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3초쯤 머뭇 거린다. 이 사람이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알까? 모르면 어떻게 설명하지? 그냥 자영업한다고 할까? 아, 간단히 ‘회사원’이라 말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 결국 이런 고민 끝에 플로리스트예요 말하면 답변은 언제나 두 부류로 나뉜다. 여전히 이 직업이 무언지 잘 모르는 사람 그리고 아~ 꽃집하시는구나 제가 꽃을 좋아해서 자주 사는데 앞으로 종종 들리도록 할게요 라고 해주는 사람. 어쩜 이리도 레퍼토리가 같은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의 대화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꽃을 판매하지 않아요. 웨딩 플라워라고, 결혼식과 관련된 꽃장식만 하거든요. 이렇게 한 단계의 설명이 더 필요하다. 이쯤에서 그냥 아 네, 다음에 꽃 필요할 때 말씀하세요 라고 친절을 가장하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버리면 정말 어느날 갑자기 꽃을 사겠다고 불쑥 찾아오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긴, 누군가의 직업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주길 바라는건 욕심일지 몰라. 하지만 그럼에도 매번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 설명해야 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뿐일까. ‘플로리스트’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름 모를 들꽃에 대해 아는지 물어 보거나, 죽어가는 식물을 어떻게 살릴지 물어 오거나, 교회나 절에 꽃꽂이를 해야 하는데 어떤 디자인이 좋을지 물어 보기도 한다. 적잖이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안타깝게도 이 질문들에 대해서는 무엇하나 속 시원히 말해 줄 수가 없다. 이유는, 나도 모르니까.
뭉뚱그려 ‘플로리스트’라고 하지만 나름 자신만의 분야들이 있다. 의사도 그냥 의사가 아니라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등등이 있고 선생님도 수학, 화학, 국어, 영어등 각자가 맡고 있는 교과가 있는것 처럼 말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뼈에 대해 정형외과 의사만큼 알지 못하고 국어 선생님은 영어나 수학을 잘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처럼 보통의 플로리스트들은 절화(cut flower) 말고는 잘 알지 못한다.
꽃은 크게 절화와 분화(pot flower)로 나뉜다. 말뜻대로 잘려진 꽃과 심겨진 꽃이다. 절화는 이미 농장에서 부터 잘려진 채로 출하가 된다. 플로리스트는 꽃시장을 통해 이를 들여와 다듬고 물에 담그어 작품이나 상품으로 만들 구상을 한다. 그러니 꽃이 잘라지기 이전의 상태, 그러니까 언제 파종을 하고 얼마 만에 뿌리를 내리고 또 어떤 양분이 필요한지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절화를 다루는 플로리스트도 다시 어느 분야에 있는가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다. 친숙한 이미지처럼 꽃집에서 상품을 만들어 팔수도 있고, 학교든 학원이든 아니면 자신 만의 공간에서든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할 수도 있다. 꽃을 이용해 매장이나 공간을 꾸미는 일을 하는 이들도 있고 나처럼 웨딩 플라워를 주로 하는 이들도 있다.
십년 전, 그러니까 플로리스트가 된지 십년 만에(이래뵈도 20년차 플로리스트) 드디어 나만의 조그만 레슨실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미 이전부터 판매를 주로 하는 꽃집에서는 충분히 일을 했었고, 판매하는 일 보다는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을 십년쯤 하니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이 한주머니 가득이라 이를 풀어내도 욕은 먹지 않겠다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렇다고 애초 부터 판매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알음알음으로 주문을 주거나 우리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주문을 해오는 경우들에 대해선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통해 초기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어 주었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수강생이 점점 늘어날 수록 이를 차츰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수업의 질이나 전문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일단 수업이 시작되면 수강생의 인원이 많든 적든 모든 시선은 나에게 쏠린다. 그 초롱한 눈망울들 앞에서 혹여나 실수라도 할까 한 시도 긴장되지 않은 적이 없다. 누군가의 앞에서서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 긴장은 몸과 마음이 떨리는 것과는 다르다. 부끄러움과 같은 종류의 떨림은 몇 번, 몇 십번의 강의 경험이면 대부분 사라진다. 그런데 이 긴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수강생들은 나의 말에 공감하여 잘 이해하고 있는지, 서로 교감은 잘 되는지, 나의 말은 조리 있고 막힘이 없는지 등의 생각들이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꽉꽉이 채워진다. 그런데 이 순간에 주문이나 문의가 들어와 버리면 나도 수강생도 그 흐름을 놓치게 되고 이는 자칫 좋지 못한 수업으로 기억에 남아 버리게 된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자연스레 주문에 관련된 글은 홈페이지와 SNS에서 슬그머니 내리게 되고 주문 전화가 오더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안내를 하게 되었다.
