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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실패 소믈리에(sommelier) - 당신의 실패에서도 맛이납니다

by 생쥐양

결혼 1년차 되던 해에 늘 달고 다니던 생리통이 그날따라 더욱 아려왔다. 직장후배와 함께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려는데 “언니, 혹시 임신 아니야? 결혼 한지 1년도 됐고 애가 생기면 생리통 비슷하게 아랫배가 아프다던데!” “아가씨가 별 소릴 다 한다” 하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나보다 더 신나있는 후배의 등쌀에 못 이겨 임신테스트기도 하나 샀다. 하지만 그렇게 후배는 신랑과 친정엄마보다 일찍 나의 임신을 확인한 1호 팬이 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명품태교’에 들어갔다. 비록 명품백은 갖고 있지 않지만, 명품태교는 노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시작하였다. 나에게 명품태교란 잠이 오면 자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는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 상태’였다. 그래서 매일 드라이브 스루에서 카페라떼 한잔을 받아 김현정의 ‘멍’을 열창하며 출퇴근했고 매주 주말 저녁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며 범인 찾기에 몰두했다.


10달 후 첫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육아휴직을 시작했고 오로지 육아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이왕 시작하게 된 육아, 남들보다 조금 특별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포대기에 아이를 재우며 육아서를 읽게 되었는데 ‘영재, 천재로 키우는 육아법’에 관심이 갔다. “그래, 이왕이면 머리가 똑똑해서 나쁠 거 없잖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영재부모가 샀다는 전집, 엄마표 놀이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도 놀이를 해주는 것도 엄마보다는 아빠가 해줘야 한단다. 그래야 아이의 두뇌발달과 사회성 향상에 영향을 끼친다면서 미국의 누구, 영국의 누구 이름을 거론하는데,,,이걸 따라하지 않는다면 내 아이가 영재가 못 되는 건 둘째 치고 신랑을 원망할 거 같았다. 그래서 신랑에게 ‘아빠의 역할’에 대해서 책에서 읽고 강의에서 들은 내용들을 비싼 참기름 팍팍 쳐가며 줄줄줄 읊어갔다. 다행히 착한 신랑은 내 말을 이해한 건지 스스로 깨달았는지 열심히 육아 책도 보고 육아 관련 홈페이지에서 좋은 글귀도 프린트하면서 나름의 속도로 아빠의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조급증은 신랑의 속도를 가속화시키기 위해 ‘더 많이, 더 알차게, 더더더’를 외쳤고 신랑은 ‘힘들어, 쉬고싶다’는 말을 내뱉었다. 사실 신랑은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을 뿐인데 나는 이 말이 나에 대한 반항으로, 육아참여에 대한 거절로 들렸다. 그래서 속상하고 슬픈 감정을 넘어 내 삶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나아지는 게 없을까?’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상대에 대한 원망이었고 최종 비난의 목적지는 나 자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아이에게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책을 읽어주고 부은 목을 가라앉히려 부엌으로 가 물 한잔을 마시는데 싱크대 창가에 비친 나의 얼굴은 내가 아니었다. 취업준비생일 때조차도 화장하고 청바지를 입고 귀걸이를 차고 도서관에 도착하여 새벽12시까지 공부했었는데 아이와 함께 있던 나는 떡진 머리, 퀭한 눈, 거친 피부, 바짝 마른 입술로 나조차도 내 얼굴을 보기가 싫었다. 그날 이후 아이를 영재로 키우겠다고 욕심 부렸던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처음 그 마음을 내려놓을 때는 ‘이것 또한 실패했구나’하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괴로웠었다. 더 힘들었던 건 ‘이제 아이도 나처럼 자라겠구나, 남의 눈치 보느라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꿈을 갖기 위해 헤매다가 결국은 부모님이 혹은 선생님이 짜주신 인생계획표대로 움직이겠지.’ 라는 생각에 몹시 두려웠었다.

두려움으로 무장하고 뛰어든 육아현장은 실패의 연속이었고 실패는 서글펐지만 위안이 되었다. 내가 그렇지 머,,,하며 나의 존재를 다시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었더라면 어깨가 조금 가벼웠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지난 5년간 연년생 삼남매를 키우면서 확실하게 아는 것은 명문대학교를 나왔건 아니건, 돈이 많건 적건, 내면의 상처가 크건 작건 육아현장은 누구에게나 전쟁이라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나는 지금까지 육아 방식의 차이로 신랑과 부부싸움도 많이 해봤고 아이들에게 사소한 일로 화도 내고 협박도 해봤다. 무수히 많은 절망의 순간들 속에서도 나는 살아남았고 여기 이 자리에서 숨 쉬고 있다.

아이를 바라볼 때면 가끔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울고 있는 내면아이로 인해 두려운 순간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나의 뱃속에서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났지만 나와는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타인이라는 걸.

오늘날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기까지 ‘엄마인 내가 아이를 키우겠다는 마음’을 버리니 큰 아이는 ‘배려영재’, 둘째 아이는 ‘미소영재’, 셋째 아이는 ‘모방영재’가 돼있었다. 사실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영재였던 것이다.

그럼 엄마인 나는 무엇이 돼있었을까? 내가 바로 육아천재, 영재가 돼있었다. 순전히 노력으로 이루어낸 영재 말이다. 매일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일주일에 2권씩 책을 읽고 다양한 강의를 들으며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두려움에 ‘나도 실수투성이니 너도 실수투성일 수 있다’고 색을 칠해주고 스티커도 붙여주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실패를 맛봐야 한다. 그 중에서 맛난 실패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너무 써서 먹을 수 없는 실패는 언젠가 먹을 수 있게 마음속에 숙성시켜놓으면 된다. 와인은 숙성될수록 맛이 난다던데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실패는 없기를 이 밤에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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