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 사이즈는 대략 255mm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여성용 신발의 최대 사이즈인 250mm보다 좀 더 큰 것이다. 크게 나온 250mm는 그럭저럭 신을 수 있지만, 신축성이 없고 정사이즈면 발을 넣을 수는 있어도 불편감이 드는 정도다.
내가 정확한 내 발의 사이즈를 알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약 20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그러니까 발이 성장을 멈춘 이래로 최근까지 내 발 사이즈를 250으로 알고 있었다. 구두를 신으면 불편하다 못해 아프고, 심할 땐 뒷창이 까여서 피가 날 때도 많았지만 '새 신발이라 길이 덜 들어 그런가보다', '구두라서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지', '살찌니까 발도 살쪘나?'하며 열심히 작은 신에 발을 밀어넣었다.
왜 한번도 내 발 사이즈를 의심하지 않았냐면, 그야 신발가게에는 여성용 신발은 250까지밖에 없었으니까.
발 사이즈가 250이 넘는 여자는 주변에서 본 적도 없었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으니까.
그나마 옷은 '빅사이즈'라는 것이라도 있지만, 빅사이즈 신발이라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예 확 270쯤 된다면 내 발이 좀 크다는 걸 알았겠지만 애매하게 조금 크니까 얼추 끼워맞추고 살았던 거다.
그러다가 어느날 남편이 신발을 신은 내 발을 만져 보고는 "250사이즈가 아닌 것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신발을 살 때 깔창을 빼서 치수까지 재어보는 남편은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챈 것이다. 집에서 발을 줄자로 재어 보고 그제서야 지난날 내가 겪었던 불편의 원인을 알았다.
나는 250mm보다 더 큰 발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처음으로 260mm짜리 신발을 샀다. 두꺼운 겨울 양말을 신으면 한 치수 크게 신어야 한다길래 일부러 높은 사이즈 남여공용 신발을 신었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에 감탄했다. 하지만 약간 벗겨질 것도 같아서 255mm도 샀는데 마치 나를 위한 것만 같았다.
오늘은 비가 온다길래 오랜만에 수 년 전 사서 신고 다니던 250mm짜리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 구두가 내 발을 쥐어짜는 것 같은 불편함이 들었다. 내가 가진 구두 중에 그나마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던 거였다. 이런 걸 잘도 신고 다녔구나.
신발만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기성품'으로 보급하는 다양한 것들에 나는 참 열심히도 나를 우겨넣어 왔다. 남의 눈에 이상해 보이지 않을 만한 행동, 말, 선택, 옷차림, 직업 등등. 그 결과는 나인데 내가 아닌 것 같고 어딘가 불편하지만 남들도 다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고 참는 일상이었다.
여자의 발 사이즈는 250이 최대라는 기성품의 논리는 좋은 대학 나와서 정기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남부끄럽지 않은 직장에 다녀야 성공한 삶이라는 논리, 내 나이와 성별과 사회적 위치에 걸맞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논리, 66사이즈는 너무 뚱뚱하니까 보기 좋게 55사이즈 이하로 '자기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과도 일맥상통했다. 어느 선을 넘어선 삶에 대해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상상도 하지 못하는 세계는 동시에 나의 가능성도 일정한 틀 안에 고정시켰다.
요즘은 신체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과거보다 열려가는 양상이고 다양한 수요에 대한 지각도 늘어나는 만큼 다행히 나는 이제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어느정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발뿐 아니라 다른 선택에 있어서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한번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거, 진짜 '나'의 것이 맞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