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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Jan 14. 2020

권력은 달콤하다

편법을 써서라도 가지고 싶을만큼

30대 초반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 임원으로부터 이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참석하고 있는 친목 모임이 하나 있는데, 한번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모임의 멤버들이 얼마나 유능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인지를 굉장히 강조했다.


자신과 같은 외국계 기업의 임원, 방송사 간부, 의사, 회계사, 금융권 회사 임원 등 모두 잘 나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니 한번 얼굴 비춰두고 알아두면 두고두고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예의바르게 거절했다. 그러자 와인 마시는게 부담스러우면, 잠깐 들러서 저녁만 먹고 가라고 했다. 괜찮다고 거절하니, 그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니나씨, 인생을 그렇게 비좁은 시각을 갖고 살면 안돼요. 좀더 마음을 열어봐요. 앞으로 니나씨가 그 사람들한테 도움받을 일 없을 것 같아요? 한 명이라도 알아두면 두고두고 도움 될 일만 있지, 나쁠 건 하나도 없어요. 모든 건 인맥으로 이루어지는 거거든."


그러면서 나와는 달리, 그 자리에 꾸준히 동행했던 한 계약직 직원이 그 모임의 방송사 간부 눈에 들어, 모 방송사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당시 나는 금융권으로 가고 싶어서 알아보는 중이었는데, 그 자리에 금융권 기업 임원들도 있으니 인사해두라는 이야기였다.


끝내 거절하니, '니나씨는 정말 순진하네.. 세상을 참 모르네..' 라며 안타깝다는 듯이 돌아섰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순진한 건 당신들인 것 같네요. 그들끼리 와인 많이 드세요..'


이 이야길 여자 지인과 남자 지인에게 각각 해줬더니, 반응이 상당히 달랐다. 여자 지인들은 대부분 깜짝 놀라며 불쾌하다고, 왜 그런 자리에 아무 관련 없는 여직원을 동석하려고 하냐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남자 지인들은, 그래도 어떤 자리인지 모르니 한번 정도는 참석해보지 그랬어? 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것 역시 상당히 흥미로웠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나는 그 당시 나의 결정을 칭찬해주고 싶다. 그냥 간단히 생각해봐도, 그 자리에 나를 어떤 신분과 역할로 데려가는 것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냥 '미혼'의 젊은 '여'직원 신분으로 가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냥 까놓고 말하면, 성공한 중년 남자들의 술자리에 '꽃'같은 존재가 필요할 뿐이다. 자신들의 권력과 위치를 은연 중에 드러내며 과시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 자리에서 인맥을 쌓고 네트워킹을 하고? 처음부터 대등한 관계가 아닌데 그런게 가능할까? 솔직히 듣는 순간 굉장히 불쾌하고 기분 나쁜 제안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내가, 나중에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한번 쯤은 따라가 봄직도 한데, 그런 생각도 안 들만큼 기분이 매우 나빴다. 왜 그랬을까?


첫번째로는, 회사의 임원이라는 권력을 지닌 사람이, 나를 그런 눈으로 보았다는 것이 참 실망스러웠다. 회사는 내게도 아주 중요한 존재였고, 어렵고 힘들게 이직해서 들어간, 생계가 걸린 직업이었다. 나는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실력으로 온전히 존중받고 싶었는데, 고작 이런 제안이나 들어야 한다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제안이었다.


두번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그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려 하는 모습이 너무 불쾌했다. 노골적으로 한 방송사의 취업 성공(?) 사례를 미끼로 얘기한다는 것은, 자신들도 알고 있다는 것 아닌가. 내가 이 정도의 파워가 있으니, 나한테 잘 보이면 좋을거야. 나쁠 거 없을거야. 잘하면 좋은 자리로 연결해줄게. (대신 같이 와인도 마셔주고, 잘 웃어주고, 연애 비슷한 감정 느낄 수 있게끔 분위기도 좀 조성해주고...?)


권력은 달콤하다. 나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대단한 권력까지 가져보지 않아도, 정말 아주 작은 권력 비스무레한 것만 가져도 사람은 달라진다. 어렸을 때 반장, 부반장만 해봐도, 아파트 동 대표만 맡아보아도, 회사에서 사원을 떼고 대리 직급 하나만 달아도... 사람은 달라진다.


나도 회사에서 여러 업체들과 함께 진행하는 업무들이 많았는데, 업무 성격 상 갑의 위치일 수 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 업체들을 약간 부하 직원처럼, 약간 거만하게 대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런 것에 한번 젖어들면, 회사가 준 직급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하면, 이상한 착각에 빠져버리게 되고 사람이 참 이상해지는 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어떤 달콤한(?) 제안을 받게 된다면, 그 제안의 저의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내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누군가에게 접근한다면, 나 역시도 그에게 비슷한 가치의 어떤 것을 줄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


소위 '갑질'하는 인간이 나는 제일 싫다. 이번에 모 연예인 사건을 보면서도, 그들의 사생활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톱스타'라는 권력은 참 잘도 이용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가진 유명세와 권력을 고작 그런 곳에 쓴다는 것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지도 새삼 느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권력'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권력. 일을 골라서 할 수 있는(!) 권력. 누구에게도 대체되지 않을, 나만의 고유한 실력과 개성과 색깔을 갖춰서, 고용주에게 '적당히' 휘둘리면서 일할 수 있는 권력(?)...을,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꿈꿔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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