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작은 그랬다. 일반 회사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일을 때려치운 후, 나는 약 1년이라는 시간을 백수로 지냈다. 모아둔 돈을 까먹으면서 부모님 눈치를 봐가며 밤에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PC방으로, 낮에는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잠이 들었다. 최소한의 양심으로 가끔씩 훑어보는 채용공고 사이트에는 내가 지원하기엔 너무 높거나 나라도 하고 싶지 않은 직업들만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다.
자격 요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학력에 대한 제한도 높지 않았고, e스포츠 분야에 관심이 많거나 야간이나 주말에도 업무가 가능한 사람을 원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 제출용으로 기사를 하나 써오라고 하더라.
무슨 기사를 써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네이버 e스포츠 섹션에 들어가 아무 기사 하나를 골라 비슷하게 써서 냈다. 나중에 기자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건데 그걸 우라까이(=베끼기)라고 하더라.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완전히 베끼지는 않았다. 문장의 구조와 기사의 주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참고해 최대한 비슷하게 써서 제출했다.
나중에 기자가 되고 나서 알았던 사실이지만, 당시 제출했던 포트폴리오용 기사는 내 채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채용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내가 HSK 5급을 가진 중국어 능력자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자를 지원했던 2014년도에 한국 e스포츠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전 해에 한국에서 '인섹' 최인석과 '제로' 윤경섭을 용병으로 영입한 로얄클럽(지금의 RNG)은 그해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다. 한국인 용병의 가능성을 확인한 중국 게임단들은 이적 시즌을 앞두고 너도 나도 한국으로 몰려와 선수들과 접촉했다. 당시 한국 선수들의 연봉은 많아봐야 2, 3천만 원 안팎이었다. 그런 선수들에게 5배, 많게는 10배가 넘는 차이나 머니가 제시됐다. 내가 선수였더라도 그 돈을 받았을 것 같다. e스포츠 선수의 짧은 생명과 은퇴 이후에 길게 펼쳐질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말이다.
어쨌든 회사는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급하게 필요했다. 그들이 중국으로 떠나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을 취재할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시기와 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8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e스포츠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주로 'e스포츠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e스포츠 기자가 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앞서 말한 조건들, 학력이라던지,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한다던지,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좋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줄 안다면 좋겠지만 몰라도 된다. e스포츠 기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허들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단, e스포츠 기자는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되고 나서가 문제다. 가장 현실적인 부분은 낮은 급여이다. 내가 8년 전에 회사에 입사했을 때, 부모님은 내 월급이 얼마인지 들으시곤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라고 말했다. 내 기억에 그 당시 일반 신입 회사원이 받는 평균 월급은 2,400만 원 정도였고, e스포츠 기자가 받는 급여는 그에 훠얼씬 미치지 못했다. 나 같은 사람이야 당장의 돈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래'라는 무지성 마인드로 일을 시작했지만, 현실적인 부분이 중요한 사람에게 e스포츠 기자는 선택해서는 안 되는 직종이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신입 기자의 연봉이 많이 올라갔지만, 평균적으로 낮은 편인건 여전하다.
두 번째는 일반 회사원들과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이다. e스포츠 기자의 특성상 경기가 있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거나 국제대회 같은 경우 밤이나 새벽시간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한 만큼 쉴 수 있는 시간만 보장된다면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들이 쉬는 주말에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인간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친구나 연인을 만나려고 해도 평일 시간을 이용해서 만나야 하고, 만나는 상대가 일반적인 사이클(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을 가진 사람이라면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렵다. 부모님도 이해해주기 힘든 부분인데 남이라면 오죽하겠나..
세 번째로 기자가 되기는 쉽지만 좋은 기자가 되기는 어려운 편이다.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 글을 잘 쓰거나, 취재를 잘하거나.
글을 쓰는 방법은 회사 선배들이 가르쳐주기도 한다. 하지만 글쓰기 실력은 딱 개인이 노력한 만큼 좋아진다. 그런데 밤낮이 바뀌어가며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틈틈이 글쓰기 공부도 하고 관련 책을 읽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글을 실제로 쓰는 일은 매일 하기 때문에 노력을 했다면 실력이 느는 건 굉장히 빠른 편이다.
글쓰기가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입문용으로 '고종석의 문장'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기자에게 치명적인 비문을 잡는데 도움이 되고, 중복되는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는 걸 글을 쓰는 사람이 의식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글쓰기 책은 어떤 책이든 읽으면 도움이 되더라.
