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눈

by Ryeonny

다리를 다친 후 새로운 눈이 떠졌다.

지도어플에 나오는 5분 거리가 이렇게 멀고 오래 걸릴 줄이야. 아프지 않은 발을 힘차게 한 걸음, 그다음 아픈 발을 살포시 디디며 걸었다.


느리게 걷다 보면 자꾸 사람들이 뒤에서 나타나 나를 지나쳐간다. 사람들은 그냥 제 갈길을 갈 뿐인데 괜히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응시하기도 했다.


출근길에 지하철 열차가 막 들어오려고 하는데 내려가야 하는 계단이 아득했다. 원래라면 빠른 걸음으로 쏜살같이 내려가 여유 있게 탔을 텐데. 조심조심 아기가 계단을 걷듯 내려가니 한 세월이었다. 당연히 열차는 떠났다.


깁스가 출근길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줄까 봐 눈치 보이고 미안한 마음과 배려를 바라는 이기적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열차를 타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빨리 걸은 걸까, 유난히 발목이 더 시큰했다.


타고나서 두 세정거장 갔을까, 어떤 여자분이 일어서서 지하철 문 앞으로 갔다. 얼른 앉았다. 혹시 그 여자분이 나 때문에 일어난 걸까. 흘끔흘끔 뒷모습을 쳐다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내리지 않고 자리를 옮겨 계속 서서 갔다.


자리를 뺏은 기분이 들었다. 속으로 하필 자기 자리 앞으로 다리 다친 사람이 와서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왜,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고 무언의 배려를 해서 고맙단 말도 못 하게 하는 거지?

출근길 지하철, 양보받은 자리에 편하게 앉아가는 주제에 씩씩대며 눈물을 마구 흘렸다.


요 며칠 동안 마음속에 부정적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한계까지 찰랑거렸다.


다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배려받고 싶어 하는 내 마음도, 배려받아도 미안하고 눈치 보이는 모든 상황들도.


다 싫었다.


가만히 앉아 몇 정거장 갈동안 눈물을 줄줄 흘리니, 눈물과 함께 마음의 독소들이 빠졌다.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온전한 고마움이 떠올랐다.


출근길에 부담 없이 ‘내리는 척’ 자리를 비켜준 그분께 고마웠다. 전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배려할 때 슬그머니 티 내지 않고 해 왔다는 걸.


이번에 고마움을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껴보니, 조금은 티를 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다리가 다쳐서 걸음이 느려지고 불편해진 덕분에 비로소 보이게 된 것들이 있다.


평소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계단이 누군가에겐 아득할 수 있다는 것, 말없이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





다리 다치고 보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너무너무 많은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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