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딴 '사회'는 전 '생활' 안 하겠습니다
학생 때, 휴학계를 내고 호주로 일년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배낭여행을 갔다. 말이 배낭여행이지 워홀비자로 갔으니 여기서 몇달 저기선 몇달 좀 일하고 돈 모아서 여행도 다니는 반 거주 반 여행 상태였다. 어쨌든 해외거주가 난생 처음이었던 나는 첫 한달간은 현지 적응을 위해 기숙사가 딸린 어학원에 단기 코스 등록을 했다. 딱히 영어공부가 목적은 아니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숙소가 제공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말이 시드니지 역시나 한국인이 90%였다. 정말 어학연수가 목적인 사람도 있는 반면 장기적으로 이민을 준비하거나(의외로 많았다) 간혹은 페이가 쎈 알바를 찾아다니며 한국으로 돈을 최대한 많이 송금하는 게 목적인 사람들도 있었다(개인적으로는 정말 돈만이 목적이라면 항공비에 호주 물가 감당하느니 그냥 한국에서 공장 몇 달 근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남의 인생이니 뭐 할 말은 없고).
위치는 호주였지만 구성원 대다수가 한국인이었던 그 숙소는 참으로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굴러갔다. 한국에서 눈치를 봐야만 했던 많은 시선들로부터의 자유는 누리고 싶어하는 반면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와 '가족주의'는 그대로 가져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는 나 역시 어렸기 때문에 어리버리 불편해하며 견디고 있었지만 지금같으면 가만 안 두었을 참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공용 냉장고에 이름을 써서 우유를 넣어두고 다음날 일어나보면 빈 곽만 있을 때가 태반이었고 다같이 쓰는 방에서 늦은 시간까지 큰 소리로 사적인 전화통화를 길게 하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대답해야 할 의무가 없는 개인적인 사생활을 마구 캐묻는 건 일쑤였고(나는 이 숙소 이후로 호주에서 절대 한국인 숙소는 이용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 혹은 다른 외국인-아시안도- 누구도 내게 개인적인 것을 마구 캐묻지 않았다, 물론 무례한 사적 질문들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순간 다시 일상화가 되었다!), 자신의 패거리가 아니면 뒷담화를 하는 것도 너무 흔했다.
그 시기 나는 멀리 호주까지 와서 굳이 한국인들과 허구헌날 '소주에 삼겹살'을 먹고싶지 않았고 그럴 시간에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현지의 명소를 한번이라도 더 둘러보고 싶었다. 물론 더 오랜 시간 호주에 머물면서 좋은 한국인들도 많이 만났고 친해지기도 했지만 그 숙소에 있던 무례한 사람들과는 굳이 무리해서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 끼지 않았고(그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 연인이 있음에도 그곳에서 여러가지 스캔들을 공공연하게 만들기도 하고 뭐 그랬다. 사생활이니 알 건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도 불편했다.) 자연스레 그 숙소의 '완장 찬 이'들은 '어린 주제에 사근사근하게 굴지도 않는' 나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숙소의 거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어느 여자애가 사소한 일로 그곳의 방장(?)격이던 한국인 남자와 말다툼이 붙은 것이었다. (나는 그때 공교롭게 밖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은 잘 모름) 그런데 듣기로는 그 한국인 남자가 외국인 여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하고 짧은 영어로 "너 죽고 싶냐? 죽고 싶어?"를 연발했다고 하더라. (남자가 여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주먹을 휘두르는) 사태가 처음이었을 그 여자애는 즉시 현지 경찰을 불렀고 바로 출동했다고 했다. 여자애는 결국 숙소를 옮겼다.
듣는 순간 나랑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몹시 부끄러움이 온몸가득 몰려왔다. 세계 어느 곳에고 여성대상 폭력이 없는 '유토피아'는 없지만 그래도 세계의 전반적인 윤리의식은 여성을 비롯한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그 무례한 남자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일어나고(숙소의 대부분은 여자들이었기 때문에) 마땅한 처벌을 받게 됐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반응은 뜻밖이었다. 외국인 여자애가 '괜한 일로 시끄럽게 난리를 쳐서 우리만 쪽팔리게 됐다'는 분위기였다. 그날도 다른 한국인 학생들은 나중에 조사를 위해 출동한 경찰들에게 이래저래 변명을 하며 사건을 없던일로 무마시켰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쌓여 있던 숙소에 대한 불만과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반응 등등에 질려서 나 역시 다른 숙소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때 같은 방을 쓰던 한 언니가 말했다. "00야, 너 '사회생활' 안 해 봤지?"
뜬금없이 5~6년도 더 된 학생때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당시에 들었던 '사회생활'이라는 단어의 기괴한 용법(?)을 진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최근 다시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합리적이지 못하고, 윤리적이지 않고, 강자한테 유리하고 약자한테는 불리한 그런 관행들을 눈감으며 적응하고 있단 말인가. 여기에 반감을 드러내고 이의를 제기하면 그 즉시 '사회생활 할 줄 모르는' 철부지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그런 부조리에 대한 용인으로 이뤄지는 '사회'고 '생활'이라면 그런 사회는 그냥 없어지는 게 낫다. 그런 사회생활 해서 이득 볼 사람은 궁극적으로 1%도 안 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
최근 '김영란법'이 합헌판결을 받으면서 우리 업계도 어느때보다 뒤숭숭하다. 그동안 '취재의 일환'이라는 모호한 말로, '사회생활'이라는 이유로 이래저래 용인됐던 온갖 찝찝한 관행들이 이제는 명백하게 성문화된 법의 테두리 하에 가능과 불가능의 상한선이 정해지게 됐다.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일반인들이 짐작하는'것보다는 좀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이 법에 찬성하고 있다. 이래저래 보던 혜택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대의가 옳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지나치다는 반응도 하고 있다. 모 언론사의 헤드라인처럼 '굴비의 눈물, 한우의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생활 하다 보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보면 2차 3차 길어질 수 있는데 3만원은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다. 아무리 친구끼리 저녁한끼 먹고 커피 한잔 하면 5만원은 금방 깨지는 시대긴 하지만 액수가 3만원이든 3천원이든 그것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았다면 특혜고 부조리가 맞다. '현실 사회생활'이 누군가의 특혜와 부조리로만 성립이 되는 거라면, 그런 현실은 어떻게든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