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남편에게 얘기합니다-1
자기야 어제는 우리 결혼기념일이었어…
자기는 울산까지 당일 출장을 가서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상태였고, 갑자기 난 야근을 해야 했지. 회사에서 납품한 장비가 설치되어 시험 중인데 뭔가 문제가 생겼나 봐. 문제를 찾는데 최대한 지원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 남아 있어야 했어. 퇴근시간이 다 되어 벌어진 상황이라 난 등 하원을 책임져주시는 어머니에게 부랴부랴 연락을 드리고 야근을 했지. 겨우 끝나고 집에 가니 9시가 다 되었네.
이렇게 갑작스레 늦을 때마다 난 늘 불안하고 빨리 퇴근해야겠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 어머니가 혼자 아이를 돌보아 주시는 걸 힘들어하시니까. 내가 야근을 며칠 했을 때, 어머니께
‘계속 늦게까지 아이 보시느라 힘드시죠?’라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힘든 것도 있지만 지루하다,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가는구나 생각하면 허무해’라고 대답하신 게 너무나 생생하거든.
어머니 성격상 말할 상대도 없이 집안에만 갇혀서 애를 돌보시는 일이 별로 안 맞으신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어머니랑 부딪힐 때마다 차라리 어머니 대신 사람을 구해서 쓰자고 했었던 거고. 하지만 자기는 바로 옆에 어머니가 계신데 어떻게 그러냐면서 그래도 남보다는 나을 거라고 말하면서 내 말을 거절했지. 난 그게 늘 불만이었어. 우리의 다툼도 대부분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거고. 처음부터 사람을 썼으면 어땠을까 우리가 다툴일이 줄어들었을까.
그날 나보다 일찍 온 자기는 내가 신발을 벗으며 걱정되고 궁금한 마음에 저녁은 먹었는지, 어머니는 가셨는지 물어보았을 때, 내 말에 대한 대답 대신 어머니가 엄청 짜증을 내고 가셨다는 말을 했어. 집안 좀 치우고 살라는 잔소리를 하셨다고 얘기하는 자기 기분도 그렇게 썩 좋아 보이지 않았지. 자기도 일을 하고 왔는데 어머니가 짜증을 내시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지. 그건 이해하지만 자기 말투에는 단순히 기분이 별로라는 것만 느껴지진 않았어. 자기도 어머니와 같은 시선으로 나를 나무라는 게 느껴졌지. 난 억울하고 속상했어. 나도 힘들게 늦게까지 일하고 맘 졸이며 왔는데 그런 말투로 얘기하는 자기가 너무 미웠지. 그래서 그 순간 내 눈앞에 있는 자기한테 언성을 높였던 거야….
보통 우리는 주말마다 한 번씩 청소를 하지만 지난주에는 이틀 내내 같이 외출을 좀 하느라 청소를 못했을 뿐이야. 또, 어머니는 가끔 동네 마트에서 세일한다고 한 번씩 콩나물이며 파, 양파 등등 야채들은 사다 주시는데 우리는 그 야채를 다 소화를 할 수 없어. 반찬을 사다 먹을 때도 있고 외식을 할 때도 있고, 일하고 와서 저녁을 해 먹을 때, 야채를 씻고 다듬고 데쳐서 해 먹기가 늘 부담스럽고 귀찮지. 게다가 어머니가 사다 주시는 야채는 날 것 그대로니까 내가 사는 세척해서 다듬어진 야채를 살 때보다 훨씬 씻고 다듬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겨우 한번 먹고는 냉장고에 넣어둘 수밖에. 그리고는 손이 잘 안 가게 되지. 어머니 입장에서는 애써 사다 주신 야채가 썩어가는 걸 보니 속상해서 한마디 하신 걸 꺼야. 빨래도 그래. 어머니가 아침에 널어주신다고 해서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 대신 항상 자기가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출근하는데 어제는 미처 널어놓은 빨래를 개어 놓지 않아서 전날 빨래까지 정리하고 빨래를 널어놓으시려니 맘에 안 드셨겠지. 아니 내 생각엔 자기가 항상 빨래를 돌리는 거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듯 해. 아침에 애 먹을 반찬도 제대로 하라고 먹일 게 없다고 한마디 하셨다는데 정말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난 숨이 막혀...
우리가 같이 일을 하면서 기본적인 집안일에 빈틈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생각해. 자기와 내가 서로 도우면서 이런 부족함을 채워나가야 하고. 한 번씩 어머니의 짜증과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도 힘들고, 왜 그 빈틈을 채우는 책임을 나에게만 묻는 건지도 억울해.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그런 어머니 말을 전하며 은근히 어머니 생각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자기 태도야...
아이 등 하원을 어머니께 부탁드리는 이상 이런 어머니의 간섭은 계속될 텐데 어디까지 어머니의 간섭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어. 자기도 오늘 먼 곳으로 장거리 출장을 다녀와서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일 텐데 어머니로부터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 자기 기분도 별로겠지. 나도 힘들게 야근하고 왔는데 내 기분도 별로고… 결혼기념일 날 이게 뭐람... 어이가 없고 한숨만 나오네. 어머니 얼굴은 낼 또 어떻게 봐야 할지… 이럴 땐 정말 없는 야근도 만들고 싶어 진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