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노예 탈출기-4
앞선 글에서 SNS와 익명 커뮤니티를 이용하지 않고(줄이고) 나타난 놀라운 변화들을 소개했다. 그래, 이렇게 좋은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집에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한 서기 2000년부터 20년이 넘게 다음 카페를 시작으로 수많은 커뮤니티와 SNS에 절여져 왔다. 물론 나라고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아마 대충 잡아도 10번은 넘게 끊으려고 시도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언젠가 스마트폰에는 다시 앱들이 깔려 있었고 멍하니 그들을 새로고침하고 있기 일쑤였다.
이번만큼은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는 마음으로 정리해 본 방법들이다.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게 목표를 정하자
당연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수준으로 디지털 기기를 끊을 수는 없다. 직업상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하는 직업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직업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온라인 생활을 모두 끊기로 하는 건 생업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디지털 의존도와 꼭 해야 하는 시간대, 그리고 불필요하게 여겨져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대와 콘텐츠를 정리해보고 하나씩 끊거나 줄여 나가 보자.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을 기하다 보면 금새 나가떨어지게 마련이다. 처음부터 일체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수준으로 극단적인 '디지털 디톡스'를 강행하는 것보다는 일단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수준부터 시작해 보자. 먼저 필수적이지 않은 앱 알림을 끄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 알림을 단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주의력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잘 보면 자주 이용하지 않는 앱의 알림들도 우르르 뜨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카카오톡 채팅방도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알림을 선별적으로 꺼둘 수도 있다. 그렇게 점차 SNS 앱 지우기, 댓글 안 보기, 일정 시간 스마트폰 쓰지 않기, 하루, 일주일, 한 달, 이런 식으로 점차늘려가다보면 스마트폰 없이 외출을 해도 답답하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온다.
-'SNS 끊기' 실천 일기 쓰기
SNS와 커뮤니티 이용을 끊기로 마음먹고 나서 매일 나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짧게라도 일지를 남겼다. 멍하니 알고리즘을 들여다보는 대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어떤 상황에서 다시 SNS와 커뮤니티에 접속하고 싶어졌는지를 기록했다. 이렇게 쓰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대처 방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혹여나 실패를 하더라도 솔직하게 기록하자. 다음번에 다시 시도를 할 때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독서, 전자책 읽기
책을 들고 다니면서 보면 좋지만 무게 때문에 부담스럽고, 모바일 기기를 만지작거리는 데 너무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E북을 추천한다. 디지털 기기 자체를 끊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단지 SNS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좋은 대체제가 된다. 너무 어렵고 폼나보이는 책보다는 SNS나 커뮤니티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재밌는 책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완전 흥미 위주로만 골라도 좋다. 무슨 책을 읽어도 최소한 출판된 책이라면 익명 공간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날것의 콘텐츠보다는 덜 해로울 것이다.
책값이 부담된다면 대여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전자도서관을 이용하면 무료로 대출을 할 수도 있다. 단, 대출 가능한 책들은 대체로 일반 도서보다는 인기가 떨어지는 도서일 가능성은 높다.
-신문 기사 읽기
포털 사이트에 아무렇게나 뜨는 낚시성 기사는 사실상 SNS 짜집기나 다를 바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출처인 기사는 더욱 그렇다. 정식 언론사에서도 요즘은 조회수를 위해 유명인의 SNS에 나온 사생활을 마구 인용하거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의 사실 여부도 확인 안 된 글을 재가공해 댓글로 난장판을 만들곤 한다. 이런 기사 대신 엄선된 기사를 보려면 '지면읽기'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 각 언론사별로 지면에 실리는 기사를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지만, 네이버의 '뉴스'에서 각 언론사별 페이지에 들어가면 '신문보기'메뉴에서 당일 지면에 올라간 기사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지면에 올라가는 기사기 때문에 본인의 한정적인 흥미, 관심사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등 다방면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온라인 커뮤니티 긁어 붙이기식 낚시 기사는 없다.
-글 쓰기
한때는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연재하기도 했지만 일과 육아를 반복하면서 점차 내 이야기를 쓰는 것과는 멀어지고 말았다. 우선 출근해서도 하루 종일 뭔가를 쓰기 때문에 추가로 뭘 더 생산해낼 여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SNS와 커뮤니티 눈팅을 하지 않자 시간이 남기 시작하면서 뭔가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어차피 SNS와 커뮤니티도 따지고 보면 글이나 사진, 영상 등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고 올리는 공간이다. 보다 생산적으로 이를 해내면 된다. 고찰 없고 성찰 없이 그저 스트레스 풀기 용으로, 배설하듯 SNS와 익명 공간을 이용하기보다는 정제된 글로 자신의 생각과 삶을 돌아보자. 글쓰기는 그 자체로도 몰입이 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SNS를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도 잊을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시간 늘리기
잘 생각해보면 대중교통 안에 앉아 있어 심심하거나 따분한 업무중일 때 주로 SNS와 커뮤니티 접속이 늘어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여행을 가거나 종일 나들이를 할 때는 거의 SNS를 만지지 않게 된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오프라인에서의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좋다. 아이들에게도 영상 노출을 줄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바깥 놀이를 많이 하는 것처럼, 어른들 역시 가상공간에서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오프라인에서 양질의 시간을 늘려야 한다.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거나, 만나고 싶었던 지인들을 만나거나, 배워보고 싶었던 취미의 일일 클래스를 들어 보거나, 운동을 하는 등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보면 온라인과 거리두기도 되고 우리의 삶도 풍성해질 것이다.
정리하자면 결국 온라인 밖의 삶을 풍성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현실의 삶이 재미없고 스트레스로 가득하다면 결국 편안함을 주는 온라인으로 도망가고 싶은 게 사람의 당연한 심리니 말이다. 물론 이는 쉽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나처럼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바쁜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양질의 취미생활을 하기도 어렵고 결국 값싸고 손쉽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온라인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의 더 나은 삶뿐만 아니라 내 가족, 특히 다음 세대를 만들어 갈 내 아이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도 SNS 멈추기 혹은 줄이기는 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와 놀아 주면서도 내려놓지 못했던 스마트폰과 거리두기를 하고, 아이에게도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