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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그렇게 기억되어야 한다

Remember me <영화 코코>

by 생쥐양

나에겐 이름이 있다.

너도 있고 그들도 있는 이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름

부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그 흔하디 흔한 , 그까짓 이름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보니 자기 이름인데도 자기 손으로 이름을 짓는 사람은 없다.

내 것인듯 내것 아닌 듯한 어색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의 이름의 변천사를 한번 들춰보자면

엄마 뱃속에 있을때는 지껌이

태어났더니 지혜롭고 슬기롭게 자라라는 뜻으로 지현이

학교에서는 지렁이

회사에서는 지현씨

아이를 낳으면 '누구'엄마

이제 내 이름을 들을 일이 점점 없어진다.

그렇게 지겹게 듣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내 이름이 없어지고 있다.

가끔 누군가 내이름을 부르면 깜짝 놀라는 걸 보니 나조차 내 이름을 잊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속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신의 이름이 점점 잊혀져 가는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기억'이란 곧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대뜸 "what's your name?"이냐고 묻지 않는다.

그에게 관심이 생길 때 그 사람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신기하게도 상대방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의 심장 한가운데 있는 피들이 내 온 몸 구석구석 퍼져나가며 뇌까지 전달된다.

그떈 미처 몰랐다.

이름을 듣던 그 짧은 1초가 1년, 10년, 2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사람이 있다.

이름 '석 자 '들었을 뿐인데 내 머릿속에는 상대방의 얼굴, 말투, 추억 그 모든 것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길을 걷다가 알고 있는 꽃을 만나면 지나치지 못한다.

수많은 꽃들 속에 피었더래도 짧게라도 말을 건넨다.

아무개 꽃이 아닌 '이름을 아는' 그 꽃이기에 가능한 일이란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마치 'Remember me' 노래를 듣고 코코 할머니가 아빠를 기억해낸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이 여전히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머리'가 아닌 '마음'을 통한 기억이기 떄문이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한,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하여도 영원히 사는 것이기를...

그러니 떠나가는 사람은 잊혀질 것을 두려워 말고, 남은 자들은 부재(不在)를 슬퍼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이름 모를 잡초 하나, 길고양이 한마리에도 이름을 붙여주며 불러줘보는 건 어떨까?

맺힌 이슬을 온 힘을 다해 빨아들여 한 뼘 더 자란 잡초,

집도 이름도 없이 막 살려다가 차가운 마음이 녹아 따뜻하게 살기로 결심한 애교많은 길고양이가 우리 동네에 다닐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름없이 살아온 나의 어머니 '영례씨',

이젠 '지현이 엄마' 말고 '영례씨'로 기억되는 삶이 당신의 삶에 펼쳐지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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