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 위에 띄운 배, 성휘경의 《용선가: Ludens》

수림뉴웨이브 2025 | 김희수아트센터

by 려한




11월 13일,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열린 ‘수림뉴웨이브 2025’의 다섯 번째 무대는 대금 연주자 성휘경의 《용선가: Ludens》였다. 전통음악의 선율과 음정체계, 장단의 호흡과 한배를 동시대적 감수성으로 엮어내는 그는 국가무형유산 강릉단오제의 양중으로 굿의 구조와 호흡을 음악적 언어로 확장해왔다. 용선(龍船)은 본래 신과 망자의 길을 안내하는 배이지만, 그는 이번 공연에서 그 배를 오늘의 관객에게 띄워 올린다. 우리 모두 고해(苦海)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마음속 압력과 버티며 쌓인 슬픔을 잠시 맡겨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배. 《용선가: Ludens》는 바로 그 배를 함께 띄워 보는 공동의 시간이자, 굿과 놀이가 서로 얽히는 현장이었다.



고해를 건너는 뱃놀이

_DSC4419.jpg 사진=수림문화재단 제공

첫 곡 <문>은 사방의 문을 열고 굿이 시작됨을 알리는 문굿을 기조로 한 양중의 천근소리로, 공간의 공기를 첫숨부터 바꿔놓았다. 성휘경의 대금 소리는 음마다 바람결이 흔들리는 듯 결이 살아 있어, 숨 자체로 문을 여는 느낌이었다. 악기를 내려놓고 울리는 목청은 낯설면서도 강렬했다. 그 울림이 객석 사이를 지나가며 몸의 한 부분을 꾹 눌러놓고 가는 기척이 분명했다. 이때, 이 공연은 대금 공연이 아니라 ‘의례적 현장’에 가깝겠다는 예감이 찾아왔다.


<부정: 신아위>에서는 공기의 결이 거칠게 흔들렸다. 크기가 다른 타악 두 개가 서로 다른 박자로 귓가를 두드렸고, 현의 떨림이 작은 불씨를 일으키듯 점차 커졌다. 부정을 씻어내기 위한 소리. 내쫓고, 긁어내고, 깊숙한 곳을 뒤지는 소리였다. 누군가 내 안의 먼지와 불안, 잔재를 일일이 훑어 정리하는 듯한 묘한 해방감이 있었다.


세 번째 곡 <드렁: 공명>에서 타악의 반복과 겹침은 웅장한 산세처럼 고조되며 객석을 압도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에게 닿을 만큼 거대하고, 흔들리고, 진동하는 소리. 그 음의 파동이 나를 괴롭히던 것을 조금씩 떼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들자, 그것은 신선한 공감이자 위로의 공명으로 다가왔다.


<용선가: 뱃놀이>에서는 음악과 놀이가 완전히 한 몸이 되었다. 선율이 그려낸 파도 위에서 관객은 작은 종이배를 흔들며 항해에 참여했다. 이때야말로 단지 공연이 아닌 ‘의례적 공동체’가 생성되는 순간이었다. 신을 실어 보내던 용선이 오늘만큼은 우리를 실어 나르는 배가 되었다. 감정의 무게가 물살처럼 흔들렸다가, 어느 순간 가볍게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미니어>는 지옥의 강 ‘비다라니’를 자유로이 드나드는 물고기 ‘미니어’처럼, 소리가 낮은 곳과 높은 곳을 빠르게 횡단했다. 선율이 자유롭게 솟구쳤다가 가라앉는 움직임은, 어떠한 경계라도 훌쩍 넘어가는 힘을 지닌 듯했다.



경계를 허무는 숨의 선율

_DSC5479.jpg 사진=수림문화재단 제공

성휘경은 연주자 중심의 창작을 통해 외연을 넓혀가며, 궁극적으로는 연주와 작곡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용선가: Ludens》는 악보로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현장에서 관객과 함께 완성되는 살아 있는 무대였다. 굿의 '청신-오신-송신' 구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전통이 의례에 머물지 않고 놀이로 확장될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올해 수림뉴웨이브의 주제어는 ‘결’이다. 성휘경의 결은 서로 다른 세계가 맞물릴 때 생기는 울림의 결이었다. 의례와 놀이, 신앙과 예술, 산자와 망자, 그리고 우리의 마음까지. 그 사이를 건너는 숨의 선율이다. 공연장을 나서는 길, 마음 한쪽이 묘하게 가벼웠다. 잠시라도 용선 위에 올라탔기 때문일까. 함께 고해를 건너는 밤을 지나온 덕분일까. 성휘경의 용선은 또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그의 다음 뱃머리가 향하는 곳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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