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by 뚜벅초

AI가 머지 않아 사무직 일자리의 대다수를 대체하기 때문에 우리 중 상당수는 길거리로 나앉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관측을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회사에서 매출 향상을 위한 진지한 회의를 몇십분째 하다가도 부장님은 갑자기 현타가 온 듯 "이런 식이면 우리 다 AI에 대체될 지도 몰라. 차라리 빨리 기술 배우는 게 낫겠다."고 하실 때도 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런 말에 마냥 편하게 웃을 수 없는 건 우리 모두 AI의 대 쓰나미를 피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혹자는 그렇게 멍청하게 있다간 AI에 대체돼 비참한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AI에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AI를 공부하고, AI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대비해야 한다고 협박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러나 AI를 공부한다는 건 어떤 것인가?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 기준에서 AI를 공부한다는 건 AI를 잘 활용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AI 강의를 들어 보아도 결국 명령어를 정교하게 잘 짜 넣어서 최대한 의도한 결과물에 가깝게 나오게 유도하는 것, 오류를 줄이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수많은 명령어 넣기와 수정을 반복하는 정도다.

그나마 현존하는 대표 AI가 대개 영어권에서 개발된 만큼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명령을 내리는 게 더 수월한 편인데, 그렇다면 영어를 공부해야 하나 하기에는 이미 AI가 원어민 수준의 자연스러운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혹자는 챗지피티나 제미나이한테 명령어 내리는 수준이 아니라 AI의 알고리즘과 코딩 원리를 전공자 수준으로 파악해야 AI 시대에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 현재 초등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널리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그 작동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쓰는 사람은 몇%나 될까? 애초에 코딩조차 AI가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판국에 인간이 기계의 원리와 프로그래밍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AI 시대 대응에 효과적일까 의문이 남는다.


불과 10년여 전만 해도 AI가 미술 작품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창작의 영역만큼은 오롯이 인간의 몫이리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예상은 너무나도 처참하게 빗나갔다. 생성형 AI가 가장 완성도 높게 인간을 대체하는 영역은 다름아닌 창작이었다. 오히려 제발 좀 기계가 대체해줬음 하는 위험한 육체노동이나 단순노동 등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앞으로의 10년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사실 예측불허한 인간사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환상에 가깝다. 심지어 이를 통제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것도 태생적으로 불안한 인간 존재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한 자기최면에 불과하다. 나는 지금 열심히 AI를 공부하고 있으니 다른 넋나간 인간들과는 달리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도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몸부림일 뿐이다.


인생의 여러 요소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지금도 널리 쓰이는 불안 관리법이지만 실상 통제 가능한 영역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오늘 점심으로 뭘 먹을지,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할지 아니면 그냥 더 잘 지 정도다. 그마저도 점심 먹기로 했던 식당이 문을 닫거나 밖에 비가 오고 있다면 꼼짝없이 다른 식당을 찾아야 하거나 헬스장으로 가야 한다. 이처럼 인간의 힘으로 제어 가능한 폭은 좁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특유의 전능감이 있어서 이를 객관하기가 어렵다. 취업도, 연애도, 사실은 내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혹은 너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가르침을 받으려 하고 돈을 쓴다. 그러나 사실 실질적인 '한끗'은 정량적인 요소가 아닌 여러 우연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면서 이뤄진다.


취업준비생 시절 버스를 타고 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를 들으며 간 적이 있다. 라디오에 출연한 패널은 자신이 초록창으로 유명한 국내 최상위권 포털 사이트 기업에 공채로 합격했다며 취업준비중인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저는 취업을 못 한 사람들은 뭔가 노력이 부족하든지 아니면 회사를 사로잡을만한 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돼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해당 포털사이트에 지원을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 과연 그는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얼마나 대단한 매력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을까. 다년간의 취업준비와 사회생활을 해본 입장에서 최종면접장에 올라간 사람들의 객관적 능력치와 매력치(?)는 다들 비슷비슷하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 신입사원과 같은 생각과 주장을 하는 편이 뭔가 '딱 떨어지는' 결론이니만큼 더 널리 유통되는 게 현실이다. 어차피 모든 건 운이고, 네가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보단 그냥 '니가 모자라서 그래'가 받아들이기 더 간편하니까.


