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편이 주말 출근을 하고
나와 아이 단 둘이 종일 보내는 주말.
신생아 때부터 거의 매주 이런 날이 있었기에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
때마침 봄비가 내려서
바깥 나들이도 쉽지 않은 날이다.
이런 날은 꼼짝없이 아이와 종일 집에서 함께해야 하기에
미디어의 유혹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곤 한다.
여섯살이 된 우리 아이는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쉴 새 없이 조잘대곤 한다.
언어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랄 정도다.
"옛날에는 변기가 없었는데 어떻게 똥을 누었어요?"
"옛날에는 휴대폰이 없는데 뭘로 연락했어요?"
"이 기계는 뭘로 만들었어요?"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이 한창 많은 나이.
아이에게 유튜브 영상을 보여 주면
나는 그동안 못다 읽은 책을 읽을수도 있고
잠시 누워서 숨을 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주 내내 업무로 바빴고
아이아빠가 있는 주말에는 가족 행사와 아이와의 체험으로 정신없었기에
사실은 쉼이 간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영상을 틀어주는 대신
아이가 궁금해하는 내용이 나오는 책을 찾아 함께 읽어보고
워크북에 그림과 한글을 쓰고
흡사 자기수양의 과정과도 같은 엄마표 공부도 해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대화에
성심성의껏 리액션을 하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어지른 집은
내가 후딱 치워버리는 게 훨씬 간단하지만,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아이 손으로 스스로 치우고 놀 때까지 가르쳐 줬다.
신혼때부터 우리 집 거실에는 티비가 없었다.
작년부턴 안방에 시댁에서 주신 티비 모니터가 있지만 가끔씩 영어 영상을 보여줄 때만 틀고 있다.
식사를 할 땐 엄마아빠가 밥을 마실망정 스마트폰 노출을 하지 않고,
요즘 아이 또래들은 다들 하는 것 같은 태블릿 학습지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영상을 보지 않고 집에 있는 온갖 물건과 장난감을 총동원해 자신만의 유니버스를 만들며 노는 것에 도사가 됐다.
영상을 굳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에게
내 몸 좀 쉬겠다고,
영상을 틀어주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단지 지금 내 몸이 좀 더 편해지는 선택을 하지 않고
비록 지금 당장 내 몸은 좀 힘들어도
아이에게 더 최선을 다했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는 걸
지난 5년간의 육아로 배웠으니까.
엄마 품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몇 시간을 발작하듯 울던 예민한 아기,
새벽 다섯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기,
두 돌 무렵 거의 모든 면에서 또래보다 발달이 심하게 늦다는 판정을 받았던 아기는
이제 여섯 살이 되어
또래보다 어른스런 어휘로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고
친구들과 두루 잘 어울리며
의젓하게 혼자 자기 방에서 잠을 잘 자고 나오는
형님이 되었다.
예민한 아기 케어하느라 난생 처음 우울증약까지 먹던 내게
누군가는 왜 그리 유난이냐며
어린이집을 맡겨라
유튜브 보여준다고 큰일 안 난다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코로나 시국에 아기에게 마스크 씌워 어린이집을 보내는 대신
온갖 식재료로 아이를 씻겨가며 오감놀이를 하고
목이 쉴 때까지 책을 읽어주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체험을 하러 다녔다.
그 시간을 먹고 아기는 자신의 속도대로 아이로 자라났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극 내향형 엄마와 달리
타인과의 교류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외향형 아이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에도 늘 교류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하는 끝없는 구연동화와 공연, 독백에 행여나 성의없이 대꾸하거나 한눈이라도 팔면 어김없이 난리가 난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한 엄마에게
솔직히 말해 이는 꽤나 기 빨리는 감정 노동이다.
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양육법보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에너지와 시간임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기꺼이 아이를 위해 기가 빨려 준다.
하루종일 10kg 아기를 아기띠에 맨 채 하루에 한 끼 빵으로 때우고
씻지도 자지도 화장실도 못 가던
끝이 안 날 것만 같았던 아기 시절의 고생 또한 결국은 과거가 됐다.
지금의 시간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견딜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도 그렇게
미디어 없이 아이와의 하루를 보내는 데 성공한 나를 스스로 격려하며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