 훨씬 더 중요한 것인지 답을 알고 있으리라.
내가 스마트폰을 먼저 멀리하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도 줄었다. 액정 속 자극적인 재미들에 빠지지 않고 아이와의 놀이에 빠지기로 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보니 여전히 이는 놀이보다는 노동에 가깝지만, 적어도 아이가 나를 부를 때 방해받는다는 느낌과 짜증스러움은 들지 않게 됐다. 또 아이가 놀이를 할 때도 그 옆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대신 책을 읽고 있으니 아이도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보였다. "이 책은 왜 글자만 많아? 어른들은 왜 그림도 없고 재미없는 책을 읽어?"라고 물으면 "너도 나중에 크면 이런 책을 재미있게 읽게 될 거야"라고 답해주게 됐다. 그러면 아이도 책장에서 '재미있는' 그림책을 가져오게 된다. 영상을 보여주지 않으면 "심심하다"는 말을 달고 살고, 심지어 심하게 짜증을 부리기도 하던 아이도 내가 먼저 스마트폰을 하지 않으니 더 이상 조르지 않고 함께 다른 즐거움을 찾게 됐다.
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도 아이는 영상을 보고 나는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시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게 아니라, 서로 바깥 풍경을 보며, 목적지에서 하게 될 일을 즐겁게 기대하며 대화를 나눈다. 아이와 함께 외식을 해야 할 때는 아이들이 많아서 다소 소란스럽더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느 분위기거나, 놀이방이 딸린 식당을 찾아서 주로 간다. 앉아서 멍하니 태블릿을 보게 하는 것보다는 몸이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일행들이 번갈아 가며 놀이방에 데리고 가 아이의 체력을 소진시키면 아이도 덜 지루하게 외식을 마칠 수 있고 어른들도 그 시간 동안에는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각자의 테이블에서 멍하니 휴대폰 영상만 보던 아이들이 놀이방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영유아와 미성년자의 디지털 노출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갖고 있는지는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각종 SNS와 디지털 서비스의 '창조주'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의 CEO들도 정작 자기 자녀들에게는 일정 나이가 될 때까지 디지털 기기를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것도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뇌가 완벽하게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기 속 콘텐츠는 지나치게 큰 자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들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테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것처럼 어린이에게 쉽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눈이 나빠지고 언어가 늦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스마트 미디어가 아이들이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줄이고, 반사회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기존 미디어와 달리 스마트폰을 통해 접하는 매체들은 최소한의 거름망 없이 무분별하게 주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건전한 어린이 교육용 영상만 틀어줬다고 생각해도 시시때때로 트는 광고창에는 헐벗은 여자 캐릭터와 선혈이 낭자하는 게임 광고가 툭하면 튀어나온다.
많은 부모들도 부작용이라고 하면 언어발달 지연이나 눈이 나빠지는 것 정도만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어릴 땐 나름대로 스마트기기를 단속하고, 그나마 건전한 것을 골라 보여주던 부모들조차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이제 말도 트였고 더이상 통제도 되지 않는다며 손을 놔버리게 된다. 사실 그리 큰 아이들도 아니다. 공공장소에 가면 5, 6세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 핸드폰을 들고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유튜브 게임 방송을 뚫어져라 보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알고리즘을 따라 영상을 골라 보는 것은 정말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교실에서 통제가 되지 않고, 다른 급우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것이 이처럼 무분별한 디지털 미디어 노출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팀이 12세 이하 어린이 약 16만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의 화면을 오래 보는 어린이일수록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문제적 행동을 할 확률이 20% 높고, '스크린타임'이 늘어날수록 불안, 우울, 주의력장애, 공격성 위험이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릴 적엔 TV 속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화면들이 아이들의 순수함을 앗아간다고 우려했는데, 스마트폰 속 온라인 세상은 최소한의 검열장치조차 없이 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까지 여과없이 전달해주고 있다. 반사회적 행동을 할 때마다 화제가 되고 조회수가 늘어나 그대로 돈이 되는 유튜브가 있고, 관심을 끌고 싶어서 번화가에서 칼부림을 하겠다고 협박성 글을 올리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다. 친구를 사귄다는 명목으로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만남을 요구하는 소아성애자들도 아무렇지 않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디지털 기기와 영상물을 접하고 있다. 2019년 만 6세 이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53%의 아이들이 만 1세 전에 스마트기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오주현·박용완(2019), '영유아의 스마트 미디어 사용 실태 및 부모 인식 분석', 육아정책연구). 심지어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 하지 말라'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부모들을 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어떨까. '윤미경·서현선(2021), 스마트 미디어에 대한 유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조차, 아이들에게는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폰을 놓지 못하는 어른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들을 지적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스마트 미디어의 과용이나 바르지 못한 자세로 사용하는 문제는 유아 자신들만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본 연구에 참여한 유아들에게 부모, 조부모를 비롯한 성인들은 스마트 미디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모델이기보다는 바르지 않은 자세, 과도한 사용으로 시력 저하가 염려되는 대상이 되고 있었다.
(중략) "아빠는 자꾸 엎드려서 봐요. 눈 나빠질 것 같아요." "할머니는 1시간씩 해요. 1시간은 너무 길어요." "맨날 길 가면서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는 동작을 하며) 이렇게 끼면서 핸드폰을 너무너무 가까이 보니까 눈 나쁠까 봐 그만 보고 맨날 보지 않으면 좋겠어요."(중략) 이 밖에도 연구 참여 유아들은 자신의 부모님이 식사하는 중이나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에도 스마트 미디어를 이용하여 동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을 바르지 못한 모습으로 지적하기도 하고, 자신의 조부모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동영상을 보도록 허락한다고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윤미경·서현선(2021), 스마트 미디어에 대한 유아들의 이야기
어떤가? 읽는 분들 중 상당수는 나처럼 낯뜨거움과 찔림을 경험했으리라고 본다. 마치 나를 지켜보는 우리 아이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버린 느낌이랄까. '디지털 네이티브'로 일컬어지는 '알파세대(2010년대~2025년생)'인 요즘 아이들조차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 불일치함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종종 잊어버리곤 하는 사실이지만,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다. 행동을 보고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아이들이 보는 미디어의 종류를 제한하고, 타이머를 맞추고, 핸드폰이 고장났다고 거짓말을 하며 숨기는 것으로는 역부족이다. 어른들 스스로가 과한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래도 스마트 기기가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지 않냐고? 어린이라면 몰라도 성인들은 디지털 시대에 온라인으로 얻는 정보가 가장 정확하고 빠르고 효율적이지 않겠냐고? 개인적으로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된 여러 계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