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난데없는 리뉴얼로 온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단순 메신저를 넘어 온갖 공·사적인 소통을 전담하다시피하는 카카오톡이 뜬금없이 인*타그램을 표방한 SNS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리뉴얼을 했기 때문이다.
기존 인스타 프로필처럼, 개인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 목록이 피드 형식으로 뜨는데,
문제는 이게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리뉴얼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카카오톡은 이제 10대부터 80대까지 전 국민이 사용하는 메신저니만큼, 공적인 대화만 하는 직장 상사와 동료뿐 아니라 얼굴 한 번 본 적 없이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거래처 직원, 연락이 끊긴 지 수십년에 달하는 과거 학교 동창, 심지어 특정한 목적으로 일시적 소통을 위해 연락처를 추가한 사람들(나의 경우 수 년 전 고용했던 아이의 등하원 도우미 선생님,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어린이집 원장선생님, 몇 달 정도 오셨다가 이사하면서 더 이상 오지 않으시는 다른 동네 학습지 선생님 등도 있다)이 모두 카톡 친구란 이름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말이 친구지 진짜로 친구는 아니다. 암묵적으로 서로 필요에 의해 공적인 소통을 주고받는 관계일 뿐 그 이상의 소통은, (일반적인 경우) 선을 넘는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갑자기 이런 불특정 다수를 모아놓고
"너네들 친해지길 바래~"
를 시전하면서, 온갖 사진들을 강제로 스마트폰 메인화면에 띄우며 '서로 소통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이번 리뉴얼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홍민택 카카오 최고제품책임자(CPO)의 발언을 보면 대략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카톡 사용자 한 명은 하루 427개가 넘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친구들이 정작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알기 어려웠다"며 "현재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텍스트만으로 표현하던 프로필을 관심사와 취향, 일상의 모습들로 가득 채워 보다 입체적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는 언론에 공식적으로 밝힌 발언일 뿐으로,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는 여러 어른의 사정-광고수입이라든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회사 건물을 나선 후 절대로 보고싶지 않은 상사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확인해야 하고,
심지어 그들의 여가 사진까지 자꾸만 내 개인적 공간에 시도때도없이 뜨는 걸 감내해야 하는 대참사다.
게다가 마치 인스타처럼 내가 언제 올렸는지도 모를 예전 카톡 프로필 사진까지
타인이 쉽게 확인하고 좋아요(♥)를 누를 수도 있으니,
부하직원 프로필 사진에 상사가 하트를 꾸욱 누르시며
"아유 김 대리~ 요즘 바쁘다더니 잘 지내나 봐? 여행도 다니고 아주 보기 좋네?"
혹은 며느리의 일상 사진에 시부모님이
"아이구~ 며늘아가 얼굴도 보기 힘든데 카톡 보니 아주 재밌게 잘 지내는구나~?^^"
하고 댓글을 다시는 정다운 소통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기성세대, 주로 사회에서 나보다 아랫 사람이 많은 입장에서는
이러한 소통에서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요즘 애들한테는 뭐 무서워서 말을 못 걸겠다니까. 아니 보라고 올려둔 사진 보고 뭐라 하는 것까지도 불편하다고 난리치면, 애초에 올리지를 말든가 뭐 그렇게 불편한 게 많아?'하실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직장에서는 정확히 나보다 윗사람의 비중과 아랫사람의 비중이 비슷비슷한 '낀 세대'니 만큼 그런 생각을 아예 단 한 번도 안 해본 건 아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하지 말아야 할 말/해야 할 말의 비중과 기준이 달라진 것도 많이 느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전히 현대 한국사회에는 암묵적/명시적 서열관계가 존재하며,
사회적 서열이 낮거나 연령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적 관계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수평적인 소통을 강요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진짜 수평적 소통이 아닌
'수평적인 척 하면서 사실은 윗분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맞춰 드려야 하는' 또 다른 감정노동의 추가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이번 카카오톡 리뉴얼을 둘러싼 일대 소동을 보면서
뜬금없이 예전에 한 때 온라인에서 소소하게 논란이 됐던 깍두기 국물 이야기가 떠올랐다.
