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정말 그렇게 좋은가
이사 당일 하는 일은, 짐을 빼서 새 집에 넣고, 그 전후로 대금을 주고받는 일이다. 이사 가기 한 달 반 전인가, 아파트에 미리 승강기 사용을 예약하고 예약금을 넣었었다. 그럼 당일 행동요령을 생활지원센터(관리사무소)에서 문자로 알려준다. 특이한 점은, 잔금 전에는 짐을 들여놓거나 공사를 하거나 청소를 할 수 없다는 것, 고가사다리를 쓸 수는 없고, 승강기 사용료를 입금하고 이사 날의 오전 혹은 오후 시간을 사용 예약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신축아파트니까 짐 옮기는 경로에 보양재를 깔아서 내외장재가 훼손되지 않게 해야 하는 점이다. 이건 미리미리 이삿짐 업체에 갖고와 달라고 얘기를 해야 한다. 아내에게 그 연락을 맡겼고 두 차례 부탁했는데 그걸 당일날 말하면 된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결국 보양재가 없이 이삿짐 업체가 왔고, 그 상황을 짐을 빼면서 확인한 나는 이 사실을 이삿집 업체에 전달해서, 업체에서는 보양재를 가지러 자기 회사에 다녀와야 했다. 이사가 끝나고 회식비 얘기를 하면서 보양재 얘기를 하시기에 수고비 조로 10만원을 더 드렸다. 이런 점은 꼭 미리 당부해야 한다. 아파트의 청경인가 조끼 입은 사람들이 친절한 얼굴로 와서는 이사 장면을 조용히 촬영해 가는데, 보양재를 갖고 왔는지 그래서 출입경로에 이사 하는 사람들이 타일을 깨먹었는지 등등을 나중에 체크해서 배상을 물리게 된다.
이사 나갈 집의 짐을 다 빼고 부동산에 가서 임대인(집주인)으로부터 임차보증금을 반환받고 나서, 나는 버스를 타고 잔금을 치를 부동산에 갔다. 이사 나오면서 스탠딩 에어컨을 당근으로 팔았는데, 그걸 사가는 사람이 와서는 “어디 좋은데 가시나봐요~ 좀 알려주세요 기운 좀 받게요ㅎㅎ” 했다. 시스템 에어컨이 있는 곳이 신축이니 좋은데 간다고 짐작했나보다. 아내는 끝까지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없을 때 그냥 어디로 간다고 말해줬다. 이사때가 되니 버릴 것들이 많았다. 분리수거장에 가는 길에 전세집 매도를 중개한 부동산 중개인과 만났는데, 중개인이 나의 이사를 축하해주었다. 중개인들은 '언제 거기를 해놓으셨어요~ 접근하기가 어려운 곳인데 부럽네요' 라고 했다. 미리 해 놓기는... 그저 오르는 것을 한 번 놓치고 두 번째에 겨우 샀습니다..
나는 이사 전날 어린 아이들을 처가에 맡기고 왔기에 당일 우리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내는 짐이 빠지고 나서 청소를 하고 이사 들어 갈 집으로 운전을 해서 갔다. 나는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서 바로 버스를 타고 부동산에 갔는데 매도인, 매도인 및 매수인 각자의 중개인들, 주담대 실행 '은행' 법무사가 나와 있었다(매수한 부동산 등기 담당 법무사는 통상 '설정' 법무사라고 한다). 내가 손댈 것 없이 은행은 주담대 금액을 매도인에게 이체했고, 나는 오늘 받은 전세 보증금과 어제 받은 성동구 집 매도 잔금을 토대로 매수하는 집의 잔금을 이체했다. 각종 키와 부속품을 인계받고, 관리비 정산을 했다. 뭔가 주는게 많았다. 현관 태그키, 음쓰 분리수거용 태그키, 팔찌형태로 된 웨어러블키, 각 방 비상키, 시스템 에어컨 리모컨들, 불 켜고 끄는 리모컨, 환기장치 리모컨, 각종 매뉴얼… 근데 이거를 좀 약한 쇼핑백에 넣어줘서 일부가 찢어졌다. 뭔가 그게 빠진 줄 알았는데 딱히 잃어버린 건 없었다.
