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스크린 뒤의 무단점유자들>

The Squatters behind the Screen (2024)

by 려한




도시의 아파트 한켠, 닫히지 않은 창문 사이로 비둘기 한 쌍이 둥지를 튼다. 그들은 방충망 뒤, 창틀 위라는 불안정한 자리에서 알을 품는다. 방 안의 인간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처음엔 낯섦과 놀라움, 그리고 ‘무단점유자’라는 단어를 친구에게서 메시지로 전달받지만, 어느새 그들의 시선과 숨결에 서서히 익숙해진다. 김민정 감독의 단편 <스크린 뒤의 무단점유자들>은 도시의 가장 작은 틈에서 피어난 공존의 가능성과 거리의 윤리를 탐색하는 다큐멘터리다.



경계 위의 시선

[메인] 스크린 뒤의 무단점유자들_스틸이미지1.jpg © 서울동물영화제

<스크린 뒤의 무단점유자들>의 제목 속 ‘스크린(screen)’은 방충망인 동시에 영화의 스크린이다. 김민정 감독은 그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인간의 공간과 비둘기의 공간, 관찰자와 피관찰자, 프레임(창문) 안과 밖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든다.


창문의 비둘기는 더 이상 낯선 침입자가 아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혐오의 범주에 있던 ‘도시의 무단점유자’를 향한 관찰에서, 점차 ‘타자의 일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으로 변한다. 알을 품고 교대하며, 나뭇가지를 물어오는 비둘기 한 쌍의 반복된 동작은 인간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평범한 몸짓 속에서 '생명'이라는 공통의 지속이 점차 보이기 시작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일상의 대화 리듬에서 두드러진다. 친구와 나누는 메신저 대화, 어머니와의 통화, 아파트 관리인의 무심한 조언까지. 인간의 말들은 비둘기의 존재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그 어떤 언어도 그들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다. “니가 범인인가 싶은가 보지 뭐.”라는 어머니의 말처럼, 인간은 언제나 판단하고 규정하는 범인의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카메라가 오래 머무는 순간, 우리는 그 경계를 인식한다. 방충망은 스크린이자 막, 보호이자 단절이다. 그 얇은 막을 통해 가능한 거리의 윤리, 그것이 이 영화가 포착한 공존의 진짜 형태다.



함께 머무는 방법

스크린 뒤의 무단점유자들_스틸이미지2.jpg © 서울동물영화제

영화의 마지막, 둥지는 부서져 있고 알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카메라는 그 자리를 오래 비춘다. 비둘기 한 마리가 계속 창가를 기웃거린다. 이제 창문은 닫혔고, 더 이상 비둘기는 그곳에 둥지를 틀 수 없을 것이다.


<스크린 뒤의 무단점유자들>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단순한 보호나 거부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스크린이라는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타자를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다. 창틀만큼의 공간을, 얇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보하는 일. 공존은 기꺼이 내 방에 들이는 일만이 아니라, 때로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함께 머무는 일일지도 모른다.



제8회 서울동물영화제

2025.10.28.(화)~ 11.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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