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본질, 권송희의 《소금》

수림뉴웨이브 2025 | 김희수아트센터

by 려한




12월 18일,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열린 '수림뉴웨이브 2025'의 마지막 무대는 소리꾼 권송희의 《소금》이었다. 변주와 확장을 거듭해 온 전통의 흐름 속에서, 그녀는 이번 공연을 통해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한다. 전통은 드러나기보다 스며들며 시간을 견뎌왔다. 권송희는 생명의 최소 단위이자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상징하는 소금의 은유를 빌려, 민요와 판소리의 결을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결합해 오늘의 감각으로 재구성한다. 이 무대는 전통을 새롭게 보이려는 선언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는 본질을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함께 살아지는 소리

_DSC0178.jpg 사진=수림문화재단 제공

공연은 <Play(소금)>으로 시작되었다. 1994년 첫 소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소리꾼 권송희의 음악적 정체성과 성장 과정을 샘플링으로 돌아보며, 개인의 시간과 집단의 기억을 겹쳐 올린다. 이어진 <화초사거리>에서 권송희는 관객 사이를 걸으며 소리를 펼치고, 이에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북장단과 정겹게 호흡을 나누며 함께 노래하는 모습으로 민요가 지닌 공동체적 성격이 생생히 드러났다.


<둥덩 애환>과 <달 넘세>에서는 삶과 시간이 축적되는 방식이 소리로 형상화되었다. 노동과 놀이, 생명을 가꾸며 시간이 교차하는 이 곡들은 여성의 역사와 경험을 함께 쌓아 올리며 지금 이 시대의 몸과 감각으로 다시 살아난다. 특히 <사이의 노래>는 이별과 상실의 기억이 샘플링된 목소리로 소환되며, 개인의 슬픔을 공동의 애도로 확장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눈사람>과 <만물>은 치유와 공동체 감각을 짙게 남긴다. 겨울을 견뎌내 봄으로 넘어가며, 땀과 노동을 품은 소리들은 궁중 제의에서 민중의 노래로 이어진다. 마지막 곡 <숨>에서는 신시사이저의 전자음향이 교차하는 앰비언트, 일렉트로니카 파형 위에 베틀노래가 얹어지며,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하나의 숨으로 엮인다. 점층적으로 쌓여 올려진 클라이맥스는 전율로 객석을 가득 채웠다.



스며들어 남는 결

_DSC9110.jpg 사진=수림문화재단 제공

권송희의 《소금》은 전통을 ‘새롭게 만들기’보다 ‘스며들기’에 가깝다. 소리는 현대적 감각으로 가공되고 확장되지만, 그 중심에 놓인 우리 음악의 생명성과 공동체 감각은 끝내 흐트러지지 않는다. 생명을 낳고 삶의 리듬이 달라진 이후, 그녀는 완벽함 대신 인내와 포용의 감각을 음악에 담아낸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무대는 강한 선언보다 오래 남는 울림으로 기억된다.


올해 수림뉴웨이브의 주제어는 ‘결’이다. 권송희의 결은 소금처럼,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아도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스며드는 결이었다. 무대가 끝난 뒤, 이미 소리는 사라졌지만 몸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결이 스며들어 남아 있는 듯하다. 시간이 흘러 변화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 아마 그것이 이 밤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깊은 흔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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