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에게 부부 관계란

워킹맘이 남편에게 얘기합니다-4

by 선율

‘00이 재우고 나와~’


부부관계를 하기로 약속한 날이면,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는 나에게 자기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얘기하지.

우리가 맞벌이를 하며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많이 싸웠지만(친정 언니한테 전화하면 또 싸웠냐?부터 물어볼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커가며 조금씩 우리 관계가 회복되고 좋아지는 이유는(물론 그만큼 아이가 커가며 돌보기가 수월해진 것도 있겠지만) 꾸준히 부부관계를 유지한 것이라고 생각해.


아이가 어렸을 때, 잠 못 자고, 불공평한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는 상태로는 부부관계를 갖는 게 즐겁지 않았어. 평상시에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건 해주지도 않으면서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자기가 심할 땐 본능만 따르려는 동물 같아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자기와 부부관계를 하는 게 짜릿하거나 흥분되는 마음이 생길 순 없잖아. 또 부부관계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각자의 잠자리로(나는 아이와 침대에서 자기는 침대 아래에서) 서둘러 돌아가 잠을 자게 되니 연애할 때처럼 서로의 품속에서 부부관계의 여운을 느끼는 여유로운 시간이 부족했지. 그러다 보니 나에게 있어 부부관계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처럼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거야.


회사일과 육아만 해도 지치고 피곤한데 10시가 다 되어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서 아이가 잠들 때쯤이 되면(이런 날은 유난히 아이는 늦게 잠드는 거 같아.) 이미 내 몸도 나른해져서 편안하고 따스한 이불속을 굳이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 그래도 거실에서 눈이 빠지게 날 기다리고 있을 자기를 생각하면 피곤해도 억지로라도 나가야지 마음을 먹었지. 물론 그냥 그대로 잠들어버린 날도 많았지만 말이야.


그래서 자기가 한 번씩 불평했던 기억이 나.


‘최소한 관계를 하기로 한 날 만큼은 좀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날 바라볼 순 없어? 맨날 이렇게 잠에서 깬 표정으로 전혀 하고 싶지 않다는 모습으로 날 대하는 건 너무하잖아!.’


그래, 미안. 그래도 그때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랬어. 그나마 그날 하루 종일 자기가 육아와 집안일을 많이 챙겨주면 고마운 마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바로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날따라 퇴근 후에도 힘들고, 이것저것 사소한 일로 자기한테 서운한 감정이 드는 날은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고. 단순히 그날의 체력적인 컨디션뿐만 아니라 그날 자기에 대한 감정까지 더해져 육체적인 피곤함으로 나타난 거야.


맞아. 그래도 막상 거실로 나오면 자기가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 놓으니 기분이 좋아지긴 해.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며, 아이가 같이 있어 제대로 못했던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조금 취기가 오른다 싶을 때, 서로 사랑을 몸으로 확인하고 기분 좋게 잠드는 건 나도 좋아. 적어도 덜 피곤하고, 자기가 어느 정도는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느낌이 드는 상태에서는 말이야.


내가 썩 내키지 않았던 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할 때마다 부부관계를 거의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물론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건 어쩔 수 없지만) 부부관계를 하기로 한 그 날 만큼은 하루 종일 자기가 한없이 자상해지기 때문이지. 특히 사랑을 나누기 전에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할 땐, 내가 불만을 말하고 하소연을 해도 웬만하면 다 들어주니까. 물론 그게 진심이라기보다 최종 목적을 위해, 분위기 망치지 않기 위해, 내 기분을 좋게 유지하기 위해 내 말을 들어주는 거라는 걸 나도 잘 알지만 그때가 아니면 평상시 이런 얘기를 할 기회가 거의 없으니 난 이 시간에라도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자기한테 했던 거야. 어느 날, 자기가 한번 버럭하고 화를 내기 전까지는 말이야.


‘자기는 내가 이 순간이 가장 약하다는 걸 알고 이때 꼭 나랑 뭔가를 협상하려고 하더라. 나 안 해!!!’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맞아, 그랬던 거 같아. 그즈음 읽었던 책 중에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이야기를 담은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라는 책이 있는데 우연히 이에 대한 내용이 있더라고. 육아와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 하는 한 사례의 주인공인 아내가 한 인터뷰 내용이야.


‘10대 때, 저는 섹스를 이용해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모욕하는 행동이고 품위를 짓밟는 행동이니까요. 하지만 남편이 집안일을 거부했을 때, 전 섹스를 이용했어요. 전 이렇게 말했죠. ’ 여보, 매일 이렇게 일에 시달리니까 난 너무 지쳐서 밤에 잠자리를 할 마음이 없어져,’ 하고 말이죠.’ 그녀는 낡은 전략으로 후퇴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녀의 현대적 사고는 그러한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다른 현대적 방법은 없었다.


이걸 읽고 아 나도 부부관계를 이용해서 자기에게 육아와 가사참여를 요구하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어. 책에서 말한 거처럼 다른 현대적 방법은 없다는 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자기가 화를 낸 이후로는 부부관계 전에 협상(?) 비슷한 그런 말은 안 하려고 해. 기분 좋은 이야기만 하려고 노력하지.


자기야. 나에게서 부부관계는 그 행위 자체를 원하고 좋아해서 한다기보다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날 배려해주는 자기가 좋아서야. 그런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나도 같이 기분 좋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하고 싶어지는 거지. 그런 날엔 내가 더 신이 나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진다니까.


이제는 40대가 넘어가면서 배도 나오고 주름이 늘어가고 흰머리도 생기면서 여자로서의 매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걸 스스로 느끼는 순간에도 여전히 자기가 날 원하고 부부관계를 지금보다 더 자주 하길 원한다는 사실은 날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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