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12

일기

by 유성호Ryan YooAddict

팀동료가 보내준 뮤직톡을 들으며 출근하다, 오전시간 특유의 경부고속도로 역광에 눈을 찌푸리던 그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아, 오늘이 벌써...목요일이구나’

주말 육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했던 월요일이 좀 전 같은데. 마치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월요일에서 목요일로 점프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 며칠동안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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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마다 불량헬스 최영민 실장님에게 PT를 받는다. 한 주씩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번갈아 하다가 요새는 스쿼트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아직 예전 최대 1RM에 한참 못 미친 무게를 들어서 그런지 스쿼트가 힘들진 않다.


문제는 스쿼트 다음에 하는, 실장님이 ‘보조운동’이라고 부르는, 실제로는 메인운동 역할을 하는 파트가 죽을 것 처럼 힘들다.


매주마다 다른 메뉴로 하는데 - 어떤 날은 코어운동, 어떤 날은 상체운동, 어떤 날은 스트레칭. 종류가 달라져도 죽을만큼 힘든 건 달라지지 않는다.


보통 45초 운동-1분 휴식 5 set의 루틴이다. 이 때의 45초는 - 특히 3 set쯤의 - 정말 (과장을 허락해 준다면) 영겁과도 같은 기나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에 반해 1분의 휴식은 숨 한두번 쉬고 나면 지나가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도 시간은 불평등하게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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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번씩 하는 기년회의 질문 리스트가 있다. 회고를 좀 더 잘하는 2018년이 되길 바라기에, 기년회 질문 리스트를 1년 단위가 아닌 분기별로 채워보기로 결심했다.


그 첫 번째 시작인 1분기 회고를 하면서 좀 우울해 졌다.


새롭게 익힌 것, 새롭게 얻은 통찰, 새롭게 접한 것, 새로 생긴 좋은 습관..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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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 되면 이미 다음 주 일정은 다 차 있다. 개인적인 약속은 2주 후 기준으로 잡아야 겨우 넣을 수 있다. 일주일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한 피드백이나 답변은 주말에나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게 근본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건, 내가 지금 자각모드가 없는 상태로, Default Mode Network 상태로만 지내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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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적으로 볼 때 ‘성장’이란 뉴런끼리의 새로운 연결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받는 자극의 신선함과 강도가 이런 새로운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뉴런의 연결은 마치 근육의 성장과도 같아 새로운 종류와 강도로 자극을 받아야만 이루어진다.


이런 자극을 통해서 Default Mode Network을 벗어난 ‘자각모드’로 들어서기도 하고, 반대로 ‘자각모드’일 때 이런 자극을 만들거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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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 감명깊게 읽었던 ‘하루 2시간, 집중의 힘’이 새롭게 읽힌다. Distraction이 너무나 많은 현대 직장인의 삶에서 하루 2시간씩이나 자각모드를 만들어 낸다는 건 원래부터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요새 나처럼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과 어울려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제풀이 속에 사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어려운 과제인게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하루의 일정 시간 이상의 자각모드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 Default Mode Network상태로만 하루하루, 일주일일주일, 한달한달 지나가다 보면, 무척이나 바빠서 체력과 심력은 소진되고 정신없이 보내 시간은 저만치 멀리 달아나 있지만, 뒤돌아 보면 내가 뭘했지?라는 의문만을 남기는 삶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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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간이 금방 간다고 느껴지는 것은 위기의 징후다. 바쁘다고 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바쁘게 사는 것도 일종의 도피며 자기 위안이 될 수 있다. 나는 어쩌면, 매우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싫어서 '바쁨'의 커튼 뒤로 숨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얼마나 내 삶의 순간에 집중하고 있나. 하루 중 얼마의 시간동안 깨어있나. 성장을 위해서 얼마나 새로운 시도,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


이 질문들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책임있는 답을 마련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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