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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un 16. 2020

냉이와 함께 시작하는 봄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궁금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형편을 일상처럼 겪다 보니 가난도 운명처럼 그렇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현실을 원망할 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전학만 5번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픔을 나눌만한 친구도 없었습니다. 성장할수록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한 생활의 기술만 늘었습니다. 크고 작게 체험한 아픈 상처들이 모여 나를 가리는 방어막이 되었습니다.     

    

살면서 그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부모님께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굳이 정확한 수치로 이해하지 않더라도 피부로 느끼는 가난의 현실은 제법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학교 준비물을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는 일은 때마다 비슷한 친구들이 있어서 견딜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그 음식, 그렇게 차려진 도시락은 여러 가지 의미로 부담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어 번 집 근처 하천가로 나가셨습니다. 다녀오실 때마다 손에 든 봉지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파란 잎사귀가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용도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밥상을 경험하고 난 뒤에는 저 봉지 안에 든 것이 오늘 먹을 반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나물들이 참 다양한 반찬을 이뤘습니다. 모양이 같은 풀잎이 상을 차릴 때마다 두세 가지 반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반찬마다 첫맛은 달랐지만. 입안에 남은 뒷맛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나물 반찬이 그렇듯 어린아이의 입맛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나물이 있었습니다. 봄이면 종종, 아니 지겨울 정도로 상위에 올라온 ‘냉이’입니다. 그 쌉쌀한 뒷맛이 여간해서는 삼키기 불편했습니다. 편식한다고 타박을 받으면 죄송한 마음에 가끔 한 젓가락씩 올렸던 다른 나물과는 다르게 냉이는 좀처럼 밥그릇에 담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새 학년을 시작할 즈음의 어느 날입니다. 새 친구들을 사귀는 즐거움 속에서도 작은 긴장감이 머리 끝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 때였습니다. 가까이 앉은 친구들이 모여 함께 도시락을 열었습니다. 애초에 내 도시락 반찬이 인기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오래된 김치와 이런저런 무침들이 도시락의 주인 말고는 선택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즈음 되면 친구들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나물이 하나 담겨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친구 하나가 묻지도 안고 내 도시락 반찬을 입에 넣었습니다. 서너 번 씹고 나서는 ‘윽’하는 소리와 함께 도시락 뚜껑에 반찬을 뱉어냈습니다.       

        

분명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반찬을 내가 넣은 것도 아니고, 맛보라고 추천하지도 않았습니다. 뭐가 급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맛을 본 친구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미 뱉어낸 반찬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학년 내내 나에게 친절했고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친구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 사건은 나에게 작은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도시락을 열 때마다 친구들 앞에서 작아지는 감정을 마음 깊이 감춰야 했습니다.


귀가 후 도시락통을 내어놓으며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싸주신 반찬의 이름을 알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남겨진 반찬을 정리하시며 ‘냉이 무침’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 냉이 무침을 도시락 반찬으로 만난 기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봄이 지나서였을지, 아니면 그대로 남아있던 반찬통을 보고 다른 반찬으로 채워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냉이 무침을 더 맛본 기억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도시락 반찬으로 남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중학생 소년은 나이를 먹어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습니다. 친절하고 착한 아내는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아들보다 참 많이도 사랑스러웠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어머니는 이런저런 반찬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어머니의 음식을 대부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내에게 항상 친절하셨습니다.     

           

하루는 요즈음 꼭 먹어야 한다며 아내에게 반찬 하나를 밀어 넣으셨습니다. 냉이 무침이었습니다. 잠시 살피던 아내는 정확히 냉이를 알아내고 참 좋아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정도까지 잘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참 맛있게 하얀 쌀밥과 무침을 비워냈습니다. 대단한 연기력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마움보다는 미련한 모습이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은 아내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냉이 무침이 너무 맛있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귀를 의심했습니다. 진심인지 몇 번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세상은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아내 역시 참 독특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스쳐감과 동시에 내가 모르는 아내의 세계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20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매일 같이 아내의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결혼한 아들에게 다양한 반찬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냉이를 보내주셨습니다. 친절하게 데쳐진 냉이가 차가운 다른 반찬들과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씻고 다듬고 데치는 수고를 직접 해 주셨습니다. 이윽고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리고 된장국에는 피날레로 적당히 집어넣기만 하면 되고, 무침은 갖은양념을 넣어 즐겁게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집 근처 산자락에서 몇 시간 동안 캐낸 수고도 함께 자랑하셨습니다. 아내는 감사해했습니다. 그냥 먹어도 맛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은 립 서비스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냉이로 아내는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즐겁게 맛보는 아내와 달리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을 알고 있는 아내는 딱히 권해주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한 번 본인이 만든 고등어조림을 내밀었다가 투정하는 남편에게 상처 받았던 기억이 남았을 거라 예상해봅니다.      

         

그러나 그 날 상에 오른 냉이 무침은 사뭇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참기름으로 매끄럽게 발라진 냉이 무침의 초록 빛깔이 제법 먹음직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주황빛 감도는 매콤한 기운이 시선을 자극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 음식의 맛이 궁금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살피고는 한 조각 집어 들어 입안에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빠르게 씹었습니다. 매콤, 새콤, 짭짤한 느낌이 감돌았고 쌉쌀한 느낌이 여운을 채웠습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느낌의 미각이 식사의 흥을 돋우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고백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달라진 입맛이 세월을 의미하는 줄 알았습니다. 냉이 무침이 입맛에 닿은 이후로 다양한 나물이 새로운 맛을 알려주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무너져갈 무렵, 기억에서 밀어냈던 그 시절 작은 상처를 꺼내었습니다. 분명히 아픔이었지만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던 그 기억입니다. 내 친구도, 나도, 그리고 어머니도 잘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발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돌멩이처럼 마음 한 편에 남아 불편하게 느껴졌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행히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귀담아듣는 아내의 모습이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냉이는 사랑으로 남았습니다. 



                  

봄이 되면 냉이는 여기저기 음식에 넣어져 봄이 깊어짐을 알려줍니다. 초록의 잎은 차갑게 언 땅을 감싸 안고 뿌리는 지난겨울의 시린 한기를 머금었습니다. 참 봄 다운 나물입니다. 여전히 살아가기 벅찬 인생이지만 봄은 항상 기다려집니다. 파릇한 새싹이 희망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냉이는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닐지라도 가장 마음에 남는 반찬이 되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봄나물의 행복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언제나 푸른 잎이 새싹을 피운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항상 부족한 부모일지라도 그때는 최선을 다해 사랑했음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나처럼 부모님의 마음을 깨닫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때가 언제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픔을 이겨내고 더 많이 사랑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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