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유한마담도 커리어우먼도 못 됐지만

by 뚜벅초

결혼할 때부터 양가의 금전적 도움은 꿈에도 꿀 수 없었던 우리는 전형적인 흙수저 부부다.

남편은 심지어 결혼 전까지 사업에 실패한 부모님과 취업준비중인 형제의 생활비를 대주던, 진짜 '남의 집 기둥'이었다. 이 때문에 딱히 모아둔 돈도 없었다.(다행히 결혼 이후엔 시부모님과 형제 모두 일을 구해 딱히 금전적 지원은 하고 있지 않다) 나 역시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진 않았지만 가정불화와 부모님의 사업실패, 사기피해로 인한 파산으로 홀로 집을 나와 월세살이를 하던 탓에 33살 결혼식 날까지 모은 돈이 천 만원 남짓이었다.


그런 우리가 만나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된 지 고작 두 달여가 지나 아기가 찾아왔다. 대출을 풀로 받아 좁은 미니투룸에 신혼살림을 꾸려 살고 있을 때였다.

왜 가족계획을 더 철저히 하지 않았냐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주변에서 하나같이 '아이는 원할 때 제깍 찾아오지 않는다'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를 가지면 일단 어떻게든 행복하게 키울 수 있다고들 해서였다고 할까. 그래도 충분한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은 부분은 개인적으로 반성하는 부분이긴 하다. 아이를 원망하는 게 아니고, 아이에게 처음부터 좀 더 여유롭고 쾌적한 환경을 주지 못해서다. 당초 우리는 6개월~1년 정도의 신혼생활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신혼 때부터 임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세상엔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준비가 덜 된 상태의 임신은 무조건 '축복'이라고는 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 너무 야멸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그럴 만 했다. 육아의 고됨을 떠나서 아이를 키우며 이전의 삶의 질을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한 희생과 노력이 필요했다. 경제적으로 유복한 조부모나 임대수익, 고소득 전문직 직장 같은 게 있지 않다면 하루하루를 전투하듯 살아가는게 대부분 가정의 현실이었다.


어린 시절 화목하지 못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도 벅찼던 부모님 밑에서 우울한 성장기를 보냈던 나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임신 후에는 상담치료를 받으며 애착육아서를 있는대로 찾아읽었다. 책마다 약간의 디테일은 달랐지만 결국 결론은 비슷비슷했다. 아이가 애착이 형성되는 생후 36개월이 될 때까지는 가정보육이 최선이며, 엄마가 안정된 정서로 아이에게 몰두해야 아이가 건강한 마음으로 자라난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엄마가 자영업에 종사하느라 생후 18개월 때부터 외갓집에 맡겨져 유치원에 입학할 때까지 살았던 기억이 난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눈물로 베갯잎을 적셨고 늘 엄마 냄새가 그리워서 엄마 냄새가 나는 이불을 파고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비교적 어린시절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편인 난 어린 아기에게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흐릿하게나마 감정으로 기억하고 있기에, 최대한 아이에게 엄마 자리의 공백을 주고 싶지 않았다.


출처: 픽사베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착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우리에겐 집도 없었으며, 심지어 전셋집조차 대출을 받아 마련했기 때문에 매달 수십만원씩 이자를 갚아야 했다. 얼마 뒤에 청약에 당첨되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외벌이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그나마 한 가족의 '라이프사이클'에서 가장 돈이 안 들어가는 축이라는 영유아기에 이 정도면, 추후 아이의 학령기 이후, 또 양가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서 일을 그만두게 되는 시점을 생각하면 더욱 부담은 컸다. 행여 나중에 내가 일을 더 하게 되지 못할지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돈을 벌어두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맞았다.

자칫 애착 찾다가 후일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져서, 사춘기가 되어 엄마의 애착보단 금전적 지원이 더 절실해질 아이에게 원망의 소릴 듣고 싶진 않았다.


결국 우리는 '생계형 맞벌이'를 선택했다.

흔히들 말하듯 엄마의 자아실현이나 사회적 성공 같은 형이상학적 가치가 끼어들 여유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성공해서 임원이 되고 싶을 만큼 일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사람도 난 아니었다. 만약 내가 수십억 로또에 당첨된다면 당장이라도 퇴사할 수 있는, 그냥 평범한 일개미에 불과하다. 연차가 꽤 쌓였지만 능력도 그냥 1인분 간신히 하며 하루하루 자리 보전하는 수준이다. 자아실현? 나처럼 사회생활 연차가 10년 이상 된 분들이라면 상당수(모두라고는 하지 않겠다)가 공감하시겠지만 자아는 원래 회사 밖에서 찾는 게 아닌가요.


유한마담의 부럽고 여유로운 삶도 아니지만,

안정적인 환경에서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며 따뜻한 가정을 꾸려가는 전업주부도 아니지만,

능력있고 멋져서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커리어 우먼도 아니지만,

하루하루 바쁘고 눈코 뜰 새 없이 육아와 일을 해나가는 '생계형 워킹맘'이지만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내 자식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로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려 노력하는 나, 그리고 나와 같은 처지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