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참 흔한 감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터넷을 조금만 해도 혐오가 보인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혐오하는 글은 정말 흔하다. 그뿐일까? 정치에도, 종교에도, 국가에도, 노인에도, 아동에도 혐오가 쉽게 붙는다. 오죽하면 '혐오의 시대'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흔히 혐오의 시대를 이겨낼 방법은 공감이라고 한다. 그래서 혐오와 공감이 서로 반대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공감과 혐오는 밉다와 싫다처럼 뿌리가 같은 감정이라고 하더라.
지난해 출간된 Hate,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라는 책에서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혐오가 어떻게 생기는지 설명해준다. 공감의 정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감정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느껴보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 누구냐는 거다.
일단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공감한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거나, 비슷한 경험을 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끼리는 쉽게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공감이 점점 강해지면 어떻게 될까? 비슷한 경험을 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과는 충분히 공감할 여지가 커진다. 반면에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는 공감을 경험하기가 점차 어렵게 된다. 결국에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 명확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공감되지 않으니, 그 사람을 혐오하거나 차별하거나 무관심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공감이 지나치니 혐오가 되는 원리이다.
혐오는 차별과 밀접하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은 나와 다른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혐오하게 된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이 꼭 혐오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를 혐오할 때는 항상 나와 다른 부분이 있다. 성별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국적이 다르거나, 정말 작게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가 혐오의 원인이 된다.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e스포츠에도 혐오가 있다. 그리고 혐오가 퍼지기 쉬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과 밀접한 e스포츠는 자연스레 익명성이 보장된다. 그리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은 부정적인 감정이 쉽게 표현된다. 경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다. 경쟁은 자연스럽게 나와 상대를 구분한다. 내가 응원하는 선수, 내가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바라면, 자연스레 상대의 패배를 원한다. 그 과정에서 공감이 지나치게 되면, 상대 선수나 팀을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혐오는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책에서 전한 대안은, 지나친 공감을 피하고 공감의 대상을 넓히는 거다. 내가 응원하는 선수, 혹은 팀을 향한 응원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대 선수 혹은 팀을 향한 공감이 부족한 지 돌아봐야 한다. 상대 선수나 팀,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선수를 응원한다는 걸 공감한다면, 혐오는 보다 줄어들거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혐오는 늘 있었다. 어쩌면, 혐오는 인간이 가진 본성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혐오로 인한 피해자가 언제나 생겨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쉽게 만연하고 전파되는 혐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혐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