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는 종잇장 차이 - 전세금 돌려받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은 늘 어렵다. 내가 집을 빌리면서 담보로 맡겨놓은 돈인데 그걸 돌려받을 때는 을의 입장이 되어 주인의 처분만을 바라야 하는지, 만기일이 다가오면 누구나 마음을 졸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보증금을 못 돌려받으면, 후속 결제를 할 수가 없다. 새 집 매수에 대한 결제대금을 제 때 납입할 수가 없고, 그러면 나에게 집을 판 사람이 같은 사유로 결제를 못하는 연쇄부도가 발생하여, 그 과정에서 채무관계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지체상금은 물론이고 계약금을 날리는 일도 가능하다. 내가 이번에 집을 옮기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피같은 교훈을 얻었으니 이를 기록하고자 한다.
전세 만료일로부터 4달 전이었다. 집주인으로부터 임차보증금을 5% 올려달라는 요청이 왔고,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한 뒤 집 매도와 매수에 대한 리서치를 했다. 사실 내 원래 집이 안 팔리면 그저 나는 있던 전세만 날리고 새 전세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지라, 내 자가 매도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만기 3달 전, 부동산에서 재차 연락이 왔다. 임대차보호법에 의하면 계약 갱신을 하지 않을 의사는 만기 2달 전까지 표시하면 되었다. 나는 3달 전에 부동산에게 “이사 계획이 있으니 집을 내놓아달라”고 말을 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였는데, 집주인은 이것에서 가장 크게 화가 났다고 했고, 왜 본인이 아닌 부동산에게 얘기를 했는지 그것이 너무도 분했다고 했다.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부동산은 우리의 대리인인데 대리인에게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본인에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집주인의 마음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계약갱신을 안하기로 했다. 물론, 집주인으로부터 확인 문자가 왔고 여기에 회신함으로써 명확한 증거가 남았다.
그런데, 늘 그렇듯, 집주인이 전세값을 계속 높게 불렀다. 그래서 전세 세입자는 오지 않았다. 더구나 여기는 조망이 좋지도 않고 인테리어도 매력적이지 않아 부동산 수십군데에 다니면서 얘기를 해보았을 때 집주인이 너무 높게 내놨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전세를 들어간 지 2년이 되지 않았는데 원래 전세 들어간 가격보다 1억을 더 올렸다.
전세집을 내놓은 지 일주일이 되는 시점에 강남 집 가계약을 체결했고, 그리고 나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사진도 찍어서 집주인께 보내드리고, 시간날 때 동네 부동산에 발품을 팔며 네이버 부동산에서 수집한 동네 부동산 20여 곳에 전세를 내놓았다. 시간이 더 지나고, 만기 2달 반이 되었을 때에도 보러 오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나는 연락을 드려서 전세 호가를 낮춰주실 수 없냐고 물었으나, 집주인은 다른 집 대비 저렴하게 내놓은 거라고 완강하게 호가를 유지했다. 계약 만기가 다가올 때 쯤 주인에게 들은 의도는 이러했다. 호가를 낮춰서 내놓으면 값어치가 낮아보이기 때문이라는 부동산들의 조언을 들은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주변에 유사한 물건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물건의 가치를 평가한다. 유사한 물건의 가격 대 효용을 따질 때 이것이 비싸다고 판정이 되기 때문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텐데 집주인은 심리적인 요소에만 경도되어 있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집주인께 연락을 드려서 혹시 집이 나가지 않으면 주담대라도 받아서 달라고 하자, 기다려 보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도 받아서 주셔야 한다고 했으나,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일단 후임자가 와야 돌려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장모님은 전세가 안나가기 때문에 매수 계약을 취소하라고 하셨다. 강남 부동산 사장님은, 집주인에게 문자로 보낼 문구를 적어주시면서 이걸 보내어 증거로 남겨두라 하셨다. 집을 매수했으니 만기일에 전세보증금을 차질없이 반환해 달라는 내용이다. 나는 임대인 부부 두 분에게 모두 보내드렸는데, 나중에 들으니 이 부분에서 집주인이 완전 꼭지가 돌았다고 했다. 무슨 내용증명 보내듯이 문자로 그렇게 부부에게 모두 고지할 수 있냐며 너무 화가 났었다고 했다. 어쩐지 이 문자에 답을 듣지 못했다.
만기 두 달 반 전, 부동산 사장님들은 남은 15일 동안에도 거래가 없으면 이제 전세 손님이 오기는 힘들거라고 했다. 만기 두 달 전, 내가 전화를 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호가를 낮춰달라 했다. 주인은 본인이 아는 부동산 사장님들에게 통화를 돌려서 판단하겠다 했다. 문자가 왔다. 6명의 의견을 들어 본 결과, 2천을 더 깎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그러니 나보고 직접 연락을 돌려서 가격을 업데이트 하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장모님은 기가 차다고 하셨다.
