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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Nov 18. 2020

그 외국인의 필수품, 이어폰

한국생활 24년 차 외국인의 일화

음악 좋아하는 나에게 이어폰을 필수 아이템이다. 지하철이나 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이어폰이 큰 역할을 한다. 세상 소리를 차단하고 귓속에 마음에 드는 멜로디를 들려준다. 바깥소리를 차단하고 음악을 들려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이어폰의 역할이다. 


과거의 나에게 이어폰은 안정감을 주는 역할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면 '넌 외국인이야.'라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두 눈은 '넌 외국인이야' 소리를 보게 되고, 두 귀는 '외국인이다.'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를 보고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썼다. 이어폰은 듣기 싫은 소리를 차단하는 존재였다. 


이어폰을 처음 사용하게 된 계기는 Mp3를 얻을 때부터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Mp3를 따로 가지고 있어야 어딜 가도 신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두 귀에 이어폰을 꽂는 순간 세상의 잡음이 사라지고 음악이 흘렀다. 그래서 좋았다.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차가 빵빵거리는 소리, 길거리에 흘러가는 광고 소리, 비둘기가 푸드덕거리는 소리 등 거슬리는 소리를 막아주기 때문에 이어폰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이어폰 사랑 때문에 엄마에게 혼났다.


"음악 듣다가 나중에 교통사고 당하면 어쩔래?"


인정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이어폰 써서 세상 목소리를 차단하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과거의 나는 교통사고보다 현실의 소리를 차단하는 것이 더 시급했다. 바깥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사고를 당할 것 같았다. 내가 이어폰을 빼는 순간.


'넌 외국인이야. 넌 외국인이야. 넌 외국인이야.'

'여긴 너의 세상이 아니야. 여긴 낯선 곳이야.'


이런 소리가 여기저기 울린다. 물론 영화처럼 이상한 소리들이 내게 속삭이는듯한 현상이 일어난 건 아니다. 지나가는 현지인이 나를 보는 시선, 태어난 곳과 다른 건물, 태어난 곳과 다른 소리 등 고향과 다른 모든 것이 나에게 '여긴 네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만 들리는 이 소리는 어릴 때 공포스러웠고 청소년 시절에 매우 거슬리는 소리였다. 밖에 나가서 "어, 외국인이다." 소리를 들을 바에 기분 좋은 음악 하나 더 듣는 게 낫다.


지금 밖에서 들리는 사람 소리는 그냥 사람 소리, 도로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냥 자동차가 다니는 소리로 들린다.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나를 발견하고 속으로 '어, 외국인이다.' 하면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가거나 '네, 외국인입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내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떤 바깥소리를 들어도 별 상관없다. 오히려 내가 그동안 무시했던 바깥소리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빼기도 했다. 지금은 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넌 외국인이야'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 '응, 알아.'로 받아친다.


과거의 나에게 이어폰은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 존재가 아닌 불완전한 내 세상을 지켜주는 존재였다. 이어폰이 사람이었다면 그런 말을 하고 싶다.


"강하지 못했던 나를 음악으로 지켜줘서 고마워."


저번 주에 자주 사용했던 이어폰이 고장 났다. 그래서 3일 정도 이어폰 없이 살았다. 새로운 이어폰을 받기까지 2일 정도 기다려야 되는데 예전의 나였으면 그 소식을 듣고 기겁할 것이다. 현재의 나는 3일 동안 이어폰 없이 살아도 상관없다. 밖에 가면 사람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자동차 소리를 음악을 삼고 걸어 다니지 뭐. 지금 그 소리들은 잡음이 아닌 현실 음악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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