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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Jan 17. 2019

[ROTC 장교 한 번 해볼래?]
탈영병(1부)

그 첫 번째 이야기. 탈영병(1부)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맞이하는 한가로운 날이었다. 달큼한 믹스커피 한잔이 코끝을 간질이며 뱃속을 따듯하게 해 주었다. 따듯한 햇살과 커피 한잔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게 해주는 그런 날이었다. 


오후에 평화를 산산이 깨는 전화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마음속에서 절로 불평 한마디가 떠올랐다. '에이, 하필 이 시간에 전화를...'


"통신보안. 공보장교입니다."


“헌병대 수사관 김 중사입니다. 지금 부산에서 탈영병이 검거되어 내일 우리 부대로 인계됩니다. 먼저 참고하시라고 내용 안내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따로 메일 드리겠습니다.”


탈영병이라니... 청전벽력 같은 소리였다. 

'탈영병이 부산에서 잡혔다고? 부대에 보고 된 탈영병이 있었나? 그런데 왜 지금까지 몰랐지? 언론에 이미 사실이 알려졌을까? 탈영병이 오면 뭘 해야 하나?'

단 한 단어가 평화로운 오후를 깡그리 날려버리고 그 빈자리를 온갖 걱정거리로 채워버렸다.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탈영병'은 문자 그대로 병영을 나간 병사를 말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탈영병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법적으로 탈영병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법에서는 탈영죄라는 죄목이 없다. 탈영을 하게 되면 일반 형법이 아닌 군 형법으로 처벌받게 되는데 군 형법에서는 이를 군무이탈죄로 다루고 있다. 

그래도 4년간 법학을 전공해서 탈영에 대해 아니 군무이탈에 대해 몇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군무이탈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범죄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언제든 잡혀도 처벌받게 된다. 20대 군대를 뛰쳐나가 환갑이 넘은 60에 잡혀도 처벌 받는게 바로 군무이탈죄다. 

이론적으로는 군무이탈죄는 범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일반적으로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친다고 하는 경우 남의 집 안에 들어가는 순간 절도행각이 시작되고 물건을 훔쳐서 집 밖으로 나오면 절도라는 행위가 종료되고 절도죄가 성립한다. 공소시효는 범죄가 종료된 이때부터 계산된다. 하지만 군무이탈죄는 실제 병영 밖으로 탈출한 순간 군무이탈죄는 성립되지만 군무이탈이라는 행위가 종료되려면 군대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범죄가 종료되어 공소시효를 계산할 수 없는 범죄인 것이다. 이것을 형법에서는 '계속범'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고 군대를 들어가지 않은 것도 아니고 잠시 들어갔다가 도망갔다고 해서 평생을 공소시효도 없이 도망 다니게 하는 것은 조금 부당한 처사일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군무이탈의 공소시효를 10년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어디 군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인가. 

군무이탈한 지 10년이 넘어 공소시효가 지나도 처벌이 가능하다. 내가 만난 탈영병이 그런 케이스였다. 군무이탈죄만 따지면 10년간 도피생활을 하면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는데, 이 탈영병은 20년을 도피생활을 이어갔지만 불심검문에 걸려서 체포되어 헌병대에 인계되었다. 죄명은 바로 '명령위반죄'. 군무이탈자들을 대상으로 각 군의 참모총장은 매 3년마다 복귀 명령을 내린다. 명령위반죄 공소시효는 5년. 군무이탈죄를 범하면 빠져나가려야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80세 노인이 되어 잡혔어도 처벌을 면하기는 어렵다.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헌병대 수사관이 메일을 보내왔다. 메일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데 아니다 다를까 탈영병은 우리 부대원이 맞았다. 그런데 탈영 날짜가 이상했다. 탈영 년도가 90년대로 적혀있었다. '오타야 뭐야, 거의 20년간 도망 다닌거야?' 다시 김 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사관님, 메일이 조금 이상합니다. 탈영 일자가 이날이 맞습니까? 18년 전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수사관 김 중사는 바쁜 목소리로 답했다.

“메일로 보내드린 연도 맞습니다. 20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하다가 부산에서 불심검문에 적발된 친구입니다. 지금 부산 헌병대에서 경찰로부터 신병확보했고 이제 우리가 인계받으러 갑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시 통화하시죠”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다음 날 간단한 조사를 마치고 탈영병이 원래 부대로 복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우선은 헌병대로부터 받은 자료를 정리해서 보고자료를 만들었다. 해는 이미 넘어갔고 시곗바늘은 어느덧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야근이구나.' 

이런 일이 생기면 정훈장교는 정말 많은 업무가 생긴다. 가장 먼저 언론에 이 탈영병 이야기가 흘러나갔다면 언론 대응을 먼저 해야 한다. 기자들이 오해하거나 잘못된 기사를 내지 않도록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상급부대와 하급부대를 조율해서 추측성 발언이나 개인 의견이 군을 대표해서 나가지 않도록 언론대응 창구를 통합해야 한다. 그리고 윗분들께 보고하기 위한 자료를 작성하고, 이 탈영병처럼 큰 이슈가 되는 사항이면 장병 정신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계획 보고 등도 필수적이다. 캐비닛에서 컵라면을 하나 꺼내 물을 부으면서 탈영병 나이를 계산해 봤다. 손가락으로 대충 세어보니 마흔 살이 넘었다. 그리고 한 가지 고민이 들었다. '이 탈영병을 만나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이튿날 탈영병은 부대로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사단장과의 면담이 있었다. 우리 부대 헌병대의 조사를 포함한 오전 일정을 소화하고 탈열병은 마침내 우리 사무실로 왔다. 전투복도 막 새로 지급받아 뒤에서 보면 영락없는 신병이다. 우선 자리에 앉히고 얼굴을 마주했는데 일병 계급장이 달린 전투모를 벗으니 소령 정도 연배였다. '참... 존댓말을 해야 하나 반말을 해야 하나.' 반말을 하기가 왠지 모르게 상당히 꺼려졌다. 그렇다고 일병한테 존댓말을 쓸 수도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 일병. 오느라 고생 많았다. 부대 적응은 좀 되나?"

김 일병은 나를 살짝 올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다시 떨궜다. 

"다음 주에 사단장님 지시로 특별 정신교육이 있으니 나랑 같이 준비하자. 이번 주는 계속 여기 사무실에서 보내게 될 거야” 김일병은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사단장님은  탈영병 소식을 듣자마자 이미 장병 대상으로 한 정신교육을 계획하고 계셨다. 탈영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실제 20년간 도피생활을 해온 병사의 생생한 삶에 대해 본인의 입으로 듣는 것보다 더 큰 교육은 없을 것이다. 비록 언변이 탁월하지는 않지만 탈영병이 건네는 단 몇 마디의 말이 훨씬 더 장병들 마음에 와 닿을 거라는 추가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담당은 내가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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