아내는 집 안에서, 미리 그려 놓은 배치도 대로 가구 배치를 지휘했고, 나는 필요한 행정절차를 수행했다. 잔금을 치르면 이제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 전입신고한 등본을 들고 아파트 생활지원센터에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 절차는 그와 병렬로 진행될 수 있다. 나는 삼복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굉장히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카드로 취등록세를 무이자 할부로 납부했다. 이택스에 가면 어떤 카드가 무이자 몇개월 제공하는지 조견표가 나온다. 농협의 경우가 무이자 6개월로 가장 길었는데, 카드 한도를 일시 상향하는 제도가 있어 내 소득증빙을 내고는 두 차례 상담을 했고, 대출 실행한 뒤 13일 간 한도를 올려준다고 해서 이사 전전날에 한도를 올리러 갔는데, 웬걸 애초에 말한 한도보다 천 몇백만원 적게 한도가 나온다는 것이다. 자기가 착오를 했다거나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거나 등등... 한도를 최대한 올리고, 아내에게 일부 당일에 결제를 부탁했다. 방식은 이러하다. 매수한 부동산의 등기 법무사로부터 납부번호를 받으면, 그 번호로 아내와 내가 각자 취등록세 결제를 해 나가면 잔액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은 정말이지 직접 해보기 전에는 상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설정 법무사에게는 수수료를 지급했다. 나중에 양도소득세 내면서 안 사실인데, 4.5년 전에 1/3 가격에 해당하는 집을 매수하는데 법무 등기 수수료가 지금 강남 집 매수할 때 보다 30만원이 비쌌다. 세상에... 여튼 10일쯤 뒤인가 등기권리증이 집으로 도착했다.
한 가지 실수는, 내가 매매 당일에 취등록세를 결제하려고 보니 농협BC 카드는 3개월 무이자만 되는 것이었다. 순수 농협 카드가 6개월 무이자. 그걸 당일에 알게 되었고 나는 결제를 더 미룰 수 없냐고 법무사에 물었으나, 그럼 뒷 일 처리가 밀린다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수십만원의 암묵적 이자비용을 더 물면서 3개월 무이자로 했다. 그런데 두 달쯤 뒤에, 문제의 농협-비씨카드를 대체하는 일반 농협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인터넷으로 발급 신청했는데, 웬걸, 당일 발급 및 앱카드 사용이 되는 것이었다! 그랬지. 어떤 카드사는 배송이 되지 않아도 바로 앱카드를 쓸 수 있는데, 그게 농협도 되는 것이었구나. 그러나 이런 것을 모두 다 어떻게 완벽하게 할 수 있겠는가. 몇 억 날리고 소송에 가는 일이 없어서 천만 다행으로 생각한다.
강남 와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 주변 지인들이 좀 있다. 나는 사실 그렇게 다른 점을 모르겠다. 아파트 단지야 신축이니 깨끗하고 편리하기는 하다. 성동구의 구축 소단지는 일주일에 한 번, 요일을 정해서 분리수거를 받았다. 집집마다 한 주 간 모은 재활용 폐기물을 모아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날 모여서 버려야 하는데, 그 주 놓치면 2주치를 모아서 버려야 했기에 그 날이 다가오면 놓칠세라 긴장되었다. 판교의 대단지는 엘베로 연결된 지하 주차장에 재활용 쓰레기 모으는 곳이 있어서 그게 참 편리했다. 그러나 일반 쓰레기랑 음쓰는 지상의 몇 군데에 가서 버리고 와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사 온 곳은 거의 동마다 1개 꼴로 상시 분리수거장이 있으며 그곳에 일반 쓰레기와 음쓰 배출함이 있다. 카드키를 찍으면 배출함이 열려서 버릴 수 있고, 그걸 이제 기계장치가 어디론가 가져가는 모양이다. 아무 봉투에나 담아서 버리면 음쓰의 경우는 세대별로 무게가 책정되어 관리비에 가산된다. 매일 출근하면서 나에게 가장 가까운 분리수거장 앞에 매일 버리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그곳에 있는 개수대에서 물비누를 짜고 페달을 밟아 손을 씻는다.
커뮤니티는 신축의 장점이기는 하다. 밥이 제공되어 주말에도 걱정이 없으며, 단지내 도서관이 몇 개 있어서 무료로 책을 볼 수 있다. 이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다섯 살박이 아이는 책을 쌓아놓고 읽는다. 키즈카페도 있어서, 카페에서 뽑은 아아를 들고, 애매한 시간엔 둘째나 첫째를 거기 데려가기도 한다.
