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이 주는 즐거움
연필이 내게 주는 즐거움은 특별하다. 특유의 사각거리는 소리, 연필심이 종이 위를 미끄러질 때 느껴지는 미묘한 압력,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진동, 그리고 누르는 힘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농담은 다른 필기구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감성이다.
특히 힘주어 쓸 때의 진한 선과 부드럽게 흘러가는 곡선, 주저하며 남긴 희미한 자국까지, 연필로 쓴 글씨는 그때 그 순간의 내 감정과 상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것이 바로 연필이 주는 진정성이다. 그래서 연필과 종이의 만남은 내게 늘 즐거움을 준다.
글을 쓰다 실수했을 때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은 마치 인생의 작은 은유처럼 느껴진다. 실수하고, 고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종이에 남는 희미한 흔적들은 나의 내면과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연필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BLACKWING이라는 고급 연필까지 접하게 되었다. 이 연필 제조사에서는 그것을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월트 디즈니, 존 레논, 스티븐 킹 등 미국의 유명 문필가, 음악가, 화가들이 즐겨 썼던 연필로 소개하고 있다.
유명인들의 선택에 호기심이 생겨, 나도 이 연필을 구입해 몇 번 써보았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고 메모도 술술 잘 되는 기분!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연필도 한번 좋은 것을 써보니 이제는 일반 연필로는 돌아가기 어려울 듯하다.
"남보다 뛰어난 것은 고귀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고귀한 것은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다."
- Ernest Hemingway -
이 연필을 쓸 때마다 BLACKWING 연필을 즐겨 썼다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을 떠올린다. 남보다 뛰어나려 애쓰기보다는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는 것,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 진정한 고귀함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담으며 성장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식 경험은 점점 희귀해지지만, 그 가치는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한다. 디지털 기기와는 달리, 연필은 우리의 생각을 천천히 구체화하도록 이끌고,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내면과 직접 연결되는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도구가 내게 가르쳐준 삶의 지혜는 다른 어떤 디지털 기기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연필이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은 단순한 필기를 넘어, 나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내면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여정의 동반자가 되었다.
오늘도 이 연필로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해 가는 나의 흔적을 남겨본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글을 쓰며 반복되는 시행착오는 마치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다. 실수와 수정을 거듭하며 나는 조금씩 더 나은 글, 더 나은 생각,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