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남편에게 얘기합니다-6
‘우와~ 처음 한 요리인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는걸? 진짜 맛있다~’
자기가 만든 골뱅이 무침을 한 입 먹어본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야. 지금은 싸운 후 냉전 상태이고 아직 제대로 된 사과를 안 받아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난 감탄사만 연발하며 먹기에 바빴지.
36, 37살 늦은 나이에 결혼한 우리, 자기는 결혼 전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며 라면 한번 제대로 끓여본 적 없이 살았고, 나 또한 1년 반 정도 혼자 산 경험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한 집의 주방이 협소하다는 핑계로 모든 밑반찬은 엄마한테 공수해오며 요리라고 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어.
결혼하고, 육아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살 때는 오히려 괜찮았지. 직장을 다닌다는 핑계로, 여기는 어머니 집이고 주방의 주인도 어머니시니 난 주중에는 식사만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주말 또한 외출을 하거나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해주시니 자기와 나 모두 요리실력이 없거나 요리에 취미가 없어도 별 문제가 없었던 거야.
문제는 우리가 어머니 집으로부터 독립을 시작하면서부터였어. 그렇게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드디어 소원을 이루어 우리 3 식구만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제 모든 갈등이 다 해결될 줄만 알았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지. 오히려 어머니와 함께 살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던 집안일을 해야 하는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으니까. 그동안 우리가 회사 간 사이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청소, 빨래, 식사 담당을 이제는 우리가 다 분담해서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거지.
자기는 무지 깔끔한 편이야. 나도 인정해. 알아서 청소기도 돌리고 바닥 걸레질이며, 빨래도 알아서 너무나 잘하니까. 철 따라 자기 옷을 서랍 안에 차곡차곡 정리도 잘해놓지. 서랍 안에 늘 옷이 널 부러져 있고, 철에 상관없이 무조건 걸어놓기만 하는 나와는 눈에 띌 만큼 비교될 정도라니까. 그렇게 청소에 있어서는 자기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보이니 난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식사를 담당하게 된 거야.
5일 내내 집에서 저녁을 먹는 자기와 아이 반찬을 챙기는 일이 나에게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야. 한두 번은 반찬을 배달시키기도 하고, 근처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다 먹기도 하지만 난 늘 ‘저녁은 뭘 준비해야 하지? 주말은 뭘 먹어야 하지?’에 대한 고민을 해. 메뉴를 정하는 건 내 담당이라는 책임감, 그리고 특히 주말만큼은 사다 먹은 음식과 간편식으로 주로 때운 평일과는 달리 내가 뭐라도 음식을 해야 한다는 죄책감으로 늘 식사 준비는 나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어.
전에 몇 번 자기한테 ‘주말 한 끼는 자기가 책임지고 준비해 주었으면 좋겠어. 빵을 먹든지 사다 먹든지 상관없어. 일주일에 한 끼라도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 줘.’
라고 부탁했었지? 그만큼 요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식사 준비가 늘 부담스럽기 때문에 부탁했던 거야. 물론 자기는 이를 거절했어. 청소와 집안 정리를 자기가 맡고 있으니 식사 준비에 한해서는 전적으로 나보고 하라는 뜻이었겠지. 하지만 청소는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데 반해 식사 준비는 그 특성상 내가 준비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야. 기분이 안 좋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예외 없이 끼니때가 되면 무조건 식사를 챙겨야(특히 아이 식사) 하니까. 한 번씩 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이런 점에 있어서 불공평한 가사분담에 대한 불만이 생기곤 해.
그날도 어떤 문제로 자기와 다투고 말을 안 하는 중이었어. 어떤 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 그만큼 사소하고 별일 아닌 문제였다는 뜻이겠지. 보통은 자기랑 싸우면 한참 말을 안 하다가도 내가 저녁을 차리고 먹으라고 말을 건네면 자기는 못 이기는 척 나와 같이 밥을 먹어. 그러다 서로 화가 풀리곤 하지. 같이 자존심을 내세워 싸워봤자 어린아이를 챙겨야 하는 나만 손해라는 걸 깨달은 후부터는 정말 큰 화가 나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자기한테 손을 내밀어. 그럼 자긴 맛있게 식사를 하며 먼저 손 내밀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지. 여러 번의 싸움 끝에 터득한 해법이야.
하지만 그날은 달랐어. 너무 화가 나 있던 나로서는 자기 밥을 챙겨줄 마음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 밥상을 차려 먹고 싶지도 않았어. 아이만 간단히 저녁을 먹이고 치우는데 갑자기 자기가 나갔다 오더니 소주 한 병과 캔 골뱅이를 사 와서 주방으로 들어오더라. 그러더니 핸드폰을 찾아보며 양파를 썰고 오이를 썰더니 나에게 다진 마늘은 어디 있는지 고추장, 식초는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았지. 처음 보는 자기의 이런 모습에 어리둥절한 나는 일단 양념들을 찾아준 후, 다시 냉정을 되찾고 냉랭한 소리로 물어봤어.
‘지금 뭐 하는 거야?’
‘골뱅이 무침 좀 만들어 보려고.’
‘생전 주방에 한번 안 들어오는 사람이 갑자기 왜? 그것도 하필 어려운 골뱅이 무침을?’
‘술 한잔하고 싶은데 안주는 없고 자기 지금 상태로는 만들어 줄 거 같진 않으니 내가 한번 만들어 보려고. 그리고 자기도 매운 거 좋아 하자나.’
자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했지만 난 그런 모습에 어이가 없었어. 평상시 한 번씩 뭔가를 만들어 먹던 사람이었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자긴 결혼하고, 라면 외에는 정말 단 한 번도 뭔가를 요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이런 상황이 더욱 황당하고 그런 자기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그래도 비록 서툴지만, 주방에서 양념을 찾고 야채를 썰고 하는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았어. 자기 성격상 대놓고 먼저 사과하기는 쑥스러우니 이런 식으로 내 마음을 풀어줄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게 아닌가라는 나한테 유리한 해석을 해보기도 했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자기가 굳이 내가 좋아하는 매운 메뉴를 선택한 것만 봐도 내 해석이 아주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해.
‘다 됐어. 한번 먹어볼래?’
그 말에 난 못 이기는 척 한입 먹어보았어.
‘우와~ 처음 한 요리인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는걸? 진짜 맛있다~.’
결국 골뱅이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식탁에 앉아서 같이 먹기 시작했지. 비록 자기의 직접적인 사과는 못 들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같이 식탁에 앉아 마주 보고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화는 풀리고 분위기도 좋아졌어. 내가 마지막 골뱅이 접시의 매콤 새콤한 국물까지 싹싹 다 비우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는
‘이제 술 한잔 할 때 골뱅이 무침 안주는 내가 해 줄게.’
라며 인심 쓰는 얘기 하는데 그 모습이 유치해 보이면서도 내 마음을 알아준 거 같아 고맙기도 했어.
자기야, 이렇게 가끔 한 번씩 자기가 날 위해 요리를 해주면 난 정말 날아갈 듯 행복할 거 같아~다음에도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