이후엔 뜻하지 않게(!) 오직 레슨만을 하는 곳이라는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고 나 역시 플로리스트라는 이름과 더불어 선생님 혹은 강사님이라는 부수적인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듯 훈훈하게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시간이란건 참 더딘 듯 빠르다. 가르치는 이로써 5년여의 시간은 무척이나 빨리 갔다. 지난 십년간 배운 것을 모두 풀어내는데는, 아니 비워내는데는 5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큰 자괴감이 들 때가 언제냐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다. 그때 즈음이 그랬다. 수업의 스킬이랄까, 잔재주는 늘어서 더 이상 떨리지도 긴장이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떨리지 않음’을 다른 말로 한다면 그것은 ‘매너리즘’이 될 것이다. 내가 떨지 않듯이 수강생들도 더 이상 감흥하지 않는다. 하, 정말이지 이건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당시의 작은 변화가 있었다. 그건 바로 웨딩 꽃장식에 대한 문의가 간간히(저엉말 간간히) 들어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나의 SNS에는 예전의 호텔에서 일했을 때 했던 웨딩 플라워에 대한 사진들이 몇 개 올라가 있었는데 이를 보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당시엔 2010년 대의 중반이라 결혼은 당연히 예식장에서 하는 것이었고 장식은 대부분 조화 일색이었다. 하지만 드물게 교회나 성당 혹은 레스토랑 등에서 하는 소규모 예식에 대한 생화장식 문의들도 이어졌다. 그 중에 정식으로 계약되어 진행된 웨딩들이 일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만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그리 했을까도 싶다. 호텔이든 웨딩홀이든 꽃장식 자체에 대한 경험은 나로서는 물론 많았다. 하지만 이런 장소를 벗어나 웨딩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었다. 교회나 성당, 레스토랑 등 결혼을 할 수 없는 곳을 할 수 있게 바꾸는 것이니 꽃장식 이외에 신경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장소 관계자들과의 협의도 있어야 하고 사진작가, 웨딩 드레스, 메이크업 등 타 업체 분들과의 조율도 필요했다. 단순히 꽃만 잘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웨딩 전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일이었고 신부의 믿음을 전적으로 얻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한 번, 한 번의 결혼식을 거치며 나 역시 배워 나가고 경험들이 쌓여갔고 해 마다 웨딩 작업을 하는 횟수 또한 갑절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부터는 야외웨딩이나 스몰웨딩에 대한 수요가 대거 늘어나면서 도저히 수업을 할 여력이 없게 되었다. 웨딩 플라워는 단순히 주말 하루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화수목금, 한 주를 온전히 쏟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을 써야하는 신부님의 수도 늘어나면서 수업까지 병행한다는 건 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자연스레 우리의 홈페이지와 SNS에서 수업 공지에 대한 내용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듯 다시, 뜻하지 않게(!) 오직 웨딩 플라워만을 하는 곳이라는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고 선생님, 강사님이랑 호칭 대신 웨딩 플라워 업체 대표라는 새이름을 갖게 되었다.
지난 십년간 나의 사업체는 사업자 번호도, 상호도 그대로지만 주요 업무라 할 것은 크게 두번이 바뀌었다. 이 변화에는 사실 나의 의지 보다는 사회적인 시류랄까, 외부의 요인이 더 컸다. 그때 적절히 변화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폐업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5년에 한번씩 이런 큰 변화들을 겪고 있으니 바로 지금의 시기는 다시 변화해야 할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싫지 않다. 이런 변화의 시간들. 외려 지난 긴 시간동안 같은 모습으로만 살았다면 얼마나 무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여러 많은 만드는 일 중에 특히나 꽃을 통해 만드는 것이 좋았던 건 그 유지의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꽃을 통해서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평균 일주일, 길어도 이주일이면 기한을 다한다. 그러니 매 주, 매 번 새로운 꽃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이 점이 가장 큰 꽃의 매력이었다. 원체 싫증을 자주 느끼는 성격인가 보다. 그러니 5년마다 하는 일이 바뀐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물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배우고 익힘의 시간은 결코 녹록지 않다. 변화의 성공으로 앞으로의 5년이 안정될 수 있다는 말은 반면, 변화의 실패로 인해 5년 쯤 고생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쩌겠어. 이것이 직업인의 비애겠지.
우선 한동안은 플로리스트이면서 웨딩플로리스트라는 더 좁은 의미의 카테고리를 가진 지금, 이 불편한 직업 소개의 시간을 누려야 겠다.
저는 플로리스트인데 그 중에서도 웨딩플로리스트이고요. 이름처럼 웨딩 플라워를 주로해요. 그러니 꽃다발 같은 상품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지요. 그리고 식물이나 나무, 들꽃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해요. 저의 직업소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