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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un 13. 2024

사랑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둘째 아들의 턱 교정을 위해 아껴 두었던 천만 원짜리 적금을 아무렇지 않게 깨버립니다.

딱히 남편의 의사를 묻지 않아서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숨겨둔 돈 내놓으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우리 천만 원 왔어?"라고 농담으로 인사를 건네자

아내는 그런 말장난하지 말라며 남편을 타박합니다.

엄마는 그 돈을 지불하고도 아들의 불편한 심기를 건들고 싶지 않아 합니다.


확실히 남자들은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고 여자들은 때론 지나치게 예민합니다.

다른 집은 몰라도 우리 집 식구들은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이어진 관계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부부, 부모와 자녀, 남녀의 관계 혹은 그 너머의 끈끈한 사랑은 모두 아름답게 여겨집니다.

아마도 사랑이라 부르는 관계 안에는 생물학적, 물리학적 본능을 

넘어서는 희생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풋풋했던 청춘의 시절에는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매우 계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 죽는 마음으로 데이트를 하고 난 뒤에도 서로 무언가 서운한 마음이 생기면 불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랑은 공평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도 한 동안 그 법칙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참 많이도 싸웠습니다.


싸움이 멈춘 건 조금씩 사랑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둘째를 낳을 때 즈음 부부는 이미 어느 한쪽이 가족을 위해 더 많이 희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타인을 위해 쓰게 되었고 자신의 희생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공평하지 않은 사랑의 균형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남편에게도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휴식도, 잠도, 티브이 시청도,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도 아내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희생을 조금씩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고 생각대로 도와주지도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희생하는 아내의 육아와

외계 생물체 대하는 남편의 육아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시키는 일 잘 하면서 응원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흘러 보내고 아내에게 뜻밖의 고백을 받았습니다.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한 번도 당신의 희생에 고맙다고 고백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마음을 알아채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부의 사랑은 균형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못생긴 막내딸까지 얻었습니다.





사랑은 생각보다 공평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이 더 많이 희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불공평한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 때 발생합니다.

엄마니까, 아내니까, 자식이라면, 남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상처를 남깁니다.


사랑에 당연한 건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랑에는 특별한 수고가 담겨 있습니다.

그 수고를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관계를 이어주는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쩌면 생판 모르는 식당 주인의 친절보다 더욱 감사해야 하는 대상일지도 모릅니다.

내어 주면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과 이익을 위해 친절한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기울어진 사랑을 감사로 채워줄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착한 아이들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혹여나 실망할 아내를 위해 비상금이나 모아 놔야겠습니다.

내것이 아닌 내것을 모으는 것으로 사랑의 균형을 채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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