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행복의 소중함
주인공 아키코는 수십년간 일해 온 출판사를 그만두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식당을 물려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완전히 새롭게. 함께 일할 알바생을 뽑기 위해 많은 면접을 거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안 맞는 사람과 일하느니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다가 우연히 들른 시마짱을 단번에 고용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같이 일하는 동료, 전 직장 동료, 이웃 등이다. 그 중에서도 아키코와 시마의 케미가 중심에 있다. 그리고 얄미운 소리를 하지만 애정이 담겨 있는 옆 카페 주인 할머니, 시마와 옆집 카페 다른 알바생, 아키코가 직장 생활을 할 때 멘토로 여겼던 요리연구가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풍경처럼 주변을 스쳐간다.
사회 초년생 때 처음 겪은 직장 생활의 혹독함을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에 주저리주저리 적었던 적이 있다. 그때 이웃이었던 어느 분이 '사회생활은 힘들지만 그 안에서 좋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남을 거에요'라는 덧글을 달아주신 기억이 난다. 사회는 정글과 같은 곳이고 직장동료는 경쟁상대 아니면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밖에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25살의 나는 그 말을 그리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 6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그 말을 실감하고 있다.
서른이 넘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절친보다 직장 동료(혹은 일적으로 보는 사람들)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좋든 싫든 직장동료와의 관계는 일상의 행복지수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고 실제로 유무형의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현실적으로는 함께 발전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난 학창시절 친구보다 매일 지겹게 보는 직장 동료와 더 열띤 대화를 오래 나눌 수 있게 된 순간 스스로 어른이 돼 버렸음을 실감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개중에는 다시 보고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참 고마웠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직장을 나오면 자연스레 멀어져버리는 관계의 특성상 다시 만나기는 어렵지만 어쩌다 우연히라도 만나면 옛 동창을 만난 듯이 반가워지는 사람들도 많다. 아키코의 요리 연구가 선생님처럼 갈등의 순간에서 조언을 얻을 수 있었던 멘토같은 선배들도 있었고, 시마짱과 옆 카페 알바생처럼 사회 초년생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공감할 수 있는 동기들도 있다. 그리고 쓴 소리를 해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옆 카페 주인 할머니 같은 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 '결'은 각각 다르지만 이렇게 촘촘하게 매어진 여러 인간관계가 직장을 단지 돈만 버는 곳이 아닌 생활을 하고 성장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걸 단지 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아키코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행복의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드라마 속 아키코의 식당은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한 삶의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아키코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알바생이 실수로 빵을 망가트리자 웃어넘기며 그건 시마짱이 점심으로 먹으면 되겠네, 한다든지. 옆집 할머니가 밉살스러운 말을 해도 '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 하고 좋게 받아들이는 모습.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 드라마 속 아키코의 식당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런 태도가 차곡차곡 쌓여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 냄은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니까.
ps.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드라마가 나왔을 당시 처음 봤을 때 나는 아직 취준생이었다. 그 때는 그저 아키코가 만든 샌드위치랑 스프가 맛있어 보이기만 했는데, 그래도 사회물 몇 년 먹었다고 같은 걸 봐도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역시 인생이란 건 참 오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