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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Dec 28. 2019

'완벽주의' 라는 허상

All or Nothing 게임에 빠지지 않기

개인적으로 2019년을 한마디로 정리한다고 하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던 한 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완벽주의는 완벽해지려고 노력을 엄청나게 쏟아붓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외면의 마음이 더 크게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하기 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나도 내가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글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까발리는(?) 측면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뭔가 아직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미완성의 글들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무척 부끄러웠다. 사실 지금도 부끄럽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만한, 그놈의 '타이밍'을 기다리다가는, 영원히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한 채 하루 하루 늙어가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단 시작하고 나서 생각하자, 라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려고 노력했다.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뭔가를 잘 하지 못해서 허둥대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초라한 모습을 사람들 앞에 기꺼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올 한해, 결심한 대로 크고 작은 도전들을 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까지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기는 힘들었다. 결과는 항상 내 예상을 비껴갔다. 열심히 했는데 성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고, 생각도 못했던 곳에서 작은 보상이 오기도 했다. 게다가 어딜가도 나보다 뛰어나고, 더 많이 노력하며, 더 잘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과정은 너무나 재미있고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도 많이 변화했다. 


예전에는 한번 실패하면 굉장히 좌절하고, 자책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환경이나 상황 탓을 하고, 아예 외면하려고 하거나 쉽게 포기했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다시 회복하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다. 남들 눈을 너무 의식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담담하게 넘길 수 있다. 솔직히 속은 괜찮지 않지만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하고 넘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실패한 이후에 더 노력해서, 다음에 더 잘했던 경험을 만들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한 경험은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고, 나 자신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게 하며, 또 다른 의지를 불태우는 작용도 한다. 


솔직히 나 자신을 현실적인 눈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이미 내 직업군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새로 도전하는 일을 잘 못한다고 해서 비판받고 쓴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누가 좋아할까.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려면 실패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나 자신의 진짜 실력을 파악하지 못하면 발전도 없다. 포장하고 부풀리고 싶어도, 외면하고 싶어도, 나의 민낯을 용기내어(!) 빤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실패담을 좋아한다. 성공 스토리에는 별로 감흥이 없지만, 실패 스토리는 항상 재미있게 읽는다. 실패가 가르쳐주는 것들은 참 많다. 사실 원없이 도전해보고,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깨끗이 접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렇게 했던 시간들이 의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당시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아도, 경험은 돈처럼 결코 누군가에게 떼이거나, 도난당하지 않는 소중한 자산이다.


나도 30대 초반에 어떤 시험에 계속 도전했지만,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그 시험에 들인 돈만 해도 엄청나고,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회사 내 평판도 나빠졌으며, 건강도 악화됐다. 시험은 몇점 차이로 계속 떨어졌고, 결국엔 깨끗이 단념했다. 


하지만 이때 들였던 공부 습관은 그 이후로도 계속,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가보지 못한 그 길에 대한 미련도 깨끗이 접을 수 있었다. 


친한 친구 한 명은, 어렸을 때부터 끼가 많아서 배우가 되고 싶어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대학은 상경계열로 진학했지만, 밴드 활동과 아마추어 극단 활동에 더 열심이었다. 남들은 취업 준비로 한창인 4학년 때, 연극영화과 편입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나는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마음으로 그 친구를 지켜보았다. 꿈도 좋지만, 밴드나 극단 활동할 시간에 영어 점수를 따거나 취업 준비를 먼저 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다. 


결국 그 친구는 연극영화과 시험에 낙방했고, 극단 활동도 그만두었으며, 졸업 후 전공을 살린 직업으로 잘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였지만, 자신은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한다. 할만큼 해보았고, 극단 활동을 하며 배우 활동도 어느 정도 해보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하단다. 


그 친구가 밴드와 극단 활동을 하며 쌓은 경험들은, 평생동안 귀중한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다면, 마흔이 훌쩍 넘어 도전해보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60이 넘어서 도전한들, 후회와 미련이 남는 것보단 훨씬 의미있는 일 아닐까. 


나도 최근에 '요리'라는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가 무려 '도전'인 이유는, 나는 요리를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들이는 노력과 노동에 비해 나오는 결과물이 너무 형편없고, 사먹는 것이 훨씬 맛있고 돈도 절약되기 때문에 요리는 아예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씩 요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냥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국 하나에, 밥만 짓고, 나머지 반찬은 당연히 사먹는 반찬들로 채운다. 내가 요리를 못하고 싫어한다는걸 알기에, 애초에 목표를 크게 잡지 않고, 한 가지만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마치 9첩 반상을 차린 듯 뿌듯했다. 내가 이 국을 만들다니! 이렇게 맛있는 국을 직접 만들었다니!


어차피 완벽할 수 없으며,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즐거웠고, 나도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다. 식재료와 조리 기구들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발전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2020년 역시 크고 작은 실패들도 가득 채우고 싶다. 더 열심히 실패하고, 더 재밌는 도전들을 계속 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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