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누군가가 '나락'에 떨어지는 시대다. 수많은 대중들은 분노인지 희열인지 모를 조롱을 뱉으면서 댓글로 정의구현에 나선다. 논리적인 척 정의로운 척 온갖 근거를 들이대며 한 사람을 나락 보내기에 혈안이 없으신 분들 중 유독 과하다 싶은 사람들의 개인 SNS 계정에 들어가 보면 높은 확률로 자해와 극단적 시도, 불행한 가정사에 대한 분노, 자기 처지에 대한 한탄이 처절하게 쓰여져 있다. 결국 그들이 타인에게 뱉었던 잔인한 말들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이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연대하기보다 어떻게든 잘못한 것을 찾아내 탈락시키기 위해 눈이 벌개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뿌리깊은 자기혐오가 깔려 있다. 부모님의 높고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한 자괴감, 나 자신의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한 자괴감,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에 대한 울분이 그 안에 그득그득 쌓여 있다가, 자기자신을 괴롭히다 괴롭히다 못해 타인에게까지 향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극단적인 상태의 악플러나 정신 이상자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는 조금씩 존재하는 심리다.
뇌과학적으로도 사람은 타인을 생각할 때와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mPFC)가 겹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사랑으로 이어지고, 타인을 혐오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혐오하는 감정으로 연결되는 이유다.
그래서, 유독 특정 지점 혹은 특정한 유형의 사람만 보면 이상할 정도로 화가 나고 욕을 하고 싶어지면, 알고 보면 그 대상은 내가 억눌러 놓은 나의 어떤 단면일 수 있다. 사람은 나와 아예 상관없는 대상에는 무관심할 뿐 화가 나거나 개입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혐오감이 드는 사람은 그냥 피하게 될 뿐 굳이 나서서 말을 보태고 싶은 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을 '지속적으로' 욕하고 훈계하고 싶어지는 건 결국 그 타인의 모습이 나의 일부라고 여겨지는 측면이 있어서다.
나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실 나는 의존적인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속이 뒤틀리고 기분이 나빠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렸는데도 당연한 듯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거나, 직장에서 자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도와줄 것을 요구하거나, 일하지 않고 어떻게든 보조금을 더 타먹으려고 머리를 쓰거나, 배우자나 부모님의 경제력을 자기 것인 양 과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쾌감이 들었다.
성인이면 응당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 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느냐, 조직에 피해를 주다니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비난하는 마음이 일었다.
이는 얼핏 보기에 정당한 비판으로 보일 수 있다. 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난 단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고, 납세자로서 간접적으로 나도 피해를 보기 때문에 공분을 느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 분노는 좀 과도한 구석이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그들로 인해 삶의 질이 나빠진 것도 없었다. 나는 왜 그들에게 화가 나는가?
명상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됐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내심 있었음을. 나도 때로는 부모님에게 의존하고 남이 벌어다 주는 돈을 받아서 편하게 놀고 먹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로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시기가 길지 않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접어야 했고 당장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해야 했다.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스스로 알아서 잘 크는 의젓한 자식이 되어야 했다. 나는 스스로 괜찮다고, 성인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적잖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의존적인 마음을 알아차렸으니 의존적으로 살겠노라는 결론은 아니다. 다만 내 마음 속에도 그런 측면이 있었음을 알고(당연하지만 100% 그런 마음으로만 꽉 차있는 건 아니다. 당연히 성인 자녀가 부모의 노후자금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도 언제나 정당하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인정해주면 된다. 원치 않게 타율적으로 홀로서야 했던 어린날의 나를 마음으로 한번 꼭 안아주고 그 노고를 알아주면 된다. 모든 억울함과 분노는 인정받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못 했고 업적이라곤 애 낳은 것밖에 없으면서 온갖 유세 부리고 다니는 80년대생 애엄마들을 몰살(?)해야 한다는 폭언들이 날아다니지만, 여기에 일단 분노하기 전에 저들의 마음 속에는 또 어떤 아픔과 자기혐오가 있을까 돌아보았다. 어쩌면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엄마라는 존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남성 집단에서 멸시받았을수도 여성으로서 차별적 구조에 짓눌리다가 그 혐오감을 내면화하며 결국 여성 집단에 대한 혐오와 멸시로 탈바꿈해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고많은 범죄자들을 제치고 언제나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은 만만한 존재로 카테고라이징돼있다는 공통점을 보면, '나는 저들과 다르기에 저들처럼 될 일이 없다'는 안심을 확보하고 싶은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확인하게 된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고 애 낳은 것 말고도 업적이 없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연민하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