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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AI 시대의 창작 열기와 저작권

by 류영호

AI를 활용한 창작은 우리 일상에 더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근 오픈AI가 출시한 ‘챗GPT-4o 이미지 제네레이션’ 모델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모델은 사용자가 업로드한 사진을 심슨, 스머프, 레고 같은 유명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변환하는 기능으로 출시됐다. 그중에서도 일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설립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이미지를 변환하는 기능이 사용자들 사이에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기능이 출시한 이후에 챗GPT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오픈AI의 서버는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 샘 올트먼 대표는 자신의 엑스(X) 계정을 통해서 “사람들의 챗GPT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행동은 재미있지만,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그래픽처리장치가 녹아내리고 있다.”라고 하면서, 이미지 생성 기능 사용량에 제한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작년에 유명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도쿄도 동정탑>의 구단 리에 작가가 최근에 챗GPT로 95%를 쓴 소설을 출간해서 화제를 모았다. 작년에 수상 기자회견에서 “작품의 일부에 생성형 AI인 챗GPT로 만든 문장을 사용했고, 작품에서 해당 문장이 사용된 곳은 작중 인물들의 질문에 대해 AI가 답변한 부분이고, 이는 전체 분량의 2% 정도 차지했다.”고 밝혔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작품을 읽어보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수준이다. 완성도가 높은 편이라서 단점을 찾기 어려웠다.”라고 하는 등 호평을 보였다. AI 활용 소설이 화제를 모으면서 대형 광고회사가 구단 리에 작가에게 95%를 AI가 쓰는 작품을 써보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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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실린 신작 소설의 제목은 <그림자의 비>다. 인류가 사라진 뒤 세계에 남겨진 AI가 인간의 기억과 감정의 흔적을 접하면서 ‘감정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탐구한다는 내용의 단편 소설이다. 최초의 테마 설정이나 스토리 전개 구조는 모두 AI에 맡겼다. 작가는 AI에 의견을 내거나 방향성을 지시하면서 집필해 나갔다. 총 집필 기간은 2주 정도 걸렸다. 잡지에는 이러한 제작 과정의 일부도 공개되고 있다. 구단 리에 작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고, 생성형 AI와의 공동 작업이라는 의미에서 소설의 완성도에 만족한다. 인간이 허구를 상상하는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학술 출판사인 테일러 앤 프랜시스(Taylor & Francis)는 사람이 번역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자원에 비해 독자층이 너무 적다고 판단되는 언어의 책을 영어로 번역할 때 AI를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기술의 실행 가능성을 평가하고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1년간의 엄격한 테스트 프로그램을 거친 후 내려진 결정이라고 출판사는 설명했다. 모든 AI 번역 원고는 출판 전에 편집자와 책 저자의 사본 편집 및 검토를 거치며 일반적으로 인쇄본과 전자책 버전으로 출간된다. 출판사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된 작품을 수락하고 포괄적인 어휘집을 사용해 AI에 기술 용어를 훈련시켜 의미의 정확성을 유지한다.


출판사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인해 저자가 제안서를 제출하기 전에 번역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져 사전 비용이 절감된다고 주장했다. 출판사는 이를 통해 저자의 영향력이 커지고 새로운 연구 협업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했다. 테일러 앤 프랜시스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포함한 AI 회사에 교육을 위해 저작물을 라이선스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최초의 출판사 중 하나다. 현재 AI를 사용하여 영어로 번역하려는 작품에 대한 번역권을 보유하고 있는지, 해당 작가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타이틀을 포함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출판사 관계자는 번역된 타이틀의 대부분은 지역 출판사에서 원래 언어로 이미 출판된 책일 것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번역가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는 작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테일러 앤 프랜시스의 소식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사이먼 앤 슈스터(Simon & Schuster)가 인수한 네덜란드 출판사 빈 보쉬 앤 케닝(Veen Bosch & Keuning)은 AI 번역을 실험하고 있다. 2024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사이먼 앤 슈스터의 CEO 조나단 카프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빈 보쉬 앤 케닝의 프로젝트는 오디오 분야에서 정말 혁신적이었다. 그동안 오디오 콘텐츠 개발, 팟캐스트 제작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해 왔다. 번역 부분은 AI가 발전함에 따라 번역이 더 쉬워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 외에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지만, 모든 출판사에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외 중대형급 출판사를 중심으로 AI 활용에 대해 거부감보다 기대감이 더 높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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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의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타일 이미지가 온라인 공간에서 급증하면서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바로 제기되었다. 오픈AI가 이미지 생성 모델 훈련을 위해 사전 협의 또는 계약 없이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을 무단으로 학습시켰다면 저작권 침해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Forbes)는 “오픈AI가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분야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AI가 모든 창작 분야를 황폐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지브리 스튜디오는 챗GPT의 저작권 침해 논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과거에 NHK 방송에서 AI에 대해 “삶에 대한 모독이다. 이 기술을 내 작업에 쓰고 싶지 않다.”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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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창작이 본격화하면서 저작권 논란은 더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도안이나 화풍을 아이디어 영역으로 평가했다. 이를 저작권으로 인정하게 되면 인류의 창작 및 작품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아이디어는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아이디어를 창작적으로 표현한 것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라고 한다. 즉, 저작권법은 스타일과 콘셉트가 반영된 구체적인 개별 작품을 보호했고, 작품과 구체적인 장면이 유사하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로 간주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With AI’ 시대에 합법적인 학습과 훈련 데이터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인 빅테크(Big Tech) 기업들이 거대 AI 모델을 상업화해서 창출하는 이익과 기업가치 제고에 비해 원작자와 데이터 공급자에게 제공되는 보상 규모와 체계는 개선해야 할 과제가 많다. 최근 해외의 여러 유명 작가와 출판사에서 창작물과 도서 데이터에 대해 AI 학습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AI 창작은 계속해서 발전하겠지만, 투명성과 공정성을 배제한다면 머지않아 혼돈의 시대로 들어갈 것이다. 이제 속도보다 방향과 균형을 잘 잡는 것이 AI와 인간의 공존을 만드는 핵심 키워드다.


※ 참고자료

<The AI-Generated Studio Ghibli Trend, Explained>, forbes.com, 202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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