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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도는 왜 호랑이 모습이지?

한국사의 판타지

by 라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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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지도는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땅의 기운을 받아 호랑이의 기개를 갖고 있다.


일본의 한 학자가 한반도의 모습을 토끼로 비유하자 여기에 반발한 최남선이 한반도는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그린 그림이 지금까지 한반도의 호랑이 형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로 호랑이 모습을 한 한반도 그림은 민족의 기상을 나타내는 하나의 심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반문을 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대표적인 우리나라 판타지다. 저런 모습을 한 호랑이를 본적이 있나? 척추가 부러지지 않고서야 너무 억지스러운 자세다. 이탈리아 반도가 장화모양이라고 해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프랑스의 상징 동물이 닭이라고 해서 프랑스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근데 우리나라는 일본 사람이 한반도 모습이 토끼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니 부끄러움에 호랑이 그림을 가져왔다. 근데 한번 따져보자.




첫 번째, 호랑이가 우리 민족의 정신적 동물인가?

단군 신화를 보자.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다가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도망쳤고 곰만 끝까지 남아서 사람이 된다. 그 곰의 이름이 웅녀다. 그리고는 하늘의 신인 환웅과 결혼해서 아들 단군을 낳았다. 이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다.


민족의 동물이라 하면 단군신화를 보아도 당연히 곰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한반도가 어떠한 동물을 닮았다고 주장하려면 억지 호랑이보다는 억지 곰 모양이 더 민족의 신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단군신화를 분석한 학자는 예전 부족국가 시대에 호랑이를 숭상하던 부족과 곰을 숭상하던 부족이 서로 결합하려다 호랑이를 숭상하던 부족은 이를 등지고 떠났고 곰을 숭상하던 부족이 문명을 이끄는 부족(환웅 무리)과 만나서 번영을 이루었다고 해석한다. 우리 민족의 대표성을 호랑이에게 부여하는 건 단군신화를 보더라도 안 맞다.




두 번째, 그럼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좋아했는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산에 맹수가 많았다. 호랑이, 표범 등의 맹수가 마을을 덮치거나 길 가던 사람을 물어가는 건 심심치 않은 일이었다. 호환마마라고 할 때 호환은 호랑이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는 말로 조선시대만 해도 가장 쉽게 만나는 자연재해였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동화에 그렇게 호랑이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는가. '떡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하며 산길을 가던 어머니를 협박하던 호랑이, 마을로 사람을 잡아먹으러 왔다가 곶감이야기에 겁을 먹고 도망가는 호랑이, 함정에 빠졌다가 구해준 사람을 잡아먹으려다 다시 함정에 빠지고 마는 호랑이, 은혜 갚은 호랑이 등 호랑이 관련 전래동화가 많다. 그만큼 호랑이가 많았고 옛날 사람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했다.


호랑이는 재난을 뜻했고 극복의 대상이었지 민족적으로 좋아하고 숭배하는 대상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부대가 별도로 존재할 정도로 나라에서도 호랑이 퇴치에 힘쓸 정도였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워했다가 더 맞겠다. 이 두려움을 일본도 느껴봐라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표현하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우리 선조들의 국토 감각이 오랫동안 호랑이를 느껴왔는가?

국토 감각, 지리적 위치나 공간에 대한 인식을 뜻한다. 우리나라 단군 신화랑 무관하게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좋아했건 무서워했건 상관없이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의 국토감각이 한반도 전체를 호랑이로 느껴왔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자. 조선시대 이전 고려 국경은 지금의 한반도와는 차이가 있다. 그 이전 통일신라는 한반도의 절반 밖에 되지 않고, 백제나 가야를 다 합쳐도 한반도 호랑이를 상상하기 어렵다. 발해나 고구려의 국토감각은 한반도 범위를 넘어선다. 한반도만 똑 떼어내어 호랑이 그림을 그릴 여지가 없다.


한반도 전체가 국토로 인식된 건 조선시대에 들어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한반도 전체를 자세히 그리고 호랑이를 떠올리게 할 지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이전엔 없었다. 조상들의 국토감각은 제한적이었고 이전의 투박한 지도체계에서는 호랑이 형상을 떠올리기는 불가능하다.




한반도를 호랑이로 인식하는 건 아마 20세기 한국인뿐이다.

우리 조상은 우리가 사는 땅의 모양을 호랑이로 인식한 적이 없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건 한반도 역사상 20세기 이후 한국인이 유일하다. 신화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호랑이가 한반도의 상징 동물로 자리잡는게 여간 이상한 게 아니다. 일본이 토끼 모양 한반도에 발끈해서 토끼를 잡아먹는 용맹한 호랑이의 모습을 그린 수준이고 그 수준을 지금까지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국토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판타지를 배우는 것이다.


땅 모양이 토끼라고 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토끼의 성정을 가지고 태어나고 행동하지 않는다. 지독한 풍수지리 미신이 아직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일본에 대한 반발심과 적개심을 깨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음 세기에도 판타지를 진실로 믿고 살 수밖에 없다.


아래 조형물을 보자. 당신은 토끼가 생각 드는가 아니면 호랑이가 생각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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