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옮기다

4년간 달려왔던 목표를 등뒤로 하고

by 뚜벅초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또 수개월 만에 이곳에 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보니 남자친구와 90일 됐다고 하는 걸로 봐서 지금 200일이니 벌써 넉달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또 신변에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던, 어렵게 입사했던 회사를 퇴사하고 같은 업종의 타사로 이직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이 업계에 몸담고 있는 관계로) 밝히기 어렵지만.... 이전 글에 나왔듯이 근 4년을 내내 목표로 해온 수준의 회사였던 만큼 퇴사하기까지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맞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던 회사라 더 이상 다녔다가는 내 정신과 몸의 건강이 배겨나지 못할 것 같아 일단 나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취준생 시절 내 목표는 '기자협회'에 소속된 언론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업계인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협회에 소속된 언론사라고 다 '조중동' 급 일반인들이 아는 매체 수준인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매체도 있고 이런 곳도 있다니 싶을 정도로 소규모의 매체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협회에 소속된 매체라면 출입처의 '기자단'에 소속될 수 있고(김영란법 이후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까지 협회 소속사는 비소속사에 비해 여러가지 취재 편의를 받는 편이다)' 다는 아니지만 대체로 처우도 괜찮은 편이다. 무엇보다 어디가서 직업이 기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그렇다고 비소속사는 기자 아니라는 뜻은 아니지만) 심리적 지지대(?)가 된다.......고 입사 전의 나는 믿었던 것 같다.


문과 중에서도 특히 취업이 잘 안되기로 유명한 나의 전공은 실제로 서른이 넘은 지금 나이에 월 20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 동기가 손에 꼽힐 정도로 열악한 현실을 자랑한다(아니 취업이라도 했으면 개중 다행인거다). 실제로 나도 대학 졸업 후 수년간 15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으며 지내 왔고, 어느정도 떳떳한 직장 소속에 대한 갈망과 아쉬움을 늘 품고 살아왔다. 때문에 지난 직장(비록 소위 말하는 '대기업'이 아닐지라도)에 입사했을 때 이곳에 장문의 글을 남길 정도로 감격에 겨웠고 지난날 내 수고의 보상을 받은 것처럼 뿌듯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입사하자마자 여러 객관적-주관적인 문제가 닥쳤고 나는 처음엔 만성피로에 시달리다가 결국 노이로제에 걸리고 우울증이 왔다가 급기야 1년이 지나서는 몸이 아프기에 이르렀다. 쉴새없이 기침을 했고 버스를 타지 못할 정도로 현기증이 심했다. 당연히 기자일을 계속 해야 되는 지에 대한 회의감도 심하게 들었고 결국은 여러 차례 조언을 구했던 선배를 비롯한 지인, 친구들과 상담한 끝에 사직서를 내게 됐다. 무엇보다 몸이 아파가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자리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사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입사한 지 채 석 달도 되지 않아서부터였다. 누구나 '직장생활'은 고되고, 품 속에 사표 하나 쯤은 갖고 다닌다고들 하지만 막상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만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퇴사 전 나는 매일 아침마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으며 근무 시간 중에도 피가 제대로 안 통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늘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걸린 이유는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와 '서른 넘은 나이에 그만두면 막상 이만한 회사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 것'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 전에 다녔던 월급 150 미만의 열악한 소기업조차 들어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퇴사 충동이 들고, 그걸 애써 다독이다가 결국 사직서를 내기까지, 20대 후반까지 갖고 있던 내 가치관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 20대의 나는 무조건 남보다 더 많이 성취하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고 실제로 그에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짜릿함을 느꼈다. 나는 내가 의심할 여지 없는 '성취지향적 인간'이라고 믿어 왔고(그러기에는 딱히 열심히 산 것 같진 않지만 ㅎㅎ) 인생의 여유를 즐기기에 나는 아직 너무 어리다고만 생각해 왔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극복하며' 살아 왔고 거기서 얻는 즐거움에 많이 기대왔던 것 같다. 불우하고 어려운 가정이어도 해외에 나가보고 싶어서 아르바이트 수십가지를 했고 극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려고 일부러 맞지 않는 사람과 환경 속에도 스스로를 내던졌다(이건 사실 잘 한 것 같다. 지금 하라면 못하겠지만). 학벌이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언론시험을 수년동안 붙들고 있다가 원하는 직군에서 일하게 됐고 심지어 30년 모솔까지 탈출(?)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한 크고작은 성취들 속에서 정작 진짜 내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삶과 상황은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병원에 가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아픔이 찾아오면서 처음으로 앞이 아닌 나 자신을 보게 됐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는 '협회'에 가입돼 있지 않은 매체다.(역시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 보통 '마이너'에서 경력을 쌓아 '메이저'로 이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 업계에서는 그리 일반적인 노선은 아니다. 물론 직장생활이 다 그렇듯이 어디라도 단점이 없는 곳은 없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아침마다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고통에는 시달리지 않게 됐다. (물론 이전 직장도 잘 다니는 분들이 많으니 개인적인 '합'의 문제가 컸던 듯하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일에서의 성취만으로 살 수 없는 체질이었고 업무만큼 개인적 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내 지난 20대의 숱한 노력의 시간이 헛되냐고 생각하냐면 그건 아니다. 이 결론도 죽도록 노력해서 이런저런 회사를 다녀본 끝에야 얻을 수 있는 결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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