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아이의 '황소' 졸업을 축하하며

by Ryan Choi

드디어 아이가 황소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시작했으니 꼬박 만 3년의 세월이었다. 3년을 한결같이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부모인 나도 옆에서 지켜보며 잘 안다. 황소 이미지가 각인된 고급 샤프를 졸업 선물로 받아왔다. 그 작은 샤프 하나가 괜히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 3년의 치열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그 안에 담겨 있으니까. 나도 아이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런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무언가를 끝까지 해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스럽다.



사실 요즘 세상에서 '노력'이나 '열심'이라는 단어는 많이 퇴색된 지 오래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막힌 계층 간 이동, 높은 실업률. 이런 시대에 열심히 하자는 말을 꺼내면 촌스럽거나 순진한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노오력'이라는 비아냥이 생겨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시스템이 개인을 도와주지 못하는 시대에,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가혹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마음을 다해 애쓰는 사람들에게서 늘 자극받고 힘을 얻어왔다. 그래서 그 '노력'과 '열심'이라는 말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인상 깊게 읽었던 임경선 작가의 책 ≪태도에 관하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젊을 때 성실하게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일종의 기초 체력 쌓기 훈련 같은 거라서, 몸과 정신에 각인시킬 수 있을 때 해놓지 않으면 훗날 진짜로 노력해야 할 때 노력하지 못하거나 아예 노력하는 방법 자체를 모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한 경험 없이 자라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이건 최선이 아니었으니까'라며 스스로 도망갈 여지를 준다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결국 열심의 습관은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만드는 일이므로.


내가 생각하는 열심은 남들만큼 하는 노력이 아니다. 남들과 똑같이 하는 노력은 결코 '열심'이라 부를 수 없다. 남들보다 1분 1초라도 더 고민하고, 더 집중하고, 더 파고드는 시간이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그리고 20~30대의 나를 돌아보면, 그렇게 무언가에 몰입했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시에는 그것이 결실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절대로 절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살아남아 나를 돕고 또 도왔다.


황소가 각인된 샤프를 손에 쥔 아이를 보며, 나는 그 작은 선물에 담긴 의미를 오래 생각했다. 노력하면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나름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심히 하는 일은 주저앉아 세상을 원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이 한 문장을, 오늘 다시 한번 더 마음속 깊게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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