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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Nov 19. 2020

외국인 어린이의 바다쓰기

외국인 어린이가 받은 이상한 과제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어났던 일이었다. 선생님이 하얀색 분필을 들고 난생처음 보는 말을 적었다. 난 칠판에 적힌 단어를 알림장에 옮기면서 속으로 읽었다.


'받아쓰기 준비.'


내가 '바다'와 '쓰기', 그리고 '준비'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 세 단어의 조합이 가진 의미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바다를 쓴다. 바다를 준비하다. 바다를 써서 준비하라고?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내가 알고 있는 단어 속에 다른 뜻이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애들아, 내일 바다 쓰기 준비!"


선생님이 당당하게 바다를 종이에 써오라고 했다. 더 웃긴 건 반 친구들이 '네!'라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반 친구들이 준비할 수 있다면 나도 준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엄마! 이상해! 학교에서 바다를 써오래! 그리고 그걸 내일 가져오래!"


나는 엄마에게 학교에서 받은 이상한 과제를 말했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내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국 혼자서 바다를 써오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넓은 바다를 가지고 공책 한 장에 넣을 수 없다. 종이를 가지고 바닷물을 담으면 종이가 구겨지면서 사라진다. 


'어떻게 하면 바다를 가져와서 공책에 쓸 수 있지?'


바닷물을 종이에 담을 수 없으니 대신 조개를 가져올까. 아니면 불가사리를 가져올까. 바다 대신에 한강은 가능할까. 한강이라면 아빠와 함께 갈 수 있는데. 나는 이러한 걱정을 저녁까지 했고 잠을 잘 때까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바다쓰기의 정체를 보고 경악했다. 바다쓰기가 아니라 받아쓰기였다. 선생님이 칠판에서 '받아쓰기'를 적었던 그 날, 난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기'라고 알림장에 썼다. 받아쓰기와 바다쓰기의 발음이 똑같아서 '받아'를 '바다'로 오해했다. '받아쓰기 준비'가 내일까지 바다를 종이에 담으라는 뜻이 아닌 국어책에 나오는 문장들을 가지고 시험 보겠다는 뜻이었다.


반 친구들이 글을 쓰면서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 동안 난 바다를 가져오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난 받아쓰기 0점을 맞게 되었고 날 안타깝게 여긴 선생님은 방과 후 다시 시험을 보자고 제안했다.


바다쓰기 사건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될 귀엽고 안타까운 사건이 될 거다. 한글에 익숙하지 못해서 받아쓰기를 바다쓰기로 잘못 이해했고 그것이 웃긴 고생으로 이어졌다. 만약 부모님을 조르고 정말 바다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진짜 바다에 갔다면 이 추억은 내 인생의 레전드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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