직장 상사와 국밥집에 갔을 때
아무 것도 안 넣은 국밥을 먹고 있는 부하 직원에게
"이거 넣어야 맛있어~"라고 하며 마음대로 남의 국밥에 깍두기 국물을 부어버리는 상사의 행동.
상사의 행동은 부하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무례한 행동인지,
혹은 그저 '먹을 줄 모르는' 젊은이를 배려한 인생 선배의 따뜻한 인정인지.
당연히 국밥에 깍두기 국물을 넣고 안 넣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상사가 자기 국밥에 깍두기 국물을 넣는 게 문제가 안 되고, 부하 직원이 넣지 않는 것도 아무 문제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자신의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는 너무도 오랫동안 이러한 행동에 대해 명확한 선이 그어지지 않았다.
자기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일 뿐인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행동은
사실상 '폭력'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거나 싫은 내색을 하는 걸 '사회 생활 할 줄 모른다'고 핀잔을 줘 왔다.
그래서 부하직원의 입장에선 내 국밥에 원치 않는 깍두기 국물이 들어가 벌겋게 된 대참사를 마주하고도
그저 어색하게 웃어넘기는 것 말고는 딱히 어쩔 방도가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알고리즘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원치 않는 정보들을 강제로 주입받고 싶지 않아서, 알고리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유튜브도 알고리즘 기능을 끈 채 사용 중이고 구글 메인화면도 추천탭 없이 검색기능만 이용 중이다.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알고리즘을 줄이기로 결심하고 국내 서비스에서도 이같은 설정이 가능한지 찾아봤으나, 놀랍게도 단 한 곳도 제공하지 않았다.
국민 포털인 네이버도 모바일/PC 모두 메인 화면의 알고리즘을 끌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보고싶지 않고 관심도 없는 각종 혐오스런 AI 이미지 광고 포스팅이나, 금수저의 아비투스를 운운하는 책 광고 따위가 수시로 뜨고 있다. 말은 사용자의 니즈에 맞춘 정보가 뜬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사용자가 좋아할 것 같은 콘텐츠가 자주 뜨는 것 같다. 물론 그 근거는 깍두기 국물 수준이다. 대충 너는 몇살이고 무슨 일을 하니 당연히 이런 걸 먹어야 먹을 줄 아는 거겠지? 라는.
역시나, 이번 카카오톡도 당연히 SNS형 프로필사진과 원치 않는 숏폼이 뜨지 않도록
설정하는 기능이 아직은 없다고 한다.
"아니 이게 대세라는데, 왜 안보려고 해? 젊은애들은 다 좋아하지 않아? 참 유별나네~"라고 말하는,
우리 사회의 너무너무 많고 흔한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반응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프로 불편러인 입장에서 한국사회는 기술 발전이나 경제 규모 대비
개인의 자유의지가 침해되는 것에 대한 민감도가 다소 낮은 편이지 않나 싶다.
심지어 적지 않은 비중의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보다 누군가 알아서 '내 나이대에 해야 할 것을' 정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도 오랫동안 스스로 뭔가를 선택하고, 자기가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선택하고, 바운더리를 설정할 권리를 갖지 않은 채 피동적으로 자라온 탓이리라.
그러나 세상은 느리지만 변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자행(?)됐던
깍두기 국물을 부어버리는 상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별로 알고싶지 않은 사람의 개인적인 사진을 강제로 봐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담론이
일부 프로불편러들의 불평불만이 아닌, 다수의 대중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기성세대고, 소위 말하는 MZ들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팔고 싶다면
이러한 예민함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여기도 '카카오' 브런치인데 설마 계정에 불이익 생기고 그런건 아니겠지 ㅎㅎ;;; 저는 브런치를 탈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