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점의 미디어화, 팬덤화, 그리고 유통 구조의 재정의
일본 유린도(有隣堂) 서점의 유튜브 채널 <有隣堂しか知らない世界(유린도 밖에 모르는 세계)>(약칭 '유우세카')은 2020년 개설 이후 단순한 홍보 창구를 넘어, 서점이 스스로 미디어가 되고 팬덤을 만드는 구조를 완성해 낸 대표적인 사례다. 2025년 11월 기준, 구독자 46만 명과 누적 조회수 1억 회 이상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인 기업 홍보 채널로 설명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이 채널의 핵심은 ‘광고’가 아니라 ‘편애’다. 서점 직원이 실제로 좋아하는 것(특정 문구류, 실험용 티슈, 지역 잡화, 심지어 서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물건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도서 정보 전달보다 직원의 열정·솔직함·지적 호기심이 콘텐츠의 기준이다. 이 접근법은 시청자의 신뢰를 형성하고, 유린도라는 브랜드를 하나의 친밀한 커뮤니티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단순 조회수보다 시청 지속시간, 댓글 참여, 팬덤 형성 같은 지표가 중요해졌고, 이는 장기적 브랜드 자산으로 축적되었다.
이 채널의 독특한 점은 미디어 콘텐츠가 직접 판매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데 있다. '라이브 커머스'라 부를 수 있는 일련의 기획들은 일본 서점업계에서도 전례 없는 판매 데이터를 만들었다. 대표적 사례가 2025년 3월 진행된 ‘아라빅 야마토 액체 풀’ 라이브 판매다. 이 방송은 “액체 풀을 1시간 동안 몇 개 팔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콘셉트로 진행되었지만, 사전 소개 콘텐츠와 SNS 예고, 라이브 한정 스티커 특전, 실시간 매진 카운트다운 구조를 통해 1시간에 5,678개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는 유린도의 전 점포 연간 판매량(2,800개)의 두 배를 넘는 기록이다. 제품의 기능보다 '라이브에 참여했다'는 팬덤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소비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채널의 프로듀서 하야시 유타카의 첫 저서 라이브에서도 재현됐다. 2025년 5월, 책 출간 기념 라이브 방송에서 1시간 동안 2,286부의 예약 판매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초판 부수는 7,000부에서 9,000부로 상향되었다. 이는 가격 할인 없이 라이브 한정 오비(띠지)와 스티커 같은 ‘참여의 증거’를 부여한 기획이 구매를 끌어낸 것이다. 어린이 도감이나 스케치북을 판매한 라이브에서는 방송 시작 수 분 만에 5,000권이 매진되는 사례도 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상품들이 원래 어린이 타깃임에도 실제 구매를 이끈 사람들은 30~40대의 채널 팬덤이었다는 점이다. 즉, 상품 자체의 효용보다 “채널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구가 구매 동기를 형성했다.
이러한 팬덤 기반 판매는 온라인에서 끝나지 않고, OMO(Online Merges with Offline) 전략으로 오프라인 점포 매출을 직접 끌어올렸다. 2024년 24시간 생방송 이벤트에서는 4,000명의 방문객이 점포를 찾았고, 해당 행사만으로 약 850만 엔의 매출을 올렸다. 2025년 5주년 '10시간 생방송' 이벤트에서는 특정 점포 매출이 전년 대비 300% 상승하며, 유튜브 채널이 점포 매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명확히 드러났다. 라이브 방송과 오프라인 이벤트가 결합되면서, 서점 방문이 단순 소비가 아닌 커뮤니티 체험으로 재정의된 것이다.
이 모든 성과의 기반에는 내부의 운영 조직 설계가 있다. 유린도는 유튜브 채널 운영을 마츠노부 켄타로 대표의 산하 디지털 크리에이티브팀이 맡도록 구조를 분리했다. 단순 마케팅 부서의 확장으로 두지 않고, 독립된 미디어 조직으로 설정한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었다. KPI도 단기 조회수나 구독자 증가보다 "장기적 팬덤”, “브랜드 신뢰”, “콘텐츠 지속 시청력” 같은 질적 지표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사내에서 억지로 구독을 늘리는 방식은 철저히 배제하고, 외부 팬덤의 자연적 성장을 우선시했다. 실제로 유튜브 채널의 폭발적 성장은 내부보다 외부에서 먼저 일어났고, 이 후광 효과가 사내 인식을 변화시키며 조직적 지지를 강화한 구조가 되었다.