입주민들 중에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눈에 더 띄는 것 같다. MIT나 Stanford 후디나 모자를 쓴 사람도 보이고(아내는 저거 다 그냥 관광객으로서 산 거라고 주장 함), 키즈카페에 Harvard Law School 후디 입고 온 아저씨가 있어서 아내에게 말하니까 와서 보더니, 가짠 줄 알았는데 얼굴 보니까 본인 것 맞는 거 같다고… 커뮤니티의 카페에서 영어 원서 소설 읽는 할아버지도 보이고, 카페테리아에서 대화하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Transformer'가 나오자 너무 놀랐다며 그 이후로 이어진 요새의 LLM의 발전상황에 대해 토의하고 계셨으며, 도서관 가도 초중고 다 공부 많이 하고 무슨 학원 어디를 갈지 시간을 조율하면서 전략을 논의하는데 그런 분위기는 좋다. 애들이 영어를 좀 열심히 하는 것 같기는 하다. 단지 바로 앞에 영유가 있는데 우리는 안 보내고 있지만 원하면 등원이 쉽다는 점도 좋은 점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나는 출근을 자전거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따릉이를 타면 버스로 갈 때 대비해서 시간이 1/2 이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연 3만원 꼴로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배달 주문하려고 하면 선택 가능한 종류가 판교보다 많아서 좋다. 아무래도 도시가 조성된 지 오래되었다 보니 프랜차이즈가 아닌, 오래되고 괜찮은 집들을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양재천을 걸어서 갈 수 있고, 그 옆에는 타워팰리스를 중심으로 다소 오래된 상점과 병원과 다양한 식당이 있으며, 거기서 더 걸으면 대치동 학원가가 나타난다.
이사를 오기 전에는 여기 오면 매일 매일 기쁘고 감격스러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도 금방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한 달 정도는 오랜 기간 공들여 온 목표가 사라져서 그런지 다소 우울감이 있었으며, 두 달 동안은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이미지가 나도 모르게 자꾸 떠올랐다. 요새 육아로 너무 바빠서 현생의 무게가 엄청 커졌기에, 이사 후 석 달 째인 지금은 예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시리즈를 맺으면서 여기 이 기억들을 여기에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지난 글이 다소 무미건조했어서 이번에는 사진을 좀 첨부해서 훈훈하고 현장감 있는 마무리를 해 보고자 한다.
나는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대학생 때 그리고 직장인이 되고서 통산 4번 쯤 방문하였다. 지금은 내가 살던 곳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되었지만, 내가 우리 작은 딸만큼 어릴 적에 살던 방에 난 작은 창으로 들어오던 은은한 햇빛과 주기적으로 들려오던 1호선 지하철이 지나가던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부평은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고, 어릴 때는 삶이 그리 복잡하지 않으니 그 때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나보다. 어머니는 정기적인 직장엘 다니진 않았고 주로 살림을 하셨는데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감자채 볶음, 계란말이를 해서 주셨다. 밤에는 남은 나물을 넣어서 양푼에 비벼먹기도 했다. 집에는 늘 총각김치나 깍두기가 있어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곁들여 먹곤 했다. 형편이 특히 어려울 때는 맨 밥에 물을 말아 신김치나 콩자반과 먹는게 다였지만 밥을 굶기시진 않았다.
