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2000, 모은 돈 1000만원으로 결혼 준비를 감행하다
2017년 봄, 만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나의 남자친구는 처음으로 단둘이 떠난 여행에서 갑자기 '언제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왔다.
둘 다 30대 초반으로 어차피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염두에 두어야 할 만남이었지만, 설렘과는 별개로 나의 마음 한켠은 그날부터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양가, 그 중에서도 우리 부모님의 영 좋지 않은 형편 때문이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당시 시댁은 오랜 사업 실패로 생활고에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생활비의 상당부분은 아들(나의 남자친구)에게 받아서 의지하는 형국이었다. 고로 모은 돈도 딱히 없었고 오히려 학자금을 여태 갚고 있었다.
나라고 좋은 조건도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 역시 수년 전 사업 실패와 잇따른 사기 피해로 억대의 빚을 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쨌든 비교적 화목해 보이는 시부모님에 비해 우리 부모님은 사이도 몹시 좋지 않아서 가족간 대화가 거의 전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제 비혼'을 선택한다. 만약 내가 이러한 상황을 밝히고 익명 커뮤니티 같은 곳에 글을 올렸다면 100이면 100 다 결혼을 뜯어말렸을 것이다. '남의 집 기둥뿌리'인 남자친구도 그렇지만 아마 댓글 중 절반은 나의 가정환경을 문제삼으며 '양심껏 헤어져주라'고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일말의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혼 얘기가 나오기 전 대략적으로 우리 가정의 상황을 눈물로 밝혔고 놀랍게도 남자친구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자신의 가정상황도 밝혔다. 한마디로 도찐개찐인 상황이었다.
그래도 당장 연애를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나는 당시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는 '결혼주의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반상황 때문에 2017년의 나는 어느 쪽으로도 확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애기간이 길어지고 어느덧 2년차가 되자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만은 없었다.
2018년이 되고 올 것이 왔다. 바로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고작 30대 초반이었던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왠일인지 아들을 빨리 결혼시키고 싶어하셨고 만약 '그 여자애'가 결혼에 계속 미온적이라면 선이라도 보라는 충고를 하셨다 한다.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부모님께도 남자친구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밝혔고 나를 아끼는 절친한 친구들에게도 상황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수치적, 상황적인 여건을 놓고 보면 누구라도 뜯어말릴만한, 위험의 요소가 도처에 있는 결혼이었다. 양가의 빚, 노후 대비 안된 부모님, 모은 돈 하나 없는 남편감, 결혼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서 말린다는 '남의 집 기둥뿌리', 불화하다 못해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처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처남, 고작 적금통장 하나밖에 없는 나의 자산과 중소기업이라는 직장...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남자친구를 만나본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은 하나같이 결혼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열악하지만 성실하고 반듯한 모습과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결혼 상대로 좋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실 남자친구는 붙임성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오해를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역시 나쁘지 않구나 싶기도 하면서 놀랍기도 했다.
양가 부모님을 만나 각각 인사를 드린 후에도 모두가 우호적이었다. 시부모님은 나를 이미 예비 며느리처럼 대하고 계셨고 우리 부모님도 어느샌가 그를 열심히 칭찬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얘기해도 '그 정도는 괜찮다'며 두둔을 할 정도였다.
유일하게 반대(?)를 하는 이는 우리 집의 고양이 뿐이었다. 처음 보는 '형부'가 낯설었는지, 언니를 뺏기기 싫었는지 으르릉거리며 텃세를 부렸다. 물론 그 고양이는 지금 우리 집에서 형부 무릎에 누워서 골골송을 부르고 있다.
때마침 어린 시절부터 나를 돌봐 주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상갓집을 3일 내내 지키면서 나이가 들면 가족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늘 불안했던 원가정에서 자라며, 그냥 평범한 정상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점점 나의 마음은 결혼을 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1년 반 만에 결혼을 준비하게 됐다. 남자친구의 빚 2000여만원과 적금 수백만원, 나의 적금 1000여 만원을 가지고. 양가 지원 한 톨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