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쳤을 땐, 먼저 아이와 나의 안부를 살펴줘

워킹맘이 남편에게 얘기합니다-2

by 선율

아이가 4살 때쯤 이였을 꺼야. 그때, 우리 아들은 나한테 업히는 걸 무척 좋아했었지. 거실에 앉아서 좀 쉴만하면 내 뒤로 가서 목을 감싸 안고는 업어달라고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떼를 쓰곤 했었어. 아이가 내 등에 밀착되어 있는 느낌이 좋고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을 듣고 보는 것이 좋아 그럴 때마다 난 흔쾌히 아이를 등에 업고 일어나 집안을 걸어 다녔어. 손으로 아이 엉덩이를 받쳐야만 안정감 있게 아이를 업을 수 있지만 한 번씩은 일부러 손을 쓰지 않는 상태로 걷기도 해. 그러면 아이는 떨어질 거 같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더욱더 내 등에 매달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 얼마 못 가 힘에 빠진 나는 결국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게 되지만 아이가 즐거워하는 목소리와 내 등에 꼭 안겨있음으로써 느껴지는 포근함, 그리고 또 이런 시절도 한 때겠지 하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업으면서 놀아주곤 했어.


그날도 아이를 업은 상태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어. 저녁을 먹고 정리가 끝난 시간이었고, 아이와 놀아주는 중이었어. 아이를 업은 상태로 아빠 어디 있는지 찾아보자고 얘기하면서 난 자기가 있는 작은 방으로 아이를 업고 간 거고. 그때 자기는 책상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중이었어. 아이는 아빠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아빠한테 가기 위해 갑자기 상체를 자기 쪽으로 거의 눕다시피 기울였어. 아이 무게 중심이 옮겨지는 바람에 순간 휘청거리게 된 나는 자기한테 아이를 넘겨주기 위해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손에 힘을 뺐는데 문제는 그 순간 자기가 아이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거였지. 결국 아이는 상체가 거의 눕혀진 채로 방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도중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힌 거야.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안으며 머리를 살펴보니, 머리가 부딪힌 부분에서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고 있었어. 나도 너무 놀랬지만 자기는 그때 더 심하게 놀랬던 거 같아. 큰 소리로 우는 아이를 달래며 상처를 살피느라 정신없는 나와 달리, 자긴, 아이 상처를 보고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하다 이내 곧 화를 내기 시작했지. 혼자 씩씩거리며 방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아이씨’를 연달아 내뱉으며 나에게 소리쳤어.


‘조심 좀 해! 이건 순전히 부주의해서 일어난 일이잖아!’


한참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던 나는, 나에게 잘못을 다 덮어 씌우는 자기 말을 들으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결국 나도 같이 버럭 화를 내버렸던 거야.


'내가 일부러 그랬어? 아이 키우면서 다칠 수도 있는 거지, 그럴 때마다 이렇게 흥분하면서 놀란 애 앞에다 두고 화만 낼 꺼야?’


나도 같이 큰 소리를 내자 순간 우는걸 잠시 멈칫하던 아이는 곧 더 크게 울기 시작했어. 이젠 우는 걸 넘어 거의 악을 쓰는 수준이었지. 그 소리에 난 ‘아 내가 지금 아이 앞에서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내 마음을 진정하고, 아이 달래는 거에 집중했어. 자기도 더 이상은 아무 말 안 하더라.


자기는 유난히 아이 다치는 걸 못 참는 거 같아. 무릎이 까지고 아이의 피부에 작은 생채기만 나도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며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의 상처를 살피고 연고를 발라주고 나에게 주의를 주는 듯 해. 자기의 꼼꼼한 성격에 비해 내가 그렇지 못한 건 사실이야. 내가 더 실수도 많고 덤벙대기도 하고 아이의 상처 관리도 자기에 비해 부족하니까. 하지만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건을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나한테 옆에서 도와주기보다 내 잘못부터 따지며 날 비난하는 말을 퍼부으면 난 그래 앞으로 실수를 줄여야지라는 생각보다 자기한테 야속함과 서운함을 먼저 느끼게 돼.


'흥, 그렇게 걱정이 되면 자기가 애를 봐야 할 거 아니야 애는 보지도 않고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무슨 일만 벌어지면 나한테 화만 내니… 내가 힘들어 못살겠네…'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지만 어쨌든 내 잘못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아이를 달래고 사건을 수습하는 게 먼저니 그 순간 더는 말하지 않는 거라고. 실수가 많은 건 인정하지만 그만큼 내가 육아를 많이 하기에 확률적으로 실수를 많이 하는 거라고, 그렇게 실수하면서 다들 아이 키운다고 말해주고 싶어.


아이가 다친 후, 연고를 찾아 나에게 내밀고, 상처 난 부위에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아이를 씻기고, 내가 아이를 재우는 동안 책상 모서리에 안전 바를 설치하고, 잠든 아이의 상처 난 부위에 여러 번 연고를 발라주는 자기의 모습 속에서 말은 안 해도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화를 낸 것을 미안해하고 있음을, 그리고 아이를 아끼고 챙기는 마음이 느껴졌어.


자기야, 이런 예기치 않은 상황이 언제든지 앞으로도 벌어질 텐데 이럴 때마다 매번 우리가 얼굴을 붉히고 기분이 상해야 할까? 이럴 때, 어떻게 우리가 말을 주고받아야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있지?


아이가 또 다치는 상황이 오면, 그 순간에는 당황해서 나도 자기도 정신없을 텐데 그때 자기가 내 실수로 인해 화가 좀 나더라도 아이 앞에서 큰 소리 내거나 나한테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상황이 다 수습되고 아이가 안정되고 나서 그 뒤에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면 내가 자기 말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쉬울 거 같아. 물론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평상시에 난 더 조심할게.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기가 이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00아, 괜찮아? 자기두 괜찮은 거야? 아이고 피가 나네. 자기 엄청 놀랬겠다. 자, 이거. 00이 머리에 난 상처에 이 연고 발라줘.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구나. 당장 책상 모서리에 안전바를 설치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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