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좋아한다고 해서 걷기 전문가는 아닙니다. 걸음도 느리고 많은 곳을 다닌 것도 아닙니다. 돌아보면 걸음은 그저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고 걸음 외에는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인생을 제법 살았는데 지난 시간의 걸음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통장의 잔고나 경력도 딱히 카운팅 할 만한 숫자는 안 나옵니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는데 마침 그때 아내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까 참 좋다.”
어린 시절에는 백 원짜리 동전 하나만으로도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많았습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할 수도 있고, 뽑기를 뽑을 수도 있고, 만화책 한 권을 빌려 볼 수도 있었습니다. 무얼 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이 단돈 백 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즐거운 일이 줄었습니다. 응원하던 스포츠팀이 우승을 해도 10년 전 그때만큼 즐겁지가 않습니다. 마음껏 게임을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지만, 연초에 새로 장만한 컴퓨터에는 그 흔한 지뢰 찾기도 없습니다. 즐거웠던 일들은 하나둘 빛을 잃어 가는데 새로운 즐거움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발견한 마지막 남은 즐거움이 걷기입니다. 처음엔 힘들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걸었습니다. 걸음마다 한숨도, 울분도, 불안한 마음도 날렸습니다. 죽을 것 같아 시작한 걸음은 언제부턴가 삶의 행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행복을 주머니에 담는 것 같습니다. 시나브로 아내와 나는 걷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었고 거의 매일 함께 걷고 있습니다.
걷기는 마지막 남은 내 삶의 활력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남기는 것은 내 즐거움의 기록입니다. 꺼져가는 촛불이 그 희미한 빛을 남기기 위해 걸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가는 삶의 즐거움을 하나씩 되찾기 위한 모험의 시작이자 새로운 도전의 선언입니다.
이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할 만한 용기는 없습니다. 20대에는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오기로 깡으로 들이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런 용기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아직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지난 걸음을 돌아보았습니다. 보기보다 초라한 걸음이었습니다. 이런 걸음을 남긴다고 누가 쳐다보기나 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면 부끄러운 시간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찾기로 했습니다. 별것 없는 인생도 돌려보니 채워지는 여백이 많습니다.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면 빈칸 그대로 남겨 두어도 괜찮겠지요.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때도 어딘가를 걷고 있었을 테니 버려진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소심한 위로를 남겨 봅니다.
돌아보면 언제나 동행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울고 웃게 하는 아이들이 있고, 3년 만에 연락해도 엊그제 본 것처럼 대화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희망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브런치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나고 메일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관계는 이따금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원망하지 않을 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을지라도 미움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 걸음이었습니다. 외롭게 시작한 걸음인데 하나, 둘 함께 걷기 시작하더니 이젠 걸을 때마다 수많은 이들을 마음에 떠올립니다. 혼자가 아니어서 더욱 즐겁습니다. 아니 혼자여도 괜찮습니다. 이젠 내가 누군가의 동행이, 혹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느 해보다 유난히 서늘한 계절입니다. 두텁게 팔짱을 끼고 걸음을 맞추는 아내 덕분에 서늘함도 즐겁습니다.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멈춰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걸었던 만큼 내일도 걸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10년 즈음 후에는 다시 한번 이렇게 걸음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꿈꾸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