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플 때도 나에게 숨 쉴 시간을 좀 줘

워킹맘이 남편에게 얘기합니다-3

by 선율

우리 00 참 많이 컸지? 태어나서 입을 오물거리며 내 품에 폭 안겨 날 쳐다보는 그 눈빛을 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쩌렁쩌렁 큰 소리를 내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천방지축 어린이가 다 되었다는 게 너무나 신기해.


이젠 아빠랑도 잘 놀고, 아빠랑 잠도 잘 자고(물론 엄마가 없을 때만이지만), 내가 옆에 있어도 아빠를 찾을 정도로 많이 컸지. 하지만 아플 때만큼은 여전히 엄마인 나만 찾는 거 같아.


아이가 아팠을 때 이야기를 하려고 해.


폐렴에 이어 심한 기관지염 때문에 한 달 가까이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던 아이. 어느 순간부터 나만 찾기 시작했어..


처음엔 아프니까 심한 기침과 열로 인해 밤 잠 못 자고 칭얼대니까 안쓰럽고 짠 한 마음에 밤새 신경이 쓰였지. 3-40분 일찍 출근하는 평상시와 다르게 최대한 늦게 출근 시간에 딱 맞춰 출근, 퇴근시간이 무섭게 달려와 아이를 적극적으로 돌보는 날이 이어졌어. 하지만 2주가 지나니 가래 섞인 기침을 간간히 하는 정도에 누가 봐도 아픈 아이 같지 않게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며 잘 놀았어. 이때쯤부터였던 거 같아. 내가 점점 지치고 힘들다고 느낀 때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이는 항상 나만 찾고 내 옆에 꼭 붙어있으려고만 해. 자기가 퇴근하고 집에 왔으니 같이 얘기 좀 하려고 해도 아이는 본인이랑만 얘기하라며 자기와는 대화도 못하게 소리를 질렀지. 저녁을 먹을 땐 무조건 내 무릎에 꼭 앉아서 떠먹여 주는 밥을 먹었고 목욕도 그 전까진 아빠랑 같이 했는데 무조건 엄마랑 한다 하고. 목욕하고 나서 옷 입고 로션 바르는 것조차도 엄마랑 해야만 했어. 밤에 잘 때는 자기가 옆에 눕는 건 상상도 못 하고 방에 들어오는 거 조차 못하게 하니 말 다했지 뭐. 아침에 내가 출근 준비 중에 간간히 아이가 깨서 엄마를 찾는 소리가 들릴 때면, 자기가 방에서 토닥거려주는 소리가 들렸어. 그럼 아이는 더더욱 소리 지르며 자기를 밀어냈지. 내가 들어가서 옆에 누워있어야 다시 잠이 들고 그제야 난 다시 방에서 나와 지각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는 날이 계속 반복되었어.


자기야, 이럴 땐 내가 너무 힘이 들어. 아침 시간도, 퇴근하고 와서 저녁에 아이를 재우는 시간까지 아이한테 매여 꼼짝할 수가 없으니까. 아이가 잘 웃고 잘 놀 때는 한없이 예쁘지만 본인 맘에 안 들면 떼를 쓰고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내 손을 놓지 않은 채 날 끌어와 역할놀이를 하자고 조를 때면 한 번씩 한숨이 새어 나온다니까. 지난 2~3주간 아프다고 너무 다 아이의 뜻대로 받아준 건 아닌가 후회가 될 정도야.


그에 반해 자기는 무척 자유로워 보였어. 저녁때부터 꼼짝없이 아이에게 붙들려 아이와 얘기하며 놀아주고 아이가 원하는 걸 해주면서 저녁 준비부터 목욕 후 잘 준비까지 하는 내 옆에서 자긴 어쩔 수 없으니 자유로움이나 만끽하겠다는 태도를 나에게 보여줬으니까.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야. 어느 날은 힘들게 아이를 목욕시키고 나오는 나에게 자기는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휑하니 나가버렸지. 아... 그 순간은 정말… 뭐라고 해야 할까… 등을 보이며 현관문을 나가는 자기를 보면서 허탈함과 속상함, 나만 이게 뭔가 싶은, 힘이 빠지고 억울함도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 밀려왔어. 아무리 아이가 나한테만 매달려도 자기가 옆에서 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도 좀 하고, 나에게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이라도 한번 해 주고, 조금이라도 아이와 같이 지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아이를 재우며 곰곰이 생각해봤어. 이게 무슨 감정 일까. 아이와 웃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때 함께하는 것보다 힘들고 지칠 때 함께해야 소위 말하는 육아 동지애가 피어나고 부부 관계도 더 단단해진다는데 나만 고군분투 하는 느낌이 들었어. 내가 힘들 때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니 자기한테 좀 더 기대를 하게 돼. 자기한테 의지하고, 기운도 받고, 자기가 배려해줌으로써 고마움도 느끼면서 말이야. 그런데 한 번씩 난 지금 여전히 힘든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 난 자기가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운이 쭉 빠져버리네. 그렇게 되면 혼자라는 기분이 들면서 자기를 원망하기까지 하게 되는 거 같아.


자기도 그동안 아이가 아프다고 여러 가지로 신경 썼을 테니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갔을 거야. 하지만 나 또한 많이 지쳐있고 답답한 상황에서 자기가 내 컨디션을 살펴주거나 신경 써주는 어떠한 말이나 행동 하나 없이 그렇게 혼자만 나가버리니 더 자기한테 서운했던 거지.


운동하고 돌아온 자기가 00이 잘 잠들었냐고 묻는 말에 까칠하게 대답하며 자기한테 짜증으로 대답한 거 조금 이해는 해줄 수 있겠어? 기껏 기분 전환하고 돌아왔는데 그런 내 반응에 자기 입장에서는 참 어이없고 황당했지? 그래도 2주 이상을 꼼짝 못 하며 아이한테만 매달려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분 전환책이었다고 하면 자기 마음이 좀 편할까?


그전에 자기가 나한테 이렇게 얘기해주었다면 어땠을까

‘00이 챙기느라 힘들지? 매일매일 고생이 많네. 내가 00이 볼 테니까 자긴 잠깐이라도 방에 들어가서 쉬어. 아님 아예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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