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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Apr 13. 2024

화내지 않고 이기기 위해

싸구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며칠 전 헬스클럽에서 있었던 일이다. 보통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운동을 하러 가는데, 그 시간에는 50대나 60대 등 연령이 좀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거의 매일 같은 시간대에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인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얼굴 정도는 아는 고정 멤버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일단 몸을 풀기 위해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창가에 있는 러닝머신은 검은색인데다 발을 딛는 부분이 햇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설마 그 비어 있는 러닝머신이 작동 중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러닝머신 위에 물병이나 핸드폰 같은 소지품이라도 올려져 있었다면, 누군가 운동하는 중이겠거니 생각하고 당연히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텅 비어있는 러닝머신 위로 힘차게 발을 딛는 순간, 나는 그대로 앞으로 크게 고꾸라졌다. 멈춰있는 줄 알았던 러닝머신이 빠르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는 정말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운동하던 아줌마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다가와 괜찮느냐고 물어봐 주었다. 다행히 얼굴은 부딪치지 않았고 팔꿈치와 무릎이 까져 피가 나는 상황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물병과 안경, 핸드폰도 거의 날아가다시피 떨어졌지만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어떤 아주머니를 향해 큰 소리로 나무라셨다. "그러게 러닝머신을 다 썼으면 꺼놔야지! 내 누구 하나 다칠 줄 알았다!"


그날은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아서 대충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 채 운동을 마쳤다. 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온몸의 근육통이 생기며 몸이 아파왔다. 덕분에 이틀 정도는 운동을 가지 못하고 푹 쉬었다. 


러닝머신에서 넘어져 다쳤던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그 아주머니가 결국 사고를 쳤구나'라는 생각과 '그래도 내가 다쳐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이상하게도 전혀 화는 나지 않았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는 같은 시간대의 고정 멤버였기 때문에 누가 러닝머신을 습관적으로 켜놓았는지 대번에 알았다. 늘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화려한 파마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채 열심히 운동하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범인(!)은 자신이 아니라고 딱 잡아뗐다. CCTV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을 테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첫째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소중한 기분과 에너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을 다그쳐서 사과를 받는다고 내가 다친 게 없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둘째로, 그 주황색 티셔츠 아주머니가 너무나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이후 러닝머신을 켜놓은 채 쉬는 습관을 완전히 고쳤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셋째로, 이 부정적인 사건에서 빨리 벗어나 다시 평온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작은 일을 크게 만들어 헬스클럽에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남편은 평소 같으면 불같이 화냈을 내가 너무나 평온하게 넘어가자 혹시 머리를 다친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늙어서 이제 화낼 기운도 없다'고 답해주었다. 


일순간 내 성격이 온화해졌다고 말하는 것도, 화낼 수 있는 일에 화내지 않았다고 자랑하려는 글도 아니다. 이 작은 사건을 겪으며, 그동안 자그마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 했던 나의 과거들이 참 부끄러워졌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 


나도 때때로 강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대부분 화가 나거나, 불쾌하거나, 억울하다는 감정일 때가 많다. 강렬한 기쁨이나 행복같은 긍정적인 감정에는 '휘둘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잔잔하고 충만하게 마음이 차오를 뿐이다. 반면 분노나 비난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확실히 휘둘린다는 느낌이 있다. 이성적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날카로운 말과 충동적인 행동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기 때문이다. 


불같이 화를 내면 가장 상처를 입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한번 불이 붙은 분노는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그 대상이 되는 사람만 보면 화가 치밀고, 그 화는 결국 내 마음을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정작 상대방은 큰 타격이 없(을 수도 있)는데, 화를 내는 나 스스로의 귀한 시간과 에너지만 소진하는 꼴이 된다. 한번 치닫기 시작한 부정적인 감정은 내리막길과 같다. 방향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슬프지만, 나는 주로 부모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정말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이지만 두 분은 평생을 싸우며 살고 계신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양쪽 다 옳고, 양쪽 다 그르다. 누구도 먼저 화를 터뜨리는 일과 상대방에 대한 비난, 자기 연민을 멈추질 않는다. 먼저 멈추면 지기라도 하는 걸까?


상대방을 비난하고 화를 터뜨려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그 사람은 이긴 걸까? 본인만 모를 뿐,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조용히 참아주고 넘어가 준 사람들이 더 약하기 때문도 아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서, 싸구려 감정에 휘둘림 당하기 싫어서, 더러운 꼴 당하기 싫어서 피할 뿐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도 20대, 30대에는 날카롭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았던 것 같다. 무시 당할까봐, 어리숙하게 손해 볼까봐 미리 자기 방어를 하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약간 더 손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사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구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타인에게는 좀 더 너그럽고 친절해도 괜찮다는 이야기이다. 주어진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주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 기준에서 선량하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을 준다. 


일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신이 몸담은 업계에서 어떤 이의 인품이나 실력 같은 것들은 굉장히 빠르게 소문이 난다. 조금 빨리 알게 되느냐, 늦게 알게 되느냐의 정도일 뿐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 알게 된다. 자격증이나 학력은 오히려 '입문'을 위한 기초적인 것에 가깝다. 외모나 학벌, 집안 배경 같은 것들도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국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한결같은 프로의 실력과 평온한 인품을 갖춘 사람, 일을 맡기면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 말을 함부로 옮기지 않는 사람, 남을 깎아 내리지 않는 사람, 쉽게 화를 내지 않고 부정적이지 않은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젊었을 땐 조금 세련되지 않고 투박해보일 수 있어도, 일정 기간 바보같고 초라해보일 수 있어도, 심지어 '호구'같이 보일 수 있어도, 결국에는 이긴다. 이기는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 주변에는 그와 같이 좋은 사람들만 남는다. 자신의 자아상과 일치하는,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는 진실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게 강한 척 하지 않아도 된다고, 손해보지 않으려 하나하나 따지지 않아도 된다고, 따스히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믿어도 된다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물론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을 등쳐 먹으려는 나쁜 이들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자. 굳이 내가 대응하지 않아도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끼리 아웅다웅 살아갈 것이다. 앙갚음도, 비아냥도, 질투도, 모두 내 기운을 나쁘게 만드는 행위일 뿐이다.


부정적인 사건이나 사람에 일일이 신경쓰며 살기엔 내 인생이, 나 자신이, 내 꿈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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