그리고, 강남 부동산 사장님께 이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이사갈 집의 계약금을 10% 먼저 돌려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다. 문자를 집주인께 보내자, '새로 들어온 세입자 계약금을 받아야 돌려줄 수 있고, 매매도 고려하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었고, 만기 한 달 전까지 세입자를 못 구하면 은행에서 전세금 반환대출을 받아줄 것을 확답 주시겠냐고 물었는데, 회신이 없었다. 어디 유튜브에서 본 대로, 이 집에 살면서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았는데 나가는 날까지 좋은 기억으로 가길 바란다고 문자를 덧붙였다. 역시 회신이 없었다.
만기 한 달 반 전, 극적으로 전세로 들어가 살던 집의 매매 가계약이 체결되었다. 우리가 이런 불확실성 하에서 대출 자서를 하던 날이다. 부동산에서는 나에게 계약금 10%를 돌려줄 것을 집주인에게 요청했고 집주인은 이에 응했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답을 듣고 중도금 결제를 위한 일시 신용대출 1억을 받지 않는 것으로 주담대 대출 심사를 넣었다. 주담대가 나오면 상환하는 조건부였을 것이나, 이를 받지 않고, 그저 아내만 신대 1억 받는 것으로 했다. 이 부분이 좀 복잡했는데, 내가 신용대출을 받게 되면 심사를 넣을 수가 없었다. 은행의 설명은, 주담대 신청하고 나서 심사를 태웠다가 신용대출 되어 내 대출 잔액이 변동되면 다시 처음부터 심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계약금의 일부를 돌려주면 나는 신용대출을 안 받아도 되는 자금사정이 되므로 지금부터 은행 전산에 대출 신청을 태울 수 있었다. 대출정보가 입력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며칠 후, 전셋집의 매매 본 계약 날, 계약금을 받았을 주인으로부터 그 날 밤이 늦도록 대금 입금이 안되었다. 나는 부동산에게 연락을 했는데, 부동산의 말은 이러했다. "아까 집주인 분이 매매 계약금을 받자마자, 임차인인 나에게 보증금의 10% 를 송금할 것을 요청했는데, 집주인은 '알아서 할테니 임차인 계좌를 달라'고 하고는 집에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입금은 되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보니, '나도 집을 팔아서 새 집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못 돌려준다'고 했다. 부동산의 말만 믿은 나의 잘못이었다. 부동산은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고 있었다가 주담대 신청의 요건을 번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신용대출이 나올 때 까지 심사 접수는 취소되고, 신용대출을 받는 조건으로 주담대 심사를 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대출받을 사람의 조건이 조금 더 까다로워 진 것이었다. 원래 이런 조건으로는 대출이 안나온다는 말 까지 들었던 터였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 신용대출을 받을 수도 있으니 그런 여지는 은행에 남겨두고, '절대 여기서 더 바꾸면 안된다'는 주의를 들은 다음에, 나는 처가의 도움을 요청했다. 장인어른께서 예금담보 대출을 해주셨고, 차용증을 내용증명으로 만들어 송부한 뒤에, 주담대를 받은 후, 법인세법에 규정된 4.6% 인정이자 이상을 원금과 함께 상환했다.
여기서 내가 다시 느낀 점이 있다. 집주인은 말을 바꾼 적이 있었다. 처음 전세계약을 하기 전에는 해당 집에 담보가 선순위로 잡힌 것이 약간 있었는데 이걸 모두 말소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전세 보증금을 주인에게 지급하면 지체없이 이중 일부를 은행 빚을 갚고 저당을 푸는 것이 주인이 지켜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일부만 상환하고 일부는 남겨두었다. 나중에 부동산을 통해 물으니, 주인은 그만한 빚이 또 있는지를 몰랐다고 했다.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하지만 급히 전세를 구했어야 했던 당시 사정 때문에 얼마되지 않는 선순위 저당은 그냥 두는 것을 장모님으로부터 권유받고 그냥 살았다. 나는 당시에, 계약을 어겼으니 배액배상을 받고 다른 집을 알아보는게 낫겠다고 주장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이렇게 신용을 지키지 않은 집주인이 막판에 와서 계약금 일부 반환의 약속을 번복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건 또 집주인의 의무도 아닌데 더더욱 그 말을 믿어선 안되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만기에 집주인이 돈을 안 돌려줄 수도 있는 가능성이었다. 지금이야 이사를 다 마쳤으니 만기날 돈을 잘 돌려받은것이었겠지만 만기가 다가올 수록 걱정은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 가운데 한편으로는 법적인 장치들을 준비했다. 우선, 집주인의 미온적인 태도에 걱정이 된 우리는 동네 부동산 사장님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변호사 검토 후 내용증명 발송까지 준비했다. 전 직장 동기 형님이 변호사신데, 이런 사정을 토로하니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주셔서 이 분께 초안을 보내어 검토를 받았다. 상황을 설명하면 작성을 해주신다고 했으나, 무료로 해주시는데 내가 초안은 꾸며서 드려야겠다 생각해서 내용을 통상의 포맷에 맞게 적어 드렸다.