유린도의 성공 모델은 우연적인 콘텐츠 히트가 아니라, 4가지 구조적 축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첫째, 유린도는 서점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미디어로 전환했다. 회사 내부에 디지털 크리에이티브팀을 두고, 직원이 직접 출연하고, 캐릭터 "R.B. 북코로"를 통해 콘텐츠의 고유 세계관을 만들었다. 이는 단순 홍보가 아니라 ‘서점이 스스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조직’으로의 전환이며, 유린도 공식 사이트에서도 해당 조직 구조와 채널 운영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ブッコロー(북코로)”는 일본어로 “부엉이(フクロウ = 후쿠로우)” + “Book” 의 조합에서 만들어진 유머러스한 네이밍. 즉, 캐릭터 자체가 "책을 사랑하는 부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
둘째, 유린도의 콘텐츠는 팬덤화되었다. 유린도는 자사 채널 구독자를 '유린치(ユリンチ)'로 부르는 팬덤 문화를 형성했으며, 라이브 방송이 단순한 판매 방송이 아니라 ‘참여 경험’ 그 자체가 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필요해서 사는 소비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기 위해 구매하는 팬덤 소비로 전환되며, 이는 유린도 채널의 코멘트·참여 패턴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셋째, 유린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자연스럽게 OMO 구조로 결합했다. 유튜브 라이브가 단지 디지털 콘텐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장 방문, 한정 굿즈 구매, 팬 참여 행사로 이어지면서 오프라인 매출 상승을 일으킨다. 유린도는 자사 공식 사이트에서 여러 차례 생방송 연계 이벤트와 매장 방문 증가를 공지 형태로 공개해 왔고, 대형 라이브 이벤트가 오프라인 집객으로 이어진 사례도 다수 있다.
넷째, 유린도의 유튜브 운영은 단기 매출 중심이 아니라 브랜드 자산화 전략에 기반해 설계되었다. 유린도는 채널 5주년 공지에서 “유우세카는 서점 브랜드의 장기 자산으로 기능한다”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했다. 즉, 콘텐츠와 라이브가 단기 판매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점의 브랜드를 전국 단위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는 명확한 전략적 철학을 가지고 운영해 온 것이다.
결국 이 4가지 축은 서점의 미디어화 → 콘텐츠의 팬덤화 → 디지털과 오프라인의 통합 → 브랜드 자산의 축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유린도의 미디어와 커머스 확장은 이 순환 구조에서 발생한다. 서점이 미디어로 기능하니 팬덤이 생기고, 팬덤이 오프라인 매출로 연결되며, 이러한 경험이 다시 브랜드 자산을 강화해 다음 성장의 기반을 만들었다. 유린도는 단순히 유튜브가 잘 된 서점이 아니라, 서점의 역할·가치·정체성을 미디어·커뮤니티·경험 중심으로 재정의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유린도의 유튜브 채널과 OMO 모델은 일본 서점 시장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유린도 사례는 한국 서점·출판업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책은 이제 단순한 정보 전달물이 아니라, 콘텐츠·커뮤니티·참여 경험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서점은 더 이상 책을 진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팬덤·미디어가 결합된 복합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도서 판매는 물론 커뮤니티 구축, 굿즈·문구 판매, 오프라인 체험 강화까지 확장될 수 있다. 핵심은 "라이브 방송을 한다"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서점이 팬덤을 형성할 것인가,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어떤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축적할 것인가에 있다.
유린도는 콘텐츠의 방향성, 조직적 실행력, 팬덤 기반의 판매 구조, 서점이라는 공간의 재해석을 통해 이를 실제 사업 성과로 연결했다. 그 결과 “서점이 미디어가 될 때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하는 사례로 자리 잡았고, 이는 한국 서점·출판 구조가 새로운 전환 방향을 설계할 때 참고해야 할 중요한 벤치마킹 지점이 되고 있다.
[참고자료]
2. https://prtimes.jp/main/html/rd/p/000000063.000135515.html?utm_source=chatgp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