동네의 모습을 살펴보자면, 부평역에서 인천 방면인 백운역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지금은 부평공원이 된 미군부대가 보였고 거기서 좌회전을 하면 1호선 지하철이 지나가는 철로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간다. 당시 마을버스는 부평역과 안암아파트 사이를 오갔는데, 그 중간에 우리 마을이 있었다. 부평역에서 고가도로를 서서히 올라가고 나면 언덕의 마루에 해당하는 곳에 차가 다니는 도로가 나있고 그 도로 좌우로 바로 삼능마을이 있다. 그 입구에는 부평감리교회가 있다 -- 주변에 비해 유난히 반짝이고 세련된 대리석 건물은 마치 아크로폴리스처럼 웅장하게 서 있다. 그리고 도로의 좌우측으로는 다시 비탈진 사면이 길게 이어지며 그 사면에는 주택과 빌라들이 빼곡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큰 아파트 단지가 자리한 우측 사면에는, 당시만 해도 일제시대 미쯔비시(三菱, 우리식으로 읽으면 삼릉) 공업소의 노동자가 살던 줄사택지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현재는 문화유적),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다시 평지의 상점가가 잠깐 있고는 그 위로 다시 얕은 경사면을 올라가면서 주택들이 존재했다. 이 곳에서 나는 세 살까지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조금 형편이 나아져, 좌측 사면을 내려가면 있는 동네로 옮겼다. 여기는 부평남 초등학교가 위치한 곳이다. 아무래도 우측에 살았다면 이 초등학교를 오기까지 찻길도 건너야 해서 멀고 위험했을 것이다. 여기는 부평감리교회가 있었는데, 교회는 언덕 꼭대기에서 시작해 점차 아래로 내려가며 당시 부일초등학교 부지까지 매수해서 큰 교회가 되었다. 빌라나 다세대주택이 많이 위치해서 동네 분위기도 한결 나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3년 1월, 근처 지나가는 길에 들러 동네 정경을 몇 장 찍어 보았다. 이 동네는 정말 시간이 멈춘 듯 하다. 언제나 가도 거의 수십 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 살던 미군 신사는 인사를 하면 스피아민트 맛이 나는 미국산(으로 보이는) 껌을 나눠주곤 하셨다.
태양할인매장은(구 태양수퍼)는 좁은 면적이지만 없는 게 없다. 편의점이 생긴 것은 최근으로, 그 전까지는 이 동네의 주요 상점이었다. 언덕 마루의 대도수퍼 및 정육점이 가장 컸지만 아무래도 언덕을 올라가야 했기에 소위 까까나 아버지 맥주 심부름 같이 간단한 걸 사려면 가까이에 있는 상점인 태양수퍼를 자주 갔던 것 같다.
화원이발관은 내 유치원 친구 아버지가 하던 곳이다. 그 이발사 분은 매우 친절하셨고, 이발을 다 하고 난 뒤에도 비치된 책을 읽게 해 주셨다. 친구가 내 나이가 될 때 까지 아직도 같은 자리에서 영업하고 계셨다.
위에 보이던 삼능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다가, 부개동으로 이사오면서는 언덕이 없는 평지에 살았다. 18평에 내 방은 내창도 없지만, 반지하를 벗어나 햇빛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어머니는 화분도 키울 수 있었다. 해가 잘 드는 아파트 답게 이름도 진양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 듣기에도 집값이 3천만원에 전세는 1800만원이었는데, 수십년 지난 지금도 집값은 1억 5천만원이다.
어제 결혼식에 가니 피로연장에서 가깝게 지낸 아내의 직장 동료 가족들이 나를 보자 “강남 입성 축하!” 라고 한다. 보는 사람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강남 입성은 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개인적 성취의 지표인 것 같다.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비결을 묻는 사람이 있다. 성실하게 기회를 모색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절약하고 노력했다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여기서, 나같은 사람에게 절약이란, 외제차를 타고 싶어도 십 년 넘게 평가액 250만원 짜리 같은 차를 타며 미션을 갈고 백미러가 깨져도 타는 것이었다. 십 년 넘은 아디다스 추리닝 허리 고무줄이 풀어져서 자꾸 허리가 내려가 입을 수 없고 수선비가 더 들어 겨우 버리는 것이다. 소고기를 먹고 싶으면 울프강에 가는게 아니라 정육식당에 가는 것이다. 회당 5만원 하는 피티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하루 80원짜리 따릉이를 타는 것이다. 아내는 샤넬 가방도 하나 없는데 이번에 매수할 때 한 쪽 중개 수수료가 그만큼 나가 버렸고, 취등록세로는 작년에 시승까지 해 보다 포기한 GV80 값이 나갔지만, 내년 초에 이렇게 모은 원금을 갚고 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그런 것들을 차츰 누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글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창 쓰고 있는데 큰 딸이 재워달라고 해서 잠을 재우고 나니까 텐션이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최근에 우연히 찍은 사진인, 양재천 위의 보름달 사진(Starry night over the Yangjae)을 띄우며 급마무리를 지어 본다. 그간 졸문을 애정 깊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