그러나, 내용증명 송부는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주셨다. 법적인 문서를 받으면 집주인은 십중팔구 매우 화를 내며, 오히려 보증금 반환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들 했다. 그러므로 조금 더 기다려보라는 천금같은 조언을 주셨다. 사실 내용증명은 소송까지 갔을 때에 대비해, 집주인으로 하여금, 보증금 반환시에 임차인이 입을 손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문서인 점이 크다. 그런 점을 전달하면서, 그러므로 반환을 꼭 해달라고 부탁하는 문서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문자, 카톡, 통화 녹음 등도 증거로 활용 가능하다고 하셨다. 따라서 집주인에게 내용증명 등기 발송을 위한 준비를 하는 한편, 다른 증거들도 수집하였다.
내용증명을 보내려면 집주인의 주소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계약서상 나타난 집주인의 주소는 바로 내가 사는 전셋집의 주소이다. 우리 행정규칙상, 동사무소에서는, 계약서에 나타난 집주인의 주소로 내용증명을 보내어 이것이 반송되면 그 우편물을 들고 동사무소로 가서 계약서와 함께 내면 현재 집주인의 주소가 나타난 등본을 떼어준다. 그 과정이 3주쯤 걸리기 때문에 미리 집주인의 현 주소를 알기 위한 내용증명 발송이 필요했다. 즉,
- 계약서상 집주인이 사는 것으로 되어 있는, 나의 집 주소로 내용증명을 (내 집 주소로부터) 보낸다
- 그 다음, 집주인의 주소에 사는 내가, 집주인 앞으로 온 내용증명을 반송한다. 그 때에는 내가 꼭 집에 있어야 집배원에게 '이 집에는 그런 사람이 안 산다'는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
- 그 다음, 반송된 내용증명을 다시 내 주소에서 반송받는다. 그러면 이 문서와 계약서 사본을 가지고 동사무소에 갈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었으나 동사무소 직원은 규정은 규정이라고 했다. 바보같은 과정이지만 따라야 했다.
그래서 집주인의 등본을 적법하게 얻을 수 있었고, 내용증명 문서에는 내가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할 경우에 입을 손해에 대해서 적시했다. 새 집의 계약금, 그간의 시가 상승분, 이사비용, 지체상금 등이다. 수억원짜리 문서였다. 이걸 장전해놓고, 주말이 지나도 이 집이 안나가면 보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주말에 전셋집이 팔렸다. 너무 극적이었다.
그러나,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주면 어쩌지? 왜냐면 집주인은 이제 돈을 쥐고 있고 집은 상승장이므로 먼저 새 집 매수를 위해 내 보증금까지 풀로 땡겨서 매수자금으로 넣어놓고, 나몰라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은 안 보내지만 이의 내용을 집주인이 인지하였음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통화를 시도하고 녹취를 했다. 대본을 쓰고 연습을 했고 녹음이 잘 되는지 확인했다. 통화가 성사되었고, 이해 당사자로서 참여한 전화통화를 스스로 녹음한 나는 상대방의 동의를 득하지 않고도 위법하지 않은 녹취를 할 수 있었다.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였고 다행히 만기에 자금을 돌려받고 이사를 떠날 수 있었다. 사실 원래 전세계약의 만기는 전날이었다. 그래서 그 날 보증금을 받고서 퇴거를 한 다음, 하루 호텔이든 어디 묵고, 짐은 보관이사를 하루 할 생각이었다. 왜냐면, 집주인이 집을 매도하고 중도금을 받은 날이 나의 전세 만기랑 같은데, 돈이 들어온 날 바로 받기로 해야 만일 돈을 못 돌려받는 상황이 오면 대응할 날을 하루라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차이가 없는 것이지만, 일단 돈을 돌려받는게 우선이라고 봤다. 하지만 집주인과의 앞선 통화에서, 만기보다 하루 더 있다가 나가도 되며 그러자 마자 돈을 돌려주시겠다는 응답을 들었고, 따라서 우리는 하루 더 지내다가 다음 날 매도 잔금을 치르기 위한 이사를 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 왜 만기를 맞추지 않았는가. 그건 애초에 전셋집의 매도 및 전세 중개 부동산으로부터, 만기일이 말일이 아니라서 수요가 더 적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일 퇴거도 가능하도록 하는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 말일에 전세든 뭐든 만기가 많은게 사실이라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원래 매수한 집도 하루 더 늦게 잔금을 치르는 것으로 말미를 받아두었다. 그래서 매수계약서도 수정하였던 것이다.
복잡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만기를 분산하였기 때문에 이사 당일에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왜냐면, 자가 매도의 잔금받기, 전세집 빼고 보증금 받고 이사 나가기, 새 집의 주담대 실행 및 잔금 치르고 이사 들어가기의 세가지 이벤트가 같은 날 벌어지면 굉장히 복잡하고 힘들 것이었다. 돌아보면, 이틀에 나눠서 했는데도 무척 빡셌다. 당일날 어떤 플로우로 일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무슨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적도록 하겠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