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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Dec 19. 2019

서울, 서울, 서울

이제는 지나간 옛 사랑, 서울

나는 4살 때부터 38살까지, 그러니까 작년 가을까지 계속 서울에서 살았다. 서른 살까지는 부모님과 강동 쪽에서 살았고, 대학교는 강북, 처음 독립해서 살았던 오피스텔과 회사는 강남, 결혼 후 신혼집은 강서 쪽에서 시작했으니 서울의 동서남북을 누비며 살아온 '서울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작년 가을, 남편 회사에서 가까운 경기도 지역으로 이사왔기 때문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쭉 여기서 아이를 키우며 살 계획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왕복 4시간씩 통학하게 되었다.


서울에 살 때도 집에서 1시간 거리의 학교나 회사를 대중교통으로 잘 다녔으니, 2시간 거리도 별 문제 없을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있었고, 지하철로도 갈 수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올해 3월부터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며, 나는 서울 집값이 왜 비쌀 수 밖에 없는지,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ㅎㅎ


솔직히 서울을 벗어나기 전까지, 나는 지역에 대한 어떤 관심도 없었다. 특정 지역에 대한 동경도 없었고, 서울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당연히 없었다. 오히려 학교와 회사만 아니면, 굳이 집값도 비싸고 번잡한 도시인 서울에서 꼭 살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가장 좋은 점은, 역시 아이를 키우기에 참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다. 주변에 녹지와 공원이 많아 아름다운 풍경과, 서울만큼 북적이지 않아 깨끗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는 동네이다.


늘 막히는 도로, 어딜 가도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해 경쟁하듯 다녀야 하는 서울의 분위기에 비해, 이곳은 훨씬 더 평화롭고 한적했다. 대도시에 속하는 지역인데도 서울에 비하면 '시골'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도서관이나 박물관 등 아이와 관련된 시설은 정말 훌륭했다. 경쟁하듯 다니지 않고, 이렇게 좋은 시설을 한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주차였다. 세상에 아무데나 차를 세워도 된다니! 마트 주차장이 공짜라니! 어딜 가도 주차 전쟁을 벌이던 서울과는 달리, 길가에 자유롭게 차를 세울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길에 흔히 보이는 택시가 잘 없고, 택시를 이용하려면 콜택시를 불러야 한다는 점도 신기했다.


한 블럭마다 수십 개씩 보이던 커피숍이 여기에는 드문 드문 있다는 것, 그것도 아침 9시가 지나서야 문을 연다는 것,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페덱스 같은 곳은 없다는 것, 스타벅스가 이 지역에 딱 하나라는 것, 등등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이용하던 서비스들이 없다는 것도, 살면서 조금씩 느껴지는 차이점들이다.


사실 커피숍 뿐만 아니라, 무엇이 됐든지 그 종류가 일단, 서울만큼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던 몇몇 체인점들, 좋아하던 문화시설 등 꽤 많은 것들이 서울에만 있다는 것을, 서울에 살 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적응하며 살다보니 크게 필요한 것들도 아니었고, 사실 정말 필요한 것은 인터넷으로 모두 주문 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적함과 아름다움이 나에게는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벗어난 생활의 큰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서울과 멀다는 것이다. 서울과 멀어서 좋다면서, 서울과 멀어서 또 나쁘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1년 가까이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왕복 4시간씩 버스와 지하철로 다니면서 나는 깊이 깨달았다. 통학 시간이 길다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피곤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것을.


왕복 4시간씩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구두라는 것을 신어본 적이 없다. 예쁜 원피스나 밝은 색깔의 코트도 입어본 적이 없다. 그냥 제일 편한 운동화와 바지, 따뜻한 패딩에 백팩을 멘 차림새가 아니면 4시간씩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머리도 점점 짧아져서, 컷트에 가까운 단발이 되었다. 어디서나 머리를 대고 잘 수 있는 최적의 차림새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실 버스 멀미는 지금까지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버스 간격이 그렇게 멀 수가 있다는 사실에도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너무 추운 날은 갈아타지 않고 한번에 앉아서 갈 수 있는, 따뜻한 버스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버스를 타면, 멀미로 구토하기 직전에 학교에 도착한다. 누렇게 뜬 얼굴로 내리자마자 가까운 커피숍으로 뛰어갈 때도 많다. 2시간 동안 참았던 화장실이 급해서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그 통학 시간동안, 온전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집에 와서도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로 이동 시간에 책도 보고, 과제도 하고, 음악도 듣는다. 부족한 잠도 자고, 핸드폰으로 브런치 글을 쓸 때도 있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려면 무조건 서울에 가야 하는데, 왕복 4시간 거리를 고려하다 보니, 늘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2시간 걸려서 가서 2시간 만나고, 다시 2시간 걸려 집에 돌아오면 하루가 끝나있다. 몸과 마음도 너무 지친다. 그래서 점점 더 친구들을 만나지 않게 된다.


서울에서 벗어난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니, 이건 단순히 사는 곳의 변화가 아니라, 내 생활 방식과 마인드의 변화까지 경험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불필요한 것들, 덜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과정이었다. 사실 그게 무엇이었는지, 겪어보기 전까진 정확히 나도 몰랐었다.


사람은 오히려 쉽게 얻은 것보다, 어렵게 얻은 것을 더 가치있고 귀하게 여기는 본성이 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던 회사를 걸어서 출퇴근하던, 멋진 정장 차림에 작은 백을 가볍게 들고 또각 또각 걸어다니던 여성스러웠던 이전의 내 모습보다,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통학하며, 노트북이 담긴 백팩을 맨 채, 지하철에서 정신없이 책을 읽는 지금의 내 모습이, 이상하게도 훨씬 더 마음에 든다. 더욱 나 답다고 느껴진다.


여전히 서울은, 너무 많은 추억이 담겨있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종종 그립기도 하다. 자취하던 시절, 매일 저녁 뛰러 갔던 한강, 그곳에서 바라보던 노을진 하늘, 남편과 데이트하던 삼청동 거리, 성북동, 대학로, 남산, 서촌, 선유도 공원... 친구들과 신나게 놀러 다니던 이태원, 신사동, 상수동.... 혼자 있고 싶을 때 늘 가던 광화문, 인사동, 미술관과 단골 카페들...


이제는 마음 먹고 몇 시간씩 차를 타고 가야만 볼 수 있는 그곳들이, 마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20대와 30대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괜히 아련해진다.


지나간 옛 사랑 같은 도시, 서울. 널 만나려면 이제 2시간씩 차를 타고 가야 해. 앞으로는 가끔씩, 필요할 때만 만나자. 날 너무 자주 부르지 말아주렴... 넌 같이 있을 때보다, 옆에서 바라보며 가끔 만날 때가 더 아름다우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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