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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Oct 24. 2020

9/11 테러가 바꾼 항공 역사

항공 역사를 바꾼 열두 가지 사건 사고. 다섯 번째 이야기

2001년 9월 11일. 두 대의 비행기가 쌍둥일 빌딩으로 불리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한다. 그리고 두 건물을 이내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세계무역센터가 있었던 맨해튼 남단에 가 본일이 있다. 거대한 건물이 있었던 자리엔 911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거대한 추모시설이 지어졌다. 


911 추모기념관(911 Memorial Park) <출처: 구글>


이곳의 정식 이름은 911 Memorial Park이나 Ground Zero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건물 터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여기가 어떤 곳인지 잘 말해주고 있었다. 커다란 폭포 아래를 보고 있노라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희생자의 울음소리인 것만 같아 순간 먹먹함이 흐른다. 



911 테러 장면을 표지로 사용한 뉴스위크


미국의 분노

당시 미국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사고가 나자 미국의 교통부 장관은 하늘에 떠있는 모든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켰고, 미국으로 오고 있는 항공기는 미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회항하도록 했다. 그리고 미국 내 모든 항공기의 이륙도 막았다. 미국의 하늘을 완전히 비워버린 것이다. 

정말 만약에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면 국토부 장관이 미국처럼 신속하게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 외교문제와 경제문제 등으로 다른 부처 협조를 얻어야 하고 관료제 특성상 이런 경우 더 높은 사람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소한 1~2주일은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버리면 하늘을 봉쇄해야 하는 필요성도 희석되어 흐지부지 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미국은 이 조치를 단시간 내 발령하고 모든 항공기의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테러를 응징하고 악의 세계를 제거해 버리겠다고 천명했다. 미국의 군사력이면 가히 어느나라도 잿더미로 만들 수 있고, 미국민 모두가 극도로 분노해 있었다. 전 세계는 미국의 심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애도 성명과 위로를 앞다퉈 건넸다. 심지어는 미국과 으르렁 거리던 북한도 테러행위를 비난하고 희생자 애도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AIRBUS의 조종실 보안문 개요 <출처: NYTimes>
조종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미 국방부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미 교통부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에 골몰했다. 교통부는 9/11 테러의 가장 큰 원인은 테러리스트가 조종실을 침탈했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서 조종실내 외부인이 침입할 수 없도록 하는 특별 강화문을 조종실 입구에 달도록 했다. 그리고는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은 항공사의 미국 취항을 금지시켰다.


항공시장에서 미국의 힘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이 규정을 만들면 곧 법이 된다. 물론 자기네 법을 다른 나라에 강제할 수는 없다. 국가 관계는 서로 평등하니까. 하지만 자기네 규정을 지키지 않은 항공사를 미국 내 들이지 않을 수는 있다. 이건 자국의 항공주권의 문제기 때문에 가능하다. 

문제는 대만이나 몽골 같은 나라가 자기만의 규정을 만들고 지키지 않은 항공사는 자국 내 취항을 금지시킨다고 하면 안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국은 항공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기 때문에 안 가서 아쉬운 건 항공사지 미국이 아니다. 


그 결과, 항공사들은 문짝 하나에 수억 원씩 하는 조종실 문을 구입해서 장착했다. 물론 그 조종실 문은 미국에 소재한 기업이 만든다. 이 문은 방탄으로 총알로도 뚫을 수 없고, 오직 조종실에서 허락해야만 열 수 있다. 이때 이후로 조종실 문을 열고 친근하게 비행하는 광경은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총알 한 발 쓰지 않은 테러

테러라 하면 복면 쓴 사람들이 총을 들고 하는 행위로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TV에서 본 자료화면의 대부분의 테러 단체가 그런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항공 사상 최악의 사고이자 미국 본토가 공격받은 최초의 사례인 911 테러범들은 항공기를 납치하는데 별다른 도구를 쓰지 않았다. 총을 기내 반입하는 게 가장 확실할 수 있지만 탑승전 소지품 검사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문구용 커터칼이었다. 테러범들은 커터칼로 객실 승무원을 위협했고 승무원과 승객을 인질로 삼아 조종실을 쉽게 점거할 수 있었다. 단 돈 천원도 하지 않는 문구용 칼 하나가 이 엄청난 사고를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이야 보안검색이 강화돼서 뾰족한 물건 자체를 기내에 들일 수 없지만 당시엔 기준이 훨씬 느슨했다. 가위며 칼 같은 일상 문구 용품이나 맥가이버 칼로 불리는 스위스 나이프를 들고도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승무원들은 조리용 칼 세트를 챙겨 다니기도 했다. 옛날 어른들이 승무원들이 과일을 예쁘게 깎는다는 인식이 있는 이유도 이 배경에서 나온다. 당시엔 수박이나 멜론 같은 과일이 통째로 실리면 승무원이 기내에서 칼로 바로 깎아서 제공했다. 911 이후 승무원의 칼 반입도 금지되어 기내식센터에서 과일까지 모양을 내서 탑재하고 있다.



911이 바꾼 항공보안

전 세계 항공보안은 911 전/후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911 이전 느슨했던 기준은 모두 강화되었고, 기내 설비도 보강되었다. 승객과 승무원 모두 엄격한 보안심사를 거쳐야만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고, 객실로는 매우 제한적인 물건만 반입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액체류 폭탄 예방을 위해 액체류 자체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게 했고, 미국행 항공기의 경우 탑승구 앞에서 행동탐지요원이 여러 질문을 통해 수상한 자를 색출하는 작업을 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모두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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