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꼭 Pain Killer 여만 하는가
저는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투자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대표님들과 직접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래에 정주영, 잡스가 되실 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은 일종의 직업적 특권이라는 생각마저도 듭니다.
우리팀도 저도 게임 투자를 많이 하는 투자자는 아닙니다. 다만, 좋은 기회에 훌륭한 팀으로 이루어진 게임사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더군다나 대표님께서는 온라인 게임 시절 가장 앞서 상장(IPO)도 경험해보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경험을 직접 듣는 것만 해도 저는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그 대표님과 사무실에서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대표님이 회사에 찾아오셔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녁 9시쯤 시작했던 이야기는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이럴 때면 남자들이 더 수다쟁이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거리게 됩니다. 남자 둘이서 알코올 없이 믹스커피 몇 잔과 물 몇 잔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주로 사업 전략과 운영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대표님께서 저에게 불쑥 질문을 하셨습니다.
"장과장님, 게임하는 사람들이 왜 돈을 많이 벌었는지 아세요?"
이 질문을 듣는 순간 곧바로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게임은 원래 돈 많이 버는 산업 아닌가? 비즈니스 사이클이 짧아서 Exit 하기 쉬워서? 글로벌 스케일이라서? 아니지, 원래부터 돈 많이 버는 산업이란 게 어디 있나. 아니 도대체 이유란 게 있는 건가. 사업을 잘하셔서 돈 많이 번거 아닌가?’
바로 그때, 마치 제가 구시렁대는 것을 듣기라도 한 듯, 대표님께서 바로 한 말씀해주시더군요.
어떻게 하면 고객한테 재미있게 해 줄까.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고 있어서 그래요
머리를 띵하고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엔가 윤리 시간에 배웠던 ‘돈오점수(頓悟漸修)’ 할 때의 바로 그 ‘돈오(문득 깨달음)’의 느낌이었습니다. 대표님이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만 하신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고객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걸 제공할까? 어떻게 만들면 고객들이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만들까? 경쟁 게임 대비 어떻게 차별화를 할까?’라는 고민을 하실 줄 알았는데, ‘고객의 재미’라는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님과 헤어진 뒤,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재미’라는 요소는 꼭 게임업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만 보더라도,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등의 SNS, 유튜브 / 넷플릭스 / 멜론 등의 Media, 망고플레이트 / SNOW 등 여러 IT 서비스 들이 사람들이 ‘재미’ 있어서 쓰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제품이 Painkiller입니까 Vitamin입니까?”
스타트업에서 ‘진통제’와 ‘비타민’의 비유는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입니다.
Origin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건 시카고에서 Red Rocket Ventures의 매니징 파트너를 하고 있는 George Deeb 이란 아저씨가 한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101 Startup Lessons: An Entrepreneur’s Handbook>라는 베스트셀링 책 저자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제가 좋아하는 프로듀스 101, 아이오아이 보다 한 4년 전 책입니다. 앞서갔던 조지 아저씨)
진통제는 없으면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필수제(Need to have)이고, 비타민은 있으면 좋은 (Nice to have) 제품을 의미함은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VC 들은 주로 당신의 제품은 어떤 Pain point를 공략하고 있는지 묻곤 합니다. 저 역시도 스타트업 대표님들께 그런 질문 많이 했었고요.
하지만, 오늘 느낀 바로는 꼭 그렇지는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Painkiller 제품은 진짜로 재미있는, 고객들이 스스로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는 제품은 절대로 만들 수 없을 수 있겠구나. 어쩌면 Vitamin 서비스들이 없으면 안 되는 중독적인 Drug가 될 수도 있겠구나.
게임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번 이유처럼,
‘어떻게 하면 고객이 미칠지, 재미있을지, 즐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서비스라면,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신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광하는 웹툰, 영화, 패션, MCN, 엔터테인먼트, 게임 산업처럼 말이죠.
a16z(Andreessen Horowitz)에서 파트너로 계시는 Chris Dixon 아저씨 (오큘러스, 버즈피드도 투자하시고, 우버 / 쿠팡에도 투자하셨네요)도 George 아저씨랑 다른 생각을 가감 없이 표출하셨습니다.
"There is a saying that entrepreneurs should create “painkillers not vitamins”. This is bad advice. Painkillers are not very interesting businesses. Lots of people create painkillers, and they either work or they don’t, and nothing more is generated as a result. The really interesting companies create vitamins. You don’t know you want ice until you figure out what to do with it. Once you do, you discover all sorts of things you couldn’t imagine before, which in turn create new opportunities for invention and entrepreneurship."
Bad advice 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Painkiller 제품들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데, 진짜 재미있는 것들은 Vitamins 제품들에서 나오고, 거기서 새로운 기회들이 창출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면 공자님 말씀과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Enjoy > Like > Know”
역시 옛말에 틀린 말이 없습니다. 즐겨야죠.
그래도 B2B나 기술기업들은 Painkiller제품인지 봐야 할 것 같고, Vitamin 제품이라고 한다면 고객이 미칠지 재미있어할지 투자자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투자는 정말 어렵네요.
근데 사업은 정말 더 어려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