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itocracy

결과만 놓고 우러러봐도 되는 것일까

by Ryan C

(2022년에 쓴 글인데 지금 발행합니다)


유튜브와 공중파에 자주 등장하는 실리콘밸리 출신 엔지니어가 책을 냈다. 좋은 학벌과 커리어, 뛰어난 언변과 추진력, 거기에 훈훈한 외모까지—객관적으로 훌륭한 스펙의 소유자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책을 읽고 방송을 챙겨 본다고 해서 그가 걸어온 성공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에게는 관계없는, ‘남의 이야기’에 가깝다. 애초에 출발선이 평범한 대중과 다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정리해 보면, 그는 일본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사업가 아버지와, 6살 아이에게 자막 없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를 25년 전 해외 직구로 구해 줄 정도로 교육에 열정이 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입시를 위해서는 상당한 사교육이 필요한, 그리고 학비만 보더라도 중산층 이상이어야 보낼 수 있는(2019년 기준 연 1,500만 원 선) 외고를 나왔다.

국내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KAIST에 진학했지만, 대기업이 보장하는 평범한(!) 삶이 싫어 자퇴하고 UC 버클리로 향했다. 그곳에 가려면 설득력 있는 에세이와 높은 SAT 점수가 필요하다. (언제 준비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보통은 긴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유학생 기준 2021년 학부 생활비와 학비를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 8천만 원 수준이라 한다. 편입이라면 2년, 학부 전 과정을 다녔다면 4년을 다녔을 텐데, 그는 4년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니 실제 지출은 연 4천만 원가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첫 직장에서 초봉 약 12만 달러, 이후 두 번의 승진으로 더 오른 연봉과 함께, ‘실리콘밸리 글로벌 빅테크 ex-Facebook 엔지니어’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얻었다.

그렇다면 이 결과를 위해 들어간 투자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었을까?


예를 들어, 중학교·공고를 나와 월 가계 소득 150만 원 수준의 가정에서 사교육의 도움 없이 공교육만으로 명문대에 진학하고,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해 졸업한 사람이 20대 초반 캘리포니아의 페이스북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까. 시간이 지나 생계를 위해 일하고 가정을 꾸리면 그 격차는 더 커진다.


Daniel Markovits의 『The Meritocracy Trap』은 이렇게 시작한다.


“Meritocracy is a sham.” (능력본위주의는 헛소리다)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조금만 더 잘하면 시기한다. 반면 애초에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해 비교 불가능한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찬사를 보낸다. 혹여 자신이나 자녀와 비교했을지라도, 결국 그의 노력과 재능을 찬양하는 반응을 보이기 쉽다. 그런데 그가 방송에서 전한 ‘집중력 꿀팁’ 같은 이야기를, 만약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가 했다면 사람들은 같은 정도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나는, 나와 내 자녀의 결과가 평범하거나 초라해 보여도, 주어진 기회·지원·환경을 감안해 본다면,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 성취는 애초에 자녀 1명에게 수억을 투자할 수 있었던 극소수의 성취 못지않게—어쩌면 그 이상으로—찬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숭배한다. 그리고 경제·사회·문화적 자본을 가진 집단의 자녀에게는 더 큰 보상과 명성이 따르기 쉽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더더욱, 출발선의 차이를 극복하고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성취를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진 가치를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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