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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an 22. 2024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박완서 에세이 /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습니다.

우승의 경험만큼 꼴찌의 경험도 특별합니다.

좋은 경험은 아닐지라도 승부의 세계에서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합니다.

물론 굳이 꼴찌를 기억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당장에 지난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는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지만

꼴찌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친구들이 모일 때마다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가 있습니다.

고 1 때 우리 반 꼴찌가 누구였는지 꼭 물어보는 친구가 있습니다.

항상 1등을 도맡았던 친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꼴찌가 누구였는지는 서로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 친구가 의심스러워 넌지시 솔직히 말해 보라며 권하지만

자신은 결코 꼴찌를 한 적은 없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자기 뒤로 10명은 넘게 있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아무튼 여전히 미스터리인 우리 반 꼴찌의 행방은 모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웃음 포인트입니다.


중학교 시절 오래 달리기를 할 때였습니다.

운동장을 여덟 바퀴 반을 도는 시합이면서 점수를 받아야 하는 시험이기도 했습니다.

체격이 작은 편이었지만 폐활량이 좋아 오래 달리기는 항상 1등이었습니다.

6바퀴를 넘어가면 뒤쳐진 친구들을 한 바퀴 넘어 앞서가기 시작했고 

마지막 한 바퀴는 전 속력으로 달려 여유 있게 1등을 차지했습니다.

넉넉한 차이로 다른 친구들이 모두 들어올 때까지 숨고를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들어온 친구가 자리를 채우자 체육 시간이 끝났습니다. 

모두 힘겹게 교실로 향하는데 꼴찌를 했던 친구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울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서 위로해 줄까 고민하다 모른 척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중학생 소년에게는 꼴찌의 아픔을 위로할 적절한 방법이 어려웠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오래 달리기는 내 인생 몇 안 되는 1등의 경험이었습니다.

지금껏 나는 대부분의 승부에서 중간 혹은 중간 이하를 경험해 온 것 같습니다.




어떡하든 그가 그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끼지 말아야지

느끼기만 하면 그는 당장 주저앉게 돼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 박완서 /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에서




딱히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는 세상이 주는 기준에 따라 순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꼴찌는 아닐지라도 상위권은 분명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순위가 필연일지라도 모두의 삶이 저마다 특별했으면 좋겠습니다.

순위에 상관없이 말이죠.


살다 보면 느닷없이 괴로운 마음으로 뒤덮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을 이겨내는 마음 자체가 위대하다면 아름답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누구도 주저앉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살아 내는 당신은 위대합니다.

늘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면서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의 한 챕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금년에 발행된 따끈따끈한 초판인데도 내용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합니다.

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셨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글은 무작정 쓰기보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더 와닿습니다.

공감대가 주는 힘이 아닐까 싶네요.

쓰는 것만큼, 읽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훌륭한 작가님의 책을 읽어 행복합니다.

고인이 되신 작가님이 저에게 보내는 박수라 생각하며 힘을 얻습니다.

덕분에 꼴찌가 되어도 나는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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