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남편에게 얘기합니다-5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핸드폰 보여줘 봐. 뽀로로 보느라 정신없는 사이, 입에 밥을 떠먹여 주면 돼. 영상 보여주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야, 우리 애들 때는 우리랑 달라. 어차피 계속 영상과 함께 할 수밖에 없어.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밥은 잘 먹여야 할 거 아니야?’
우리 아이가 아마 10개월 즈음부터였어. 한창 잘 먹고 커야 되는 이때 아이에게 밥을 잘 먹이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친구에게 추천받아 아이에게 동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한 때가 말이야. 돌도 아직 지나기 전이었는데 지독히도 이유식을 잘 안 먹던 우리 아이는 그렇게 해서 처음 동영상을 접했지.
아이들용이라고 이름 붙여진 수많은 영상들은 다양한 컬러로 이루어진 화면과 각양각색의 목소리, 귀여운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말을 해. 굳이 영상이 아니어도 세상 모든 게 신기한 아이들인데 그런 화려하고 재미있는 화면을 보여주면 다른 그 어느 장난감보다도 그 속에 정신을 뺏길 수밖에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해 보여. 티브이를 꺼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려고 아이한테 갔다가 나조차도 잠깐씩 영상에 넋을 잃곤 하니까.
지인을 만나서 또는 가족모임에서 대화에 집중하고 싶은데 아이가 칭얼대며 방해할 때, 아이가 이유 없는 짜증을 부릴 때, 외식자리에서(가끔은 그냥 잠깐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도) 아이에게 핸드폰을 내밀지. 그럴 때마다 뭔가 찜찜하고, 찔리고, 그러면 안 될 거 같고, 죄책감이 느껴지고, 아이한테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니 그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자기변명과 하루에 노출 시간은 한 시간인데 그 정도는 다들 하니 괜찮을 거야라는 자기 위안을 삼으며 말이지.
자기야. 그래도 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중이야. 퇴근하고 와서도, 주말 내내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도 티브이와 동영상을 틀어주고 나도 좀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하루에도 여러 번 들지만 내가 같이 있을 때만큼은 최대한 동영상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해. 수많은 언론보도와 기사들, 책이나 육아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동영상 노출은 아이들 뇌 발달에 너무나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그런 기사를 굳이 듣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의 영상 노출이 아이에게 안 좋다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아직 한참 뇌가 발달 중인 아이가 과도한 컬러로 구성된 화면과 그런 화면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영상에 익숙해진다면 나중에 우리 아이는 그런 화려한 영상이 아닌 것에는 집중하거나 관심을 갖기 어려울 거라는 게 뻔히 예상이 되니까. 특히 글로만 쓰인 딱 봐도 재미없고 지루해 보이는 글밥 많은 책에 흥미를 갖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걱정이 돼. 그래서 지금 당장 내 몸이 피곤해도 아이와 놀아주거나 데리고 나가거나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하거나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애쓰는 이유야. 특히 우리 아인 외동이니까 더더욱 신경이 쓰여. 가능하면 아이가 티브이나 핸드폰을 찾지 않도록, 찾더라도 다른 것에 관심을 옮기도록 도와주는 게 내가 지금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자기야. 내가 핸드폰을 내밀 때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순간이라 생각하는데 비해, 자기가 똑같이 그럴 땐 참 서운하다. 이 무슨 내로남불 심보인지 모르겠어. 아마도 이런 내 의지와 마음을 자기가 몰라 준다는 생각에서 이런 감정이 비롯되나 봐. 난 이만큼 힘들게 노력하고 있는데 자기는 쉽게(적어도 나보다는 쉽게) 핸드폰을 건네고 티브이를 틀어주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야. 내가 그만큼 신경 쓰고 있으니 가끔 나의 부재로 아이가 자기랑 있을 때만큼은 좀 자유롭게 티브이를 보는 것에 대해서 괜찮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되네...
한참 동영상 노출에 신경이 쓰이고 예민했을 때였을꺼야. 그 당시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한밤중에 한 번씩 아이가 깨서 울곤 했지. 그날은 특히 아이가 컨디션이 좀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해. 갑자기 한밤중에 깬 애가 울기 시작하더니 소리를 지르며 우는 행동으로까지 바뀌었어. 그러더니 점점 통제가 안 되는 수준으로 발전해 나갔고. 먹을 걸 줘도 좋아하는 장난감을 눈앞에 보여줘도 소용없더라고. 안아주고 거실로 데리고 나갔지만 아무것도 아이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어.
내가 아이를 달래려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애를 안고 왔다 갔다 하는데 반해 자긴 크게 개의치 않고 침대에서조차 일어나지 않았지. 달래지지 않는 아이와 아무 신경 쓰지 않는 자기의 모습에 난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 버렸어. 방에 들어와 자기를 향해 소리를 질렀던 거야.
"우는 거 안 보여? 어떻게 좀 해봐!!!"
뭐라도 자기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어. 물론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면 아무 소용없이 자기 기분만 상하게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화를 참지 못하고 그렇게 말해버렸네. 그제야 일어난 자기는 어쩔 줄 몰라하는 내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아이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어. 만화 주인공의 큰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순간 멈칫하더니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고. 영상을 보면서도 나한테만 매달려 있으려고 하는 아이를 뒤로하고 자긴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다시 방으로 들어가더라고.
아.. 그때 난 그 허탈감을 잊을 수가 없어. 기운이 쭉 빠지고 허무했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해 준 자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 게 아니라 더 화가 나고 미운 마음 투성이었고. 난 이렇게 힘들게 아이를 달래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는데 자기는 왜 그런 힘을 빼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으니까. 그 당시 아이가 영상에 너무 의존하는 거 같아서 영상을 아이에게 안 보여 주려고 무척 신경 쓰고 노력하고 있던 때였는데 이런 내 노력을 자기가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내가 지금 힘들게 뭐 하고 있었던 거지...라는 생각, 아이를 달래기 위한 아무 노력도 안 하고 동영상부터 들이 미는 게 진짜 맞는 건가 싶기도 했고, 또 아… 동영상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앞으로 더더욱 동영상 노출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 사건이었어.
자기야, 난 우리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거는 기본이고 그다음 단계로 우리 아이가 나중에 독립해서 살아갈 때,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가 부모로서 무엇을 지금 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난 늘 고민해. 책에 흥미를 붙이고 여러 가지 다양한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 그러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동영상 노출을 가능한 피하게 도와주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불편해하고 걱정하는 이런 내 마음을 자기가 알아주고 대화나 행동으로 표현을 해준다면 자기한테 너무 고마울 거 같아.
아이가 커갈수록 TV나 핸드폰 동영상에 아이를 노출시키는 시간이 늘어나고 자연스러워지고 있어. 지금은 좀 컸다고 ‘엄마, 나 티브이 봐도 돼? 나 유튜브 봐도 돼?’라고 당당히 물어보는 아이에게 여전히 난 하루 동영상 노출 시간을 정해놓고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 중이야. 이제는 게임까지 알게 되어서 게임하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를 보며 어쩔 수 없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내가 해볼 수 있는 만큼은 해볼 거야. 이때 자기가 옆에서 조금이라도 함께 해준다면 나에게 큰 힘이 될 거 같아. 우리의 소중한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야, 함께 해 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