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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Jan 07. 2020

며느리는 과연 가족일까?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려면, 시간과 예의가 필요하다.

결혼하고 1년 정도 될 때까지는, 아니 정확히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시부모님에 대한 자랑을 엄청 늘어놓고 다녔다. 친구들에게도 눈치없이 시부모님이 너무 좋으시다고 자랑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너무 부끄럽다. ㅎㅎ


결혼한지 꽤 오래됐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 친구는, 부끄러워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 그때 너, 그 자랑 얼마 안 갈거라고 예상해서 그냥 아무 말도 안했어.ㅋㅋ 좀더 살아봐야 안다니깐~"


그렇게 다정하고 좋았던 시어머니와 멀어지게 된 에피소드는 좀 여러 개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시댁 단톡방 사건'이 있다.


에피소드 #1


어머님이 가족 단톡방에 나를 초대했을 때만 해도,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열심히 대답도 해드리고, 하트 이모티콘도 뿅뿅 날려 드리고, 가족 모임 약속을 잡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견도 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헀다.


문제는 어머님이 톡을 너무 자주, 많이 하신다는 것이었다. 오전 8시부터 밤 11시 정도까지, 끊임없이 단톡방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무음으로 바꾸었지만, 계속 대화가 쌓여만가는 카톡창이 너무 신경이 쓰였다.


솔직히 특별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 날씨가 어떠니 조심히 다녀라, 당신이 어딜 다녀오셨는데 너무 좋더라, 무슨 음식을 했는데 와서 가져가라, 이번 주말에 만나자 등등... 이런 내용들 뿐이었다. 한번은 여행 다녀오신 사진에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았더니, 니나는 왜 단톡을 보지도 않느냐는 지적을 남편을 통해 들어야만 했다.


나는 친정 식구들하고도 단톡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카톡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나를 포함해 가족들 모두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이라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하지도 않을 뿐더러, 용건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는 편이라, 솔직히 가족들끼리 이렇게 단톡에서 매일 매일 온갖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는 것에 좀 놀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냥 그 단톡방을 조용히 나가버렸다. 한 세 달 정도 버텨보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안보면 그만이지 않냐고 말렸지만, 그건 아들인 남편 입장이고, 며느리인 나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어머님의 강렬한 항의와 불만과 서운함이 쏟아졌다. 어머님은 그 뒤로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전화를 할 때마다, 내게 서운함을 표출하셨고 왜 단톡방을 나갔느냐고 한 열 번쯤 물어보셨다. 내 대답은 그때마다 똑같았다.


"어머님, 전 단톡방이 제 생활에 방해가 되서 못할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그냥 전화로 말씀하세요. ^^"


"가족보다 중요한게 뭐가 있다고... 그리고 넌 전화도 자주 안하잖니?"


"어머님,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드리는데 이게 자주 안하는 거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서운하네요.."


"그렇다고 단톡방을 나가니? 주변 사람들이 다들 욕하더라~~"


"....."


그 뒤로 일주일에 한번씩 의무감으로 드리던 안부전화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이래도 저래도 욕 먹는다면, 적어도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고 욕 먹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마음의 평안을 찾았고, 어머님과 건강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에피소드 #2.


몇년 전 추석 명절 때, 스케줄 상 친정집에 먼저 갔다가 시댁에 가기로 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가 돌도 안 됐을 때라, 시간과 동선 상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편해서 시부모님께도 미리 말씀드려 놓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친정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님께 연락이 왔다. 새벽에 출발하기 전에 잠깐 시댁에 들르라는 것이다. 눈치없는 남편은, '부모님 갖다 드리라고 뭐 주시려나 보다, 새벽에 가려면 힘드니까 내가 혼자 후딱 다녀올게' 라고 말했지만, 나는 뭔가 느낌이 왔다. 주실게 있었으면 전날 저녁에 주셔도 되는데, 굳이 그 시간에 부르는 것이 이상했다.


'혹시 친정에 먼저 가는게 싫으셔서 우릴 굳이 그 새벽에 부르시는 건가.. 갓난 아이 데리고 이동하는게 얼마나 힘든데...'


혼자 시댁에 다녀온 남편은 과일 박스를 하나 들고 왔고, 우리는 곧 친정으로 출발했다.


아기 엄마들은 모두 알 것이다. 돌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어딜 가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거의 이삿짐 수준으로 싸들고 가야 하는지. 아기의 컨디션도 살펴가며, 신경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친정으로 가는데도 너무 피곤하고 쉬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겨우 친정집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어머님께 카톡이 왔다.


'너희들 가기 전에 여기 들러 인사라도 한번 하고 가면 안되겠니.'


그렇다. 내 촉이 맞았던 것이다. 어머님은 명절에 친정에 먼저 가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해서, 갓난 아기와 며느리를 그 새벽에 불러들여 인사를 받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메세지를 남편에게 보여주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남편은 자신이 얘기하겠다며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 거의 1시간 넘게 어머님과 통화 후 돌아와서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전해듣기로는, 그냥 너희들이 걱정되어서 한 얘기라고 변명(!)하셨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점차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갈등의 발단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고 무의식 중에 학습해왔던, '며느리의 도리'가 모든 것을 성급하게 진행시키는 것에서 오는게 아닐까 싶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려면 일정한 시간과 예의가 필요한데,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이 모든 것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갑작스럽게 가까워진다고 해도, 그런 관계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깊이가 얕을 수 밖에 없다. 결혼했다고 해서 갑자기 인간 사이의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거리감을 무시하고, 친딸같은 '며느리' 노릇을 기대하게 되면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사위 노릇' 이나 '사위의 도리' 같은 건 없다. 오로지 며느리에게만 존재하는 '도리'인 것이다. 어머님도, 당신이 그렇게 오랜 세월 시어머니를 모시며 '며느리'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하실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옛 어르신들은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개인 공간'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중시하는 '개인적인' 시간과 거리의 개념을 이해하기가 힘드실 수도 있다.


나는 어머님을 싫어하지 않는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어머님을 좋아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을 뿐이다. ㅎㅎ 어머님은 유머러스하고, 무엇보다도 정말 착한 분이다. 남편은 그런 어머님을 쏙 빼닮아서, 재밌고 착하고 가정적이다.


만약 어머님을 '시어머니'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머님을 꽤 좋아했을 것이다. 남편을 좋아해서 결혼했으니, 그런 남편과 꼭닮은 어머님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고부 사이'이기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오해와 서운함이 발생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어머님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어머님을 위해서도, 그리고 나와 남편의 건강한 부부사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임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무리를 하면 반드시 사단이 나기 마련이다. 성인이 된 이후의 가족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인간관계'이다.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 아무리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해도 갑자기 친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식을 여러 번 하고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친해질 사람은 친해지고, 안 맞는 사람은 또 계속 안 맞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혼 이후에 가정을 이루었으면 그 가정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다.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완전히 독립해서, 각자의 부모님과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지키며 사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한다.


격의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사이인데 억지로 격의없는 사이가 되려는 순간, 오해와 갈등과 서운함이 마음 한 구석에 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족 사이라도 그렇다. 아니, 가족이기 때문에 때로는 어느 정도의 예의와 거리감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단어로 모든 것을 포장하거나 도리를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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