내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은 취준생 시절 한 번 서류탈락했던 곳이었다. 한 번 떨어졌기 때문에 다시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혹시나 싶어서 한 번 재도전한 곳이 우연히 최종 합격까지 갔다. 나중에 다니면서 들은 걸로는 당시 서울대를 나온 대표님과 임원진들은 신입 채용 시 학벌을 주 요인으로 봤는데, 그들이 쉽게 퇴사를 하거나 생각보다 업무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앞으로는 학벌 보지 말고 경력 위주로 뽑으라는 기조로 전환하셨다 한다. 그래서 내가 뽑힌 것이다.


입사원서를 쓰고 있는 회사의 인사 담당자가 올해는 무슨 기준으로 사람을 고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표이사의 취향일수도, 당시의 업황에 따라 당장 필요한 경력을 갖춘 사람일지도, 아니면 조직에 적응을 잘 할 무난해보이는 이력을 가진 사람을 선호할지도, 심지어 MBTI 맹신자여서 MBTI를 보고 뽑을지도 모른다. 작은 조직뿐 아니라 큰 조직들도 툭하면 채용비리니 뭐니 뉴스가 나오는 마당에 취업 합/불합 여부를 보고 한 개인의 가치를 정량화해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오만에 가깝다. 또한 이를 순전히 노력으로 100% 통제할 수 있다는 것도 나이브한 생각이다.


취업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이 AI 시대를 완벽하게 대응하여 '승자'로 살아남겠다는 욕심 자체가 어쩌면 오만이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으리라는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나, 문제는 그 불안 심리를 자극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이다. 이 강의를 들으면, 이 과정을 수료하면 당신은 AI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닌 말로 세상이 다 AI에 지배됐는데 나만 살아남는다고 행복할까? 인생의 목적이 오로지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데만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레이 커즈와일과 일론 머스크 등 여러 업계인들이 관측하는 대로 '특이점(Singularity)'이 우리 생애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시기, 이미 인간의 인식 범위 밖으로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아득히 뛰어넘어버린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AI 시대를 대비하고 살아남고 뭐고의 차원이 아닐 것이다.


이미 오픈AI CEO 샘 올트먼은 미국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한 바 있다. 결과는 딱히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이 실험을 한 이유 자체가 AI 특이점 이후의 시대에 '존재의 이유'가 없어져버린 인간 존재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시스템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여러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무한히 증대된 생산량을 기반으로 인간에게는 기본소득이 지급, 더 이상 인간이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닌 자발적인 흥미에 의한 활동만을 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어떻게 노동을 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느냐고, 누군가는 쾌재를 부르겠지만 누군가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 디스토피아가 아니냐고 우려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전혀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 계층이 있었다. 바로 전근대 시대의 귀족(양반)이다.

이들은 타고난 신분 덕에 온갖 뒤치닥거리와 귀찮은 일은 하인들이 대신 해줬고 긴긴 시간은 독서, 예술, 공연 관람, 여행, 토론, 연회, 사교활동 등으로 보냈다. 그럼에도 역사 기록에 이름이 남은 것은 귀족들이었지 하인들이 아니었다.


수백년 전, 수십년 전에는 귀족이나 상류층들만이 영위하던 많은 것들을 이제는 서민들도 어렵지 않게 누리고 있다. 과거에는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도 큰 자랑거리였지만 이제는 해외 여행도 너무나 보편적이다. 여름에 시원한 얼음을 먹는 건 조선시대에는 왕족 정도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냉장고만 열면 가능하다.

한없이 낙관적인 관점을 취해 보면 어쩌면 AI 특이점 이후의 시대는 전 인류의 '귀족화'가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힘든 노동에서 해방돼 평생 자신의 흥미에 따른 일만 하다 가는 것. 심지어 전근대 인류와 달리 유아사망도 질병도 노화도 없는 세상. 물론 현실은 언제나 낙관과 비관의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기 마련인지라 이렇게까지 희망편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노동력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시대를 목도하는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대비책은 AI 사용법 강의를 듣고 코딩 학위를 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노동'으로, '가진 것'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인정받아야만 했던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가치관에서 탈피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응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내야만 가치있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로도 이미 완전하고 가치있음을 아는 것. 그리고 다른 모두도 마찬가지로 증명해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도 가치있음을 인식하는 것. 하기싫은 일을 꾹 참고 극기훈련하듯 인생을 살아야만 편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 인생을 고작 개인의 사소한 노력으로 모두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모두 산업화 시대의 낡은 가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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