개인적으로 더 어렵게 느낀 건 취재를 잘하는 거였다. 취재는 발품을 팔아 열심히 돌아다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쌓아야만 조금씩 는다. 취재를 잘하려면 성격이 집요해서 한 가지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통해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천성이 겜돌이라서 돌아다니는 걸 기피하는 편이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평소에 지인들과도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이다(하하). 8년 동안 일한 만큼 짬이 늘어서 여기저기 듣는 게 생기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기사 내용에 따라 힘들게 쌓아놓은 인맥이 끊기는 일도 있다. 때로는 예민한 문제를 다뤄야 하고, 그 문제가 관계자와 엮여 있을 때는 곤란한 일을 자주 겪는다. 그렇다고 기사가 안 나갈 수도 없으니 '내 일이다' 생각하고 배 째라는 듯 써 버린다. 뭐, 상대도 대부분 이해해준다. 나는 내 일을 한 거일 뿐이니까.
그래도 e스포츠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한 가지 희망적인 말을 한다면, 좋은 e스포츠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 최고의 e스포츠 기자가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 왜냐하면, 국내에 e스포츠 기자 수가 많지 않고 대부분은 앞에 닥친 일을 하느라 바쁘다. 나도 그렇고.
여태까지 기자라는 직업의 안 좋은 부분을 전했으니 이 번에는 좋은 점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내가 8년의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됐던 건,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이나 기사를 읽고 좋은 반응을 보여줄 때이다. 좋은 소재를 가지고 열심히 고민을 해서 쓰고, 문장 배열이나 단어들을 살피면서 퇴고를 거듭하고, 데스크의 판단을 거쳐 기사가 나갔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며칠을 그 뽕에 취해서 살게 된다. 분 단위로 기사에 들어가 댓글을 확인하고, 각 종 사이트에 들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글을 써서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그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다.
또, 기억은 사라지지만 글은 남아서 나의 경력이 된다. 관계자들은 대부분 거의 모든 e스포츠 기사를 읽는다. 자연스럽게 대중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기자의 이름도 기억을 하게 된다. 일을 하다가 마주친 사람이 '아, 그 기자님이시구나!'라며 아는 척을 해줄 때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예전에 내가 생각해도 잘못된 기사를 쓰고, 또 그 기사가 데스크를 거쳐 나간 적이 있었다. (기사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변명거리는 정말 많지만, 내가 작성했으니 내 책임이다.) 반응은 당연히 정말 좋지 않았다. 당일에 현장에 취재를 갔는데 내 뒤통수에 대고 누군가가 "아, 저 사람이 그 기자야?"라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는 기억이다.
그래도 좋은 기사를 썼을 때 느끼는 보람은 나를 계속 이 일을 하게 만든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칭찬을 받은 글 몇 가지를 공유하겠다. 시간이 있을 때 몇 개는 한 번 읽어봐 주시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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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좋은 점은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일이라는 핑계로 매일 볼 수 있다는 거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어린 시절부터 e스포츠를 봤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초등학교 때 지금은 사라진 경인방송이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방송했었다. 나는 우연히 그 방송을 보고 그다음부터 게임방송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투니버스에서도 게임 방송을 한 적이 있었고, 곰TV를 통해서도 게임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온게임넷이야 두 말할 것도 없이 봤다.
더 멀리 가보면 엄마의 말로는 내가 세 살 때부터 혼자 오락실을 다녔다고 했다. 정말이지 어렸을 때는 오락실 간다고 혼났던 기억밖에 없다. 그만큼 게임을 좋아했기에 게임을 직접 하는 것만큼 보는 것도 좋아했다. 원래 오락실 가면 주변에 어린 꼬맹이들이 옆에서 보면서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게 바로 나다. 아, 요즘은 피시방이려나?
어쨌든 게임을 좋아하는 나는 지금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매일 게임을 보고 있다. 이것도 일이 되다 보니 때로는 경기가 일찍 끝나기를 바랄 때도 있고, 관심이 없는 대회를 일 때문에 보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건 꽤나 만족스럽다. 내가 언제까지 게임을 계속 좋아할 수 있을지, 그리고 밤낮과 주말이 바뀌는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 일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서 앞으로 몇 년은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모든 걸 종합적으로 따져 봤을 때 'e스포츠 기자라는 직업을 추천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글쎄...
게임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게임을 좋아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e스포츠 기자보다는 게임사에 취직을 한다던지, 비슷한 계열의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옳은 선택이다. 앞에 서술한 단점들을 다 읽고도 그래도 기자가 되고 싶다면, 내가 현실적인 문제를 이겨낼 방법을 하나 알려주겠다.
단, 진짜 e스포츠 기자가 되어서 나를 만나 물어보